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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비 뢰프와 골렘

by leo


1.


“랍비님, 혹시 소문 들으셨나요?”


프라하에서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랍비인 유다 뢰프 벤 베자렐은 유대인 거리의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스타로노바 시나고그에 자주 오던 한 유대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친절하다고 소문이 난 뢰프는 잠시 걸음을 멈춰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루돌프 2세 황제가 악정을 펼치려 한다는군요. 프라하에 사는 모든 유대인을 쫓아낸다는 겁니다. 여기에 반발할 경우 모두 학살해 버릴 계획이라고 하네요.”


뢰프는 설마 그런 일이 있겠느냐며 그를 안심시킨 뒤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사실 그도 며칠 전부터 그런 이야기를 듣고 걱정하던 차였다. 그는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간 고민하던 뢰프는 유대인들을 지켜 줄 보호막을 만들기로 했다. 성경에서 보고 읽은 대로 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바로 성경에 나오는 ‘골렘’이었다. 그는 프라하 시내 한가운데를 흐르는 블타바강으로 갔다. 강둑 아래로 내려가 진흙을 파내 포대에 가득 담아 집으로 돌아갔다.


문을 잠그고 하루 종일 성경만 읽던 뢰프는 인적이 끊긴 깊은 밤 스타로노바 시나고그의 다락방으로 혼자 올라갔다. 그는 블타바강에서 가져온 진흙을 바닥에 펼쳐 놓았다. 이어 이리저리 손을 대 이상한 모양을 만들었다. 그가 만든 진흙의 모습은 사람 같기도 했고, 유대교의 옛 제의용 그릇 같기도 했다. 그는 진흙을 앞에 놓고 기도를 드렸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주문을 웅얼거리기도 했다. 이따금 진흙 위로 손을 흔들거나 물을 조금씩 뿌리기도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바닥에 누워 있던 진흙 모형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바닥에서 꿈틀거리기만 하더니 나중에는 허리를 들어 올리고, 마지막에는 제자리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뢰프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이제 됐어. 이 괴물 하나만 있으면 유대인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어. 아무리 많은 병사가 오더라도 이 녀석이 다 막아줄 테니까.’


뢰프는 진흙으로 만든 괴물에 ‘요제프’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요제프의 이마에 주문인 ‘솀’을 적은 종이를 붙였다. 종이를 떼어 내면 요제프는 활동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도록 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종이를 떼어낼 수 없고, 그만 손을 댈 수 있게 했다.


“괴물이다! 진흙으로 만든 이상한 괴물이 유대인 거리에 나타나 돌아다닌다!”


뢰프는 다음 날 아침 요제프를 데리고 유대인 거리로 나갔다. 요제프를 처음 본 사람은 모두 놀라 달아나려고 했다. 뢰프는 껄껄 웃으며 놀라지 말라면서 상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이 녀석은 괴물이 맞습니다. 하지만 유대인을 해치는 괴물이 아니라 보호해주는 괴물입니다. 제가 루돌프 2세로부터 여러분을 보호하기 위해 어젯밤에 만들었습니다. 유대인은 절대 해치지 않을 터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장 존경하는 랍비로부터 상세한 설명을 들은 유대인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그들은 이후 요제프를 보더라도 놀라거나 달아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다가가 악수를 하거나 몸을 만지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속으로는 여전히 겁이 났던 것이었다.


요제프는 평소에는 하루 종일 유대인 거리를 돌아다니며 청소를 하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때로는 물을 길어와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고, 땔나무를 베어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집에 가져다주었다. 힘든 일을 하루 종일 하면서도 지친다거나 힘들다고 불평한 적이 없었다. 목이 마르다고 물을 마시거나, 배가 고프다고 음식을 먹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요제프가 투명인간처럼 보이지 않게 변할 수 있다거나,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올 수 있다거나 하는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를 나누며 깔깔거리기도 했다.


요제프는 일주일 내내 유대인거리에서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금요일은 달랐다. 뢰프는 금요일 저녁에는 그의 이마에서 솀을 떼어 내고, 일요일 아침에 다시 붙여 활동을 재개하게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요제프가 폭력적으로 변해 유대인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한번은 뢰프가 솀을 떼어 내는 일을 잊어버린 적이 있었다. 토요일 아침이 되자 요제프는 갑자기 광분하더니 주변을 지나가는 유대인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이 때문에 몇 명이 다치기도 했다. 뢰프는 그 이후로는 금요일 저녁에 솀을 제거하는 일을 절대 까먹지 않았다.


“폐하, 유대인 랍비가 요제프라는 괴물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병사들이 무서워 접근도 못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을 프라하에서 쫓아내는 일은 불가능하게 됐습니다.”


뢰프가 요제프를 만들어 유대인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소식은 루돌프 2세의 귀에까지 전해졌다. 연금술, 점성술, 강신술은 물론 여러 가지 신비주의에 관심이 많던 황제는 믿기 힘든 이야기를 듣고 큰 호기심이 생겼다. 요제프가 일종의 속임수인지, 아니면 진짜 랍비의 창조물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만류하는 대신들의 손길을 모두 뿌리치고 당장 병사들을 보내 뢰프를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루돌프 2세 폐하께서 랍비 뢰프를 만나고 싶어 하신다. 뢰프는 우리를 따라가도록 하자.”


루돌프 2세가 보낸 병사들이 유대인거리 입구에서 안쪽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그들은 요제프가 무서워 거리 안쪽으로는 한 걸음도 옮기지 않았다.


뢰프는 루돌프 2세를 직접 만나기로 했다. 다른 유대인이 음모일지도 모른다고 만류했지만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다른 랍비에게는 요제프를 움직이는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혹시 자기가 살해된다면 요제프를 잘 관리해 모든 유대인을 철저히 보호하라고 신신당부했다.


뢰프는 그날 밤 자정 무렵 프라하 성의 응접실에서 루돌프 2세를 만났다.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기록에 남지 않아 아무도 모른다. 다만 사람들은 루돌프 2세가 뢰프에게 제안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만약 요제프를 없앤다면 더 이상 유대인을 박해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아니었겠느냐는 것이다.


두 사람이 만난 이후 유대인은 쫓겨날 염려 없이 프라하에서 마음 편하게 살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뢰프는 요제프를 없애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유대인을 보호해 줄 방어막이 필요 없는데다 혹시 요제프가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괴물로 변할 우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뢰프가 요제프를 해체한 방법을 놓고 주장이 엇갈린다. 첫 번째 주장은 뢰프가 솀의 글자를 바꿨다는 것이다. 요제프의 이마에 써 붙였던 솀의 글자는 당초 ‘anmauth(진리)’였다고 한다. 뢰프는 여기서 ‘an’을 잘라내 글자를 ‘mauth(입)’으로 바꿔 입안에 넣었다고 한다. 그러자 요제프는 그대로 쓰러졌고 진흙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요제프가 밤에 스타로노바 시나고그의 다락방에 누워 있을 때 없앴다는 주장이다. 뢰프와 다른 조력자가 누운 요제프 주변을 일곱 바퀴 돌면서 이상한 주문을 외어 요제프를 감싼 마법의 힘을 풀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들은 딱딱한 진흙 덩어리로 변해 버린 요제프를 종이로 꽁꽁 감싸서 다락방 한쪽 구석에 넣어뒀다고 한다.


이후 요제프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를 그리워하는 일부 사람은 ‘나중에 유대인이 다시 박해받을 때에 나타난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요제프는 아직도 스타로노바 시나고그 다락방에 보관돼 있다’고 한다. 지금 어느 누구도 시나고그 다락방에 올라갈 수 없어 어느 게 사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사람들은 요제프라는 이름을 잊어버리고 그를 ‘골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골렘은 성경에 나오는 단어다.



2.


랍비 뢰프는 16~17세기에 살았던 실존인물이었다. 탈무드를 잘 이해하는 철학자였으며 유대 신비주의인 카발라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책을 22권이나 써 ‘위대한 현인’이라는 뜻인 마하랄로 불리기도 했다. 당시에는 체코뿐 아니라 동유럽 유대인 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영적 지도자였다. 2009년 체코 정부가 그의 사망 400주년을 맞아 기념우표와 기념화폐를 발행했다는 사실만 봐도 그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었는지 알 수 있다.


뢰프가 역사적 인물이라는 객관적 사실과는 달리 그가 골렘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 단순한 전설이다. 그것도 아주 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것이 아니고 18~19세기에 ‘만들어진 이야기’로 추정된다. 전설은 유대계 독일 작가 베르톨드 아워바흐가 1837년에 쓴 <스피노자>라는 소설에 처음 등장한다.


스타로노바 시나고그를 방문하는 사람이 가장 궁금하게 여기는 것은 ‘과연 골렘이 다락방에 보관돼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관광객들은 시나고그를 관리하는 랍비에게 골렘 이야기를 물어본다. 이런 소문이 나돌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유대 사회에서는 ‘하느님’이라는 단어가 든 낡은 히브리어 서적이나 종교적 주제를 다룬 서류를 함부로 버리거나 불태우는 것은 금기시돼 있다. 죽은 사람을 땅에 묻듯 적당한 절차를 거쳐 매장해야 한다. 이런 서적이나 서류를 매장하기 전에 잠시 보관해 두는 곳을 ‘게니자’라고 부른다. 게니자는 아무나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 신성한 곳이다.


스타로노바 시나고그의 다락은 바닥에서 3m 정도 높이에 만들어졌다. 다른 시나고그처럼 여기에도 게니자가 있다. 전통에 따라 이곳에도 아무나 올라갈 수 없다. 게니자의 사연을 잘 모르는 사람은 ‘골렘이 여기에 보관돼 있는 걸 숨기려고 문을 잠근 것’이라고 억측하게 됐다.


골렘이 얼마나 유명했던지 제2차 세계대전 때 프라하를 점령한 독일 게쉬타포 장교가 여기에 올라갔다가 죽었다는 전설까지 생겼다. 그 장교는 게니자에 있던 골렘을 꺼내려고 혼자 스타로노바 시나고그의 다락에 올라갔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잠시 후 그는 온 몸이 산산조각 난 채 다락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이 장면을 본 다른 장교는 공포에 질려 다락에 올라가려 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체코를 점령한 독일은 곳곳에서 시나고그를 폭파시켰다. 1939년에는 스타로노바 시나고그를 폭파하려고 두 차례나 시도했다. 하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겁에 질린 게쉬타포 요원들이 수동적으로 대처했기 때문이라는 게 소문의 요지였다.


뢰프가 살았던 시대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재임 1576~1611년) 때였다. 사실 루돌프 2세는 모든 종교에 매우 관대했고 유대인에게도 호의적이었다. 유대인은 황제로부터 보호를 받았고 다른 종교와도 비교적 잘 어울려 지냈다. 유대인은 당시를 ‘프라하 유대인의 황금시대’라고 불렀다. 그런데 왜 이런 시기에 말도 안 되는 희한한 전설이 생겨난 것일까?


잘 생각해 보면 세상의 모든 전설에는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는 의미가 숨어 있게 마련이다. 골렘 전설도 마찬가지다. 유대인은 아무리 풍요로운 시대라도, 아무리 유대인에게 호의적인 황제라도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오랜 경험 덕분에 잘 알았다. 골렘의 전설에는 이처럼 뿌리 깊은 유대인의 불안감과 불신감이 담겼다. 또 남의 호의 덕분이 아니라 직접 스스로를 지키고 싶어 하는 소망과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무력감도 함께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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