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7일 새벽 0시 35분 부산 지하철 1호선 동래역 5번 출구 인근 고깃집 ‘세연정’ 앞 공터는 웅성거린다. 깜깜한 새벽인데도 20여 명이나 되는 사람이 모였다. 다들 얼굴에 기쁨과 기대감이 흘러넘친다. 이들이 어둠을 무릅쓰고 모인 까닭은 버스다. 이곳에서는 인천공항으로 직행하는 동부하나리무진 버스가 출발한다. 정확히 말하면 부산역에서 출발한 버스가 이곳에서 손님을 더 태워 인천공항으로 가는 것이다.
세연정 앞에서 승객을 더 태워 만석이 된 채 출발한 리무진버스는 도중에 한 차례 휴게소에 들렀다. 깊은 새벽이었지만 다들 잠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자판기 커피라도 뽑으려고 휴게소에서 내리는 사람은 스무 명 이상이다. 즐거운 여행이 눈앞에 다가왔는데 버스에서 잠이 들 리 만무하다. 휴게소에서 10분을 보내고 다시 달린 리무진버스가 인천공항 1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5시 40분이었다.
인천공항에 가면서 왜 새벽 버스를 타고 갈까? 사실 부산 사람이 아침 일찍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국제선 항공기를 이용하려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이른 아침에 인천공항으로 올라가는 항공기가 드물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이 하루 여러 편 운항하지만 아무나 탈 수 있는 건 아니다. 대한항공이나 관련 항공사의 국제선 항공권을 갖고 있는 승객만 탈 수 있고 다른 항공사 표를 가진 여행객은 이용할 수 없다.
2018년 스페인에 갈 때 인천공항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하는 영국항공 항공기를 이용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하루 전날 서울에 미리 가서 호텔에서 숙박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리무진버스를 이용하는 게 비용이나 시간 같은 측면에서 훨씬 이익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이용하는 항공기는 오전 8시 50분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폴란드항공 LO1098편이다. 리무진버스가 도착한 시간은 오전 5시 30분이니 탑승 수속을 하는 데 3시간 이상 여유가 있다. 서두르지 않고 수속을 마친 뒤 느긋하게 맛있는 빵과 고소한 커피 한 잔을 즐길 수 있다. 버스에서 제대로 잠을 청하지는 못했지만 여행의 기쁨 때문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콧노래를 부르며 커피를 음미한다.
항공기는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러시아를 지나가지 못하고 터키로 돌아가는 바람에 평소보다 1시간 이상 더 걸린다. 항공기가 폴란드 바르샤바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 25분이다. 바르샤바국제공항 곳곳에서 풍기는 고소한 빵 냄새와 따뜻한 커피 향기는 인천국제공항에서 맡던 것과는 다르다. ‘외국여행을 왔다’는 설렘과 기쁨이 섞여 향기를 더 짙고 달콤하게 만든다. 그곳에서 다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환승을 기다린다.
바르샤바국제공항에서 1시간 30분을 기다리다 갈아탄 폴란드항공 LO0521 항공기는 다시 1시간 20분을 날아 같은 날 오후 5시 15분 체코 프라하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지 16시간 25분 만이다. 프라하를 여행하는 것은 통산 네 번째, 2019년 2월에 마지막으로 간 이후 3년 8개월 만이다.
이전에 세 차례 프라하에 갔을 때에는 늘 가족을 동반했다. 아내와 단 둘이 간 적도 있었고, 딸을 데리고 간 적도 있었다. 프라하에 도착하면 항상 늦은 밤이어서 버스를 타기 어려워 호텔 픽업 서비스를 이용했다. 택시도 있지만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 비용이 조금 더 들어도 호텔 픽업 서비스가 편리하고 안전하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프라하에 혼자 온 데다 오후여서 아직 어둡지 않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공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내려 지하철로 환승하는 노선도 있지만, 프라하중앙역으로 직행하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직행버스 정류장은 출국수속을 마치고 나오는 터미널2가 아니라 왼쪽으로 5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 터미널1 앞에 있다. 처음에는 위치를 찾지 못해 헤매다 안내소에 물어본 덕분에 찾아갈 수 있었다.
직행버스 승차권은 버스에 타기 전에 차장에게서 직접 샀다. 차장은 “정류장의 매표기계나 공항 내의 매표소에서 파는 일반 시내버스 표로는 탑승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날만 그랬던 것인지 직행버스 승객은 그다지 많지 않다. 승객은 한국인 부부 2명, 외국인 2명까지 합쳐 모두 다섯 명이다. 공항에서 프라하중앙역까지는 약 50분 정도 걸린다.
프라하중앙역 앞에 내리자마자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앙역 앞 정류장에서 예약한 호텔까지 생각보다 멀다. 구시가지 광장을 거쳐 숙소가 있는 공화국광장으로 가기란 이만저만 피곤한 일이 아니다. 캐리어를 끌고 울퉁불퉁한 돌이 깔린 인도를 걷는다는 건 정말 괴로움 그 자체다. 일반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내려 지하철로 갈아탔으면 광장 바로 인근 지하철역에 내렸으면 훨씬 편했을 텐데, 직행이라는 말만 보고 버스를 탄 게 실수다.
하지만 이런 게 여행 아닐까? 특히 혼자 다니는 여행의 묘미는 실수하고 바로잡고, 다시 실수하고 또 바로잡는 데에 있다. 그런 과정에서 여행하는 기술을 배우고, 다시 실수하지 않는 요령을 익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뜻하지 않게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스페인 코르도바에 갔을 때의 일이었다. 기차역에서 숙소까지 택시를 타지 않고 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실수로 엉뚱한 버스를 타고 말았다. 버스 기사에게 물었더니 내려서 20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고 했다. 버스에서 내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한적한 곳이어서 지나가는 사람은 할머니뿐이었다. 할머니는 영어를, 나는 스페인어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호텔이름을 밝히자 할머니는 눈을 반짝거리더니 아주 열정적으로 설명해주었다. 놀랍게도 나는 할머니가 하는 스페인어의 뜻을 대부분 이해할 수 있었다. 할머니의 몸짓, 손짓 덕분이었다. 그래서 어렵지 않게 호텔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런 게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에 도착하려고 서두르기로 했다. 프라하중앙역 맞은편의 작은 공원을 따라 내려가 화약탑을 거쳐 공화국광장에 겨우 도착한다. 이번에 고른 숙소는 광장 끝부분 들로우하 거리에 있는 작은 레지덴스다. 구시가지광장에서 가깝고 주변에 식당이 많아 고른 곳이다. 시내 요충지인데도 1박 가격이 7만 원 정도여서 싸다는 점도 고려했다. 여기에 가보고 싶은 곳이 주변 가까운 곳에 있다는 점도 관심을 끌었다.
호텔에서 열쇠를 받고 방문을 여는 순간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전에 세 차례 프라하에 갔을 때에는 말라 스트라나에 있는 4성급 호텔을 골랐다. 그때는 하루 10만 원으로도 제법 넓고 좋은 방을 고를 수 있었다. 아내, 딸과 셋이 갔을 때에는 댄싱하우스에서 블타바강 건너편에 있는 4성급 호텔의 3인실을 골랐는데 놀랍게도 천장에 들창이 달려 밤에 별을 볼 수 있는 다락방이었다. 다락방이라고 하면 좁고 지저분하다고 편견을 가질지 모르겠지만 이 호텔의 다락방은 ‘주니어 스위트룸’이었다.
이번에 고른 레지덴스의 방은 좁은 데다 화장실에는 비품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치약, 칫솔은 물론이거니와 비누, 샴푸도 없다. 수건은 있지만 다른 호텔에서 주는 수건보다는 질이 떨어진다. 그나마 아쉬운 점을 달랠 수 있는 것은 방의 전망이 비교적 좋다는 점이었다. 방에는 창을 열고 나갈 수 있는 작은 테라스가 있는데 그곳에 앉아서 바라보는 노을이 꽤 멋있다.
일단 방에 짐을 풀고 나가 저녁을 먹기로 했다. 꼭 먹어 보고 싶은 게 있다. 공화국광장에 있는 팔라디움 쇼핑몰 앞의 너른 공간에 주말이면 생기는 포장마차다. 이곳에는 비싸지도 않으면서 맛있는 현지 길거리음식이 많다. 이번에는 그걸로 첫 저녁을 삼기로 했다. 줄을 선 포장마차를 쭉 둘러본 뒤 괜찮아 보이는 곳을 골라 무엇인지 모를 현지 빵을 사먹는다. 제법 괜찮은 맛에 가격도 싸서 대만족이다.
언제든 외국에 가서 호텔 객실에 짐을 풀면 일단 주변부터 간단히 둘러보는 게 습관이다. 주변에 편의점이나 슈퍼마켓 또는 시장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물이나 과자, 빵, 과일 등 호텔에서 머무는 기간에 맞춰 저녁에 간식으로 먹을 음식을 미리 사야 한다. 또 아침에 간단히 산책할 코스는 있는지, 저녁에 식사를 해결할 식당은 있는지, 동네 시장이 있는지를 알아두면 도움이 된다.
다행히 공화국광장은 레지덴스와 호텔이 많아 여행객이 몰리는 곳이어서 가게도 드물지 않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 슈퍼마켓에서 물과 음료수, 맥주, 간식거리, 샴푸 ,비누를 산다. 숙소로 돌아가 모든 비품을 정리한 뒤 베란다에 앉아 맥주와 간식을 펼친다.
‘드디어 왔구나. 여기는 프라하야! 이제 시작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