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드비히 판 베토벤은 독일 본에서 태어났지만 그곳에서는 겨우 22년만 살았고 나머지 35년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살다가 57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대표작 대부분은 빈에서 작곡됐고 무덤도 빈에 있다. 모차르트가 죽고 1년 뒤 빈에 간 베토벤이 35년간 80여 곳을 옮겨 다니며 어떻게 살았는지 그 흔적을 따라 도시를 한 바퀴 돌아본다.
■베토벤박물관
베토벤 음악여행의 시작은 쇼텐토어역에서 출발하는 트램 37번이다. 베토벤이 살 때만 해도 한적한 시골이었지만 지금은 고급주택이 즐비한 하일리겐슈타트의 호헤 바르테 정류장에 내린다. 조용한 인도를 따라 5분 정도 걸어가면 베토벤박물관인 ‘베토벤하우스’가 나타난다.
이곳은 빈에서 베토벤 관련시설로는 가장 잘 관리되고 정리된 공간이다. 시내에게 멀리 떨어진 곳까지 사람들이 올까 싶었는데 착각도 이런 착각이 없다. 조그마한 박물관 안에는 적지 않은 관람객이 붐비며 베토벤의 흔적을 훑고 있다. 관람객은 끊이지 않고 몰려든다. 30분쯤 뒤에는 일본인 단체 관광객 20여 명도 박물관에 입장한다.
베토벤은 이곳에서 1802년 여러 달 동안 살았다. 조금만 걸어가면 평원과 산악 지대가 나오는 이곳에 온 것은 건강 때문이었다. 당시 서른두 살이던 그는 4년 전 시작된 청력 저하가 급속도로 악화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의사가 “공기가 맑은 곳에서 지내면 청력이 좋아질 수도 있다”고 권해 일부러 시내에서 떨어진 외곽으로 이사한 것이었다.
베토벤은 청력 상실에 절망한 나머지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언’으로 알려진 편지를 쓰기도 했다. 질병 상태, 심정, 절망감, 희망 등을 연거푸 토로하면서 자살할 것이라는 내용까지 담은 편지였다. 그와 관련된 여러 서류, 자료 중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자료가 아닐 수 없다.
베토벤이 누구에게 보내려고 편지를 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날짜와 함께 ‘프로부스가세 6’이라는 주소가 적힌 편지는 발송되지 않았는데, 그가 죽고 25년이 지난 후 책상 서랍에서 다른 편지들과 함께 발견됐다.
베토벤은 마침내 청력 저하라는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음악’을 끄집어내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게 청력 저하 때문에 상심만 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이익이라는 생각한 것이었다. 위기를 넘긴 그는 여기서 ‘템페스트 소나타’를 작곡했고 ‘교향곡 3번 에로이카’ 작곡을 시작했다.
베토벤은 방 한 칸만 빌려 썼을 뿐이지만 지금은 중정을 사각형으로 에워싼 2층 건물 전체가 박물관으로 조성됐다. 사실 이곳에는 그가 실제로 사용했던 악기, 물건이나 자료는 거의 없다. 대부분 인터넷 등에서 복사한 사진, 자료 등일 뿐이다. 그래도 그가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중요한 시기를 보낸 곳이어서 많은 관람객이 매일 찾아온다.
박물관은 모두 여섯 개의 방으로 구성돼 있는데, 각 방마다 다른 주제로 꾸며져 나름대로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일부 방에서는 헤드폰으로, 또는 스피커로 베토벤의 음악을 들을 수 있어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베토벤박물관에서 나와 골목길을 따라 걷는다. 잠시 후 마이어 온 파르플라츠라는 광장이 나타난다. 광장에는 조그마한 성당은 물론 영어 철자 ‘M’처럼 생긴 건물이 보인다. 건물 외벽에는 ‘베토벤하우스의 호이리거’라는 간판이 붙었다. 호이리거는 와인을 파는 빈 외곽 식당을 뜻한다. 이곳은 17세기부터 와인공장이었는데, 베토벤은 여기서 1817년 수개월간 살면서 ‘교향곡 9번 합창’을 작곡했다.
식당 건물 외벽에는 베토벤이 여기서 살았다는 명패가 붙었고, 실내에는 와인 병 사이에 초상이 세워져 그와의 연관성을 알려준다.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당한 후유증 탓에 성격이 괴팍했던 그는 청력 상실 이후 알코올중독이 심해져 매일 술을 마셨다. 이곳에서도 술을 많이 마신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술을 마시던 때를 상상하면서 와인 한 잔을 들며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아직 오전이라서 와인은커녕 점심조차 생각하기 이른 때라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호이리거에서 5분 정도 걸으면 이번에는 그린징거슈트라세 64번지가 나온다. ‘그릴파저하우스’라고 불리는 이곳은 지금은 많이 허물어져 낡은 건물이지만 베토벤은 1808년 이곳에서 살면서 ‘교향곡 6번 전원’을 작곡했다.
이 집에는 당시 열일곱 살 소년이던 프란츠 그릴파저가 살았다. 그는 나중에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위대한 극작가’라는 평가를 받는 시인 겸 극작가로 성장했다. 베토벤은 어릴 때부터 시인 기질을 보인 소년을 매우 아끼고 사랑했다.
19년 뒤인 1827년 3월 39일 2만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베토벤 장례식에서 자작 추도시를 낭독한 시인은 바로 그릴파저였다. 운명과 인연치고는 정말 대단한 운명과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그릴파저하우스 외벽에는 두 사람의 인연을 새긴 명판이 붙었다.
베토벤의 방은 거리를, 그릴파저의 방은 정원을 바라보는 방향이었다. 베토벤은 수시로 피아노로 곡을 연습하곤 했다. 이럴 때면 음악 소리가 건물 전체에 울려 퍼지곤 했다. 그때마다 그릴파저의 어머니는 음악을 더 잘 들으려고 베토벤 방의 문 앞에 몰래 다가가 음악소리에 귀를 기울었다.
베토벤은 어느 날 문 밖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연주를 중단했다. 그는 문을 벌컥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곳에 앉아 있던 그릴파저의 어머니는 깜짝 놀라 뒤로 넘어졌다. 베토벤은 맞은편 방에 사는 여성이 음악을 훔쳐 듣는다는 사실이 기분 나빴던지 모자를 눌러쓰고 복도를 쿵쿵거리며 나가버렸다. 그는 다시는 방에서 연주하지 않았다.
그릴파저하우스의 초라한 모습을 사진에 담고 다시 트램 37번을 탄다. 이번에는 쇼텐토어역까지 가지 않고 슈바츠파니어슈트라세정류장에서 내린다. 이곳에는 베토벤이 눈을 감은 저택과 그의 장례식이 열린 성당이 있다.
베토벤이 1827년 3월 세상을 떠난 곳은 슈바츠파니어하우스다. 원래 집은 사라졌고 지금은 1900년대 초에 세워진 새 건물만 남았다. 따라서 건물 안팎을 오가며 그의 흔적을 찾으려고 노력해봐야 헛수고일 뿐이다. 건물 외벽에 붙은 부조와 명패에 ‘베토벤이 죽은 집’이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베토벤의 장례 미사는 슈바츠파니어하우스 인근 알저성당에서 열렸다. 이날 미사와 장례식에는 프란츠 슈베르트도 참석했는데, 안타깝게도 1년 뒤 같은 곳에서 그의 장례미사도 열렸다. 성당 외벽에는 두 사람의 장례미사가 열린 곳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명패가 부착됐다.
슈바츠파니어하우스와 알저성당 인근에는 요제피눔의학박물관이 있다. 놀랍게도 이곳에는 베토벤의 두개골 조각이 보관돼 있다. 그가 묻힌 빈 중앙공동묘지에 있어야 할 두개골이 여기에 있는 스토리를 알아보면 정말 기가 막힐 정도다.
베토벤이 죽자 의사 셀리그만이 연구를 위해 베토벤의 두개골 일부를 몰래 빼돌렸다. 두개골은 대를 이어 전해졌는데 마지막에는 프랑스 파리에 살던 셀리그만 동생의 손녀 손에 들어갔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미국 뉴욕에 살던 아들이 유품을 정리하다 두개골 조각이 든 주석함을 발견했다. 함에는 ‘베토벤의 두개골’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아들은 두개골 조각 유전자 검사를 실시했는데 베토벤과 일치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는 지난해 두개골 조각을 빈의과대학교에 기증했고, 대학교는 이를 요제피눔의학박물관에 보관했다. 베토벤이 빈~파리~뉴욕을 돌고 돌아 거의 200년 만에 집에 돌아온 셈이었다.
트램을 이용해 다시 쇼텐토어역에서 내린다. 여기서 5분만 걸어가면 파스퀄라티하우스라는 유서 깊은 건물이 나타난다. 베토벤이 빈에서 살았던 80여 곳 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저택이었다. 그는 1804년 셋집 두 곳을 얻었는데 하나는 여름에 주로 지냈던 이곳 파스퀄라티하우스, 다른 하나는 겨울에 주로 묵었던 안 데어 빈 극장 내부 골방이었다.
파스퀄라티하우스는 지금도 약간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아 웅장한 건물이지만 높고 큰 건물이 많지 않았던 당시에는 더 크고 웅장하게 보였다. 그는 이곳에서 ‘엘리제를 위하여’는 물론 ‘교향곡 4, 5, 7, 8번’과 ‘오페라 피델로’ 등 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베토벤이 살았던 파스퀄라티하우스 꼭대기 층은 나선형 계단 105개를 걸어야 올라갈 수 있다. 다른 층에는 지역주민이 실제로 살기 때문에 조심해서 조용히 걸어야 한다. 그가 살던 층은 박물관으로 변신했는데, 지인과 주고받은 편지나 문서, 각종 개인 물품은 물론 그의 머리카락도 전시돼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사용했던 스트라이셔 그랜드 피아노다.
파스퀄라티하우스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원형 도로인 링슈트라세와 빈 시청사 그리고 부르크극장이 보인다. 하지만 베토벤이 살던 때에는 창밖으로 보이는 것이라고는 성벽과 그 너머 너른 평원뿐이었다. 성벽은 1874년 무너졌고 이후에야 링슈트라세, 빈 시청사 등이 건설됐다.
베토벤을 따라 다니느라 너무 많이 걸었다. 이제 커피 한 잔이 필요한 시간이다. 파스퀄라티하우스에서 내려가면 베토벤이 죽은 뒤인 1873년 개장해 1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카페란트만’이 있다. 이곳은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가수 폴 매카트니가 자주 들렀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미 많은 손님이 테라스 공간까지 차지했다. 겨우 한쪽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멜란지커피와 토르테 한 조각을 주문한다.
베토벤도 커피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가 본에서 빈으로 이사했을 때 짐 중에 커피용품이 꽤 있었다고 한다. 그가 파스퀄라티하우스에서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하며 커피를 마시는 상상을 하면서 커피를 조금 마셔본다. 고소하고 향기롭다.
■로브코비츠궁전
카페란트만에서 호프부르크왕궁을 향해 15분 정도 걸으면 고색창연한 건물이 모퉁이에 나타난다. 지금은 ‘극장박물관’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원래는 로브코비츠궁전이라는 곳이었다. 이곳은 베토벤을 재정적으로 후원했던 로브코비츠 공작의 집이었다.
베토벤은 청력 상실 이전 여러 후원자의 집에 수시로 초청받아 많은 귀족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이곳은 특히 서른 살이던 그가 프랑스, 영국에서 잘나갔던 피아니스트 스타일벨트와 피아노 즉흥곡 연주 대결을 벌인 장소로 유명하다. 귀족 수십 명이 모인 ‘결투’에서 베토벤은 보기 좋게 승리를 거뒀고, 망신을 당한 스타일벨트는 다시는 빈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청력 상실 이후 작곡한 교향곡 3번 에로이카를 여기서 초연했다.
로브코비츠궁전에서 당시 베토벤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다. 올해 ‘요한 슈트라우스 2세 탄생 200주년’을 맞아 특별기념전이 열릴 뿐이다. 그래도 그가 결투 대결을 벌였던 대형 홀은 남아 있어 눈을 감고 당시 모습을 상상해 볼 수는 있다.
여기서 나와 빈국립오페라극장, 즉 비엔나 슈타츠오퍼를 향해 걷는다. 극장 앞 자허호텔의 카페자허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자허토르테로 유명한 초코케이크를 맛보려는 사람들이다.
자허호텔 자리에는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케른트너토어극장이 있었다. 모차르트, 쇼팽 같은 당대 유명 음악가가 연주하던 시설이었다. 모차르트는 이곳에서 1787년 피아노협주곡 25번을 초연했다. 베토벤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교향악 중 최고로 손꼽히는 ‘교향곡 9번 합창’을 여기에서 초연했다.
과거 유명한 음악가들이 연주했던 공연장이었다는 점에서 착안해 자허호텔 각 스위트룸에는 유명한 오페라나 작곡가 이름이 붙여졌다. 라 트라비아타, 카르멘, 이도메네오, 마술피리, 나비부인, 나부초, 리골레토는 물론 레오나르드 번스타인 등이다. 호텔에는 과거 숙박객 중 유명한 사람의 사진을 걸어두었는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레너드 번스타인, 플라치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같은 음악인 사진도 보인다. 물론 평범한 관광객은 이곳에 묵는 게 쉽지 않다. 방값이 하룻밤에 200만~300만 원 정도로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베토벤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는 안 더 비엔 극장이다. 이곳은 쉬카네더가 1801년에 문을 연 오페라하우스였다. 그는 모차르트의 대본작가 겸 오페라 ‘마술피리’ 공동 기획자였다.
베토벤은 이곳에서 살면서 많은 곡을 초연했다. 교향곡 1번과 2번 및 5번 운명, 6번 전원 외에 피아노협주곡 4번, 바이올린협주곡 D장조 등이었다. 그는 극장 골방에서 살면서 수시로 오페라를 보러 갔다. 방에서 나가 몇 걸음만 걸으면 공연장 지정석이어서 굳이 밖에 나갈 필요도 없었다. 그는 청소를 거의 안 했기 때문에 방은 늘 엉망이었다. 유일하게 정리가 된 공간은 피아노 위였다.
안 더 비엔 극장은 최근 안팎 수리를 마치고 깔끔하게 정돈됐다. 이곳에서는 내부를 돌아보는 가이드 투어도 진행되고 베토벤 작품 연주회도 수시로 열린다. 하지만 그가 살던 방은 사라지고 없다.
안 더 비엔 극장에서 5분만 더 걸어가면 베토벤이 살았던 또 다른 주택이 나온다. 그가 ‘장엄 미사곡’ 등을 작곡한 곳인데, 지금은 ‘루드비히 판’이라는 식당으로 바뀌었다. 문이 닫혀 있어 안에 들어가 식사를 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아쉬운 발걸음을 인근의 ‘카페스펠’로 돌린다. 이곳은 사실 음악과는 큰 관련이 없다. 그래도 상당히 유명한 곳이어서 줄을 서야 하는 경우가 많다. 1995년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 두 주인공이 커피를 마시는 곳으로 등장해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2011년에는 빈필하모닉오케스트라 뮤직비디오에도 등장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피곤한 데다 목이 말라 비엔나 아이스커피를 주문한다. 여기에 애플스트루델도 하나 추가다. 헤드폰을 끼고 유튜브로 베토벤의 ‘비창’을 들으면서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1시간 정도 행인 구경을 하다 보니 피로가 풀리기도 하면서 졸린다. 이제는 음악을 끄고 자러 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