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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Nov 18. 2020

4. 로물루스(5)

아버지에게 부여한 절대권한




로물루스는 자녀들이 부모를 존경하고 효도를 다하도록 법을 만들었다. 자녀들이 모든 일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말과 행동으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위엄이 넘쳐흐르고 품위를 갖췄으며 그리스의 어떤 법보다 뛰어났다.


그리스의 제도를 세운 사람들은 아들이 아버지의 지배를 받게 했다. 일부는 어른이 되더라도 3년이 지날 때까지, 다른 일부는 결혼할 때까지, 또 다른 일부는 공공 명부에 등록될 때까지였다.


자녀가 부모에게 복종하지 않을 경우의 처벌은 그다지 엄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단순히 아들을 쫓아내고 상속을 하지 않을 뿐이었다. 더 이상의 처벌은 없었다. 이런 온순한 처벌은 젊은이의 어리석음을 억제하거나 명예로운 일에 무관심한 젊은이에게 통제력을 주기에는 너무 부족했다. 당연히 그리스에서는 젊은이가 부모에게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저지르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반면 로물루스는 아버지에게 심지어 죽을 때까지 아들을 전적으로 통제할 권리를 부여했다. 아버지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아들을 가두었고 채찍으로 때렸으며, 사슬에 묶어 들판에서 강제로 일을 시켰다. 때로는 죽이기도 했다. 아들이 공적 업무에 종사하고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이 최고위 행정관이어도 다르지 않았다. 아들이 국가를 위해 훌륭한 봉사를 해서 칭찬을 받아도 똑같았다.


유명한 사람들도 포로 로마노의 로스트라 연단에서 원로원에게 적대적인 연설을 할 때 또는 민중을 달래던 도중에 아버지에 의해 연단에서 끌려 내려와 벌을 받곤 했다. 아들이 포로 로마노에서 끌려 나가면 현장에 있는 어느 누구도, 심지어 집정관이나 호민관도 구할 수 없었다.

얼마나 많은 사나이가 고귀한 행동에 열정과 용기를 보였음에도 아버지의 지시가 없었다는 이유 때문에 아버지의 손에 죽임을 당했는지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만리우스 토르콰투스와 다른 많은 역사가가 이를 잘 알려주고 있다는 말만 하고 싶다.


로물루스는 아버지에게 아들에 대한 절대적 권한을 준 데서 멈추지 않고 심지어 아들을 노예로 팔 수 있게 했다. 이런 조치가 부모의 본성적 사랑과 양립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잔인하고 가혹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느슨한 방식의 그리스 식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잔인하고 독재적이라고 보는 것이 또 있다. 로물루스는 아버지에게 아들을 세 번 팔아 이득을 거둘 수 있게 했다. 주인이 노예에게 가지는 권한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지는 권한이 더 클 정도였다.


노예는 일단 팔렸다가 나중에 자유를 얻으면 그 이후에는 직접 자신의 주인이 된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에 의해 일단 팔렸더다가 나중에 자유를 얻으면 다시 아버지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두 번째 팔렸다가 또 자유를 얻어도 마찬가지다. 세 번째 팔렸다가 자유를 얻어야만 비로소 아버지에게서 풀려날 수 있었다.


역대 왕은 이 법을 초창기부터 엄수했다. 그들은 이 법을 여러 법 중에서 최고라고 생각했다. 왕정이 무너진 후 로마인은 포로 로마노에 모여 어떤 국가체제를 만들지를 논의하면서 조상이 만든 관습과 법, 그리고 외국에서 수입해온 제도를 공개적으로 밝히기로 결정했다.


민중의 권리는 행정관, 즉 데켐비르(10인 위원회)의 권한처럼 수시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10인 위원회는 법을 수집해서 정리하고, 다른 법과 함께 기록하도록 민중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은 조직이었다. (아버지의 권한에 관한 법)은 12표법의 4번째에 기록돼 있다. 데켐비르는 처음에는 아버지의 권한에 관한 법을 소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법이 오래 전부터 적용되고 있던 사실을 발견하고는 감히 없앨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는 이런 사실을 다른 여러 자료들, 특히 로물루스의 후계자인 누마 폼필리우스의 법에서 추론한다. 그의 법 중에 이런 규정이 있다.


‘만약 아버지가 아들에게 결혼을 허락한다면, 그래서 법에 따라 신성한 의식과 행진의 공동 소유자가 되게 한다면, 아버지는 더 이상 아들을 팔 권리를 갖지 못한다.’


만약 아버지가 법에 따라 아들을 팔 권리를 갖고 있지 않았다면 누마는 이런 규정을 남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통제하기 힘든 민중이 온건한 삶을 살도록 이끌고, 이익보다 정의를 더 선호하게 만들고, 고난 속에서 인내를 기르게 하고, 미덕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말로만 하는 교육이 아니다. 사람을 미덕으로 이끄는 일을 반복적으로 연습하는 것이다.


민중은 선택보다는 필요 때문에 이런 미덕을 연습하게 된다. 만약 그들을 규제하는 법이 없다면 결국 자연스러운 본성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로물루스는 (아들을 파는) 무역을 진행하고 이런 부끄러운 일을 홍보할 일을 맡을 노예와 외국인을 임명했다. 로마인은 미덕을 연습하는 사람의 육체와 정신을 오염시키고 파괴하는 사람이라고 이들을 멸시했다. 이런 무역은 오랫동안 불명예스럽게 진행됐다. 로마 출신 시민 중 누구도 이런 일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


로물루스가 자유 시민에게 허락한 유일한 직업은 농업과 군인이었다. 이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취향의 지배자가 될 수 있으며, 불법적인 애정행각에 덜 휘말려 서로 상처를 주는 일을 하지 않을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또 이런 사람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대신 적을 희생시켜 부자가 되려는 욕심을 따르게 될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로물루스는 스파르타의 사례에서 보듯이 두 직업을 분리해놓으면 불완전하고 서로 트집만 잡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 남자는 밭을 갈고 다른 남자는 적의 영토를 초토화시키는 일을 하게 맡겨두지 않고, 모든 남자가 농부와 군인 일을 동시에 맡게 했다.


로물루스는 평화로울 때에는 남자에게 들판에서 일을 하게 했다. 물론 시장에 갈 필요가 있을 때는 예외였다. 그는 9일마다 한 번씩 장을 열게 했다. 전쟁이 났을 때에는 남자에게 군인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가르쳤다. 전쟁에서 일어나는 어떤 고난이나 좋은 일에서도 남에게 양보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는 적에게서 빼앗은 땅, 노예, 돈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나눠줬다. 이렇게 함으로써 전쟁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게 했다.


시민이 다른 시민에게 범죄를 저지른 경우 재판이 늦어지게 놔두지 않고 즉각 열리게 했다. 때로는 직접 판결을 내렸고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도 했다. 그는 처벌을 범죄의 경중에 따라 구분했다.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막는 데 두려움만큼 좋은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었던 로물루스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많은 장치를 고안했다.


예를 들면 로물루스는 재판을 열 때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자리에 앉았다. 매우 무시무시하게 보이는 군인에게 그를 수행하도록 했다. 그 수는 300명이었다. 또 몽둥이와 도끼를 든 릭토르 열두 명에게는 포로 로마노에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채찍질하도록 했다. 가장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공공장소에서 목을 베었다. 이러한 것들이 로물루스가 창안한 정부의 일반적 성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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