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 탄생 200주년이다. 오스트리아는 뜻깊은 해를 맞아 1년 내내 빈 곳곳에서 다양한 기념행사를 연다. 조금 과장해서 빈 전역이 200주년 축하 분위기 일색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생가와 신혼집
슈트라우스 2세의 행적을 어떻게 따라갈까 고민하던 차에 마침 그가 태어난 생가가 숙소인 상수시호텔 근처라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른 아침 식사에 앞서 산책 삼아 생가인 레르헨펠트 슈트라세 15번지까지 걸어갔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1825년 10월에 태어난 곳은 지금은 빈미술사박물관과 시청 근처이지만 당시에는 빈 외곽이었다. 물론 당시 건물은 완전히 사라졌고 새 건물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1층은 자전거 판매점이고 2~4층은 주거용인 모양이다. 그래도 2층 외벽에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여기서 태어났다’는 명패가 붙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사진 한 장 정도는 찍을 여유를 준다.
아침을 든든히 챙겨먹은 뒤 지하철 1호선에 오른다. 네스트로이플라츠역에 내리면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1863부터 1870년대 중반까지 10년가량 살았던 저택 ‘요한 슈트라우스 아파트먼트’가 나온다. 그는 1862년 슈테판대성당에서 결혼한 7세 연상의 성악가 ‘제티’와 이곳에서 살았다.
서로 사랑했던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행복했고,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게 음악적으로나 인생이라는 측면에서나 매우 유익한 시기였다. 그가 대표곡인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작곡한 것도 여기에서 살 때였다. 이 곡이 초연된 것도 인근의 온천시설인 ‘다이애너바트’의 공연장이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부부가 살았던 곳은 저택 2층이었다. 다른 곳은 현지인이 살기 때문에 관람객은 대문 앞에서 지금은 박물관이 된 ‘요한 슈트라우스 아파트먼트’ 벨을 눌러야 들어갈 수 있다. 사실 이곳은 고작 방 3개와 거실 등으로 이뤄진 작은 공간이어서 둘러보는 데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그래도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사용했던 바이올린, 캐비닛, 피아노, 서서 작곡할 때 사용한 입식 책상 등 여러 가구가 비치돼 있다. 또 그가 아내와 함께 살았던 옛 모습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고 그의 음악을 헤드폰으로 들을 수도 있어 시간을 두고 머무를 가치는 충분하다.
■카페 돔마이어
요한 슈트라우스 아파트먼트에서 나와 다시 지하철을 타고 이번에는 쇤브룬궁전 쪽으로 향한다. 물론 그곳이 목적지는 아니다. 지금 가려는 곳은 궁전을 조금 지난 곳에 있는 히칭 지역의 ‘카페 돔마이어’다. 이곳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열아홉 살이던 1844년 데뷔 연주회를 열었던 장소였는데, 그가 데뷔하기 12년 전 문을 연 화려한 공연장을 가진 카지노였다. 개장 초창기에는 그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가 수시로 연주회를 개최하곤 했다.
카페 돔마이어는 지금은 카페 겸 제과점으로 운영된다. 입구에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얼굴과 데뷔 사실을 적은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아직 오전인데도 카페 안은 물론 바깥쪽 자리도 나이 든 손님으로 북적거린다.
마침 커피가 당기던 참이라 가게에 들어간다. 커피 한 잔을 시키려는데 유리진열장 안에 ‘요한 슈트라우스 초콜릿’이 보인다. 주저하지 않고 초콜릿도 함께 주문한다. 마침 빈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거리를 살핀다. 정말 조용한 동네라는 게 한눈에 느껴진다. 이런 곳이라면 ‘빈 한 달 살기’ 같은 이벤트를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시내로 돌아간다.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등 19세기 말~20세기 초 ‘빈 분리파’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만든 빈분리파전시관 바로 맞은편에 있는 ‘요한슈트라우스박물관’에 가기 위해서다.
이 박물관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 탄생 2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빈에 그의 인생, 음악을 한눈에 조명할 수 있는 박물관이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여론에 따라 지난해 연말 문을 열었다. 박물관 자료를 찾아보다 홈페이지에서 이곳의 정체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흥미로운 문구를 발견했다.
‘리버풀에는 비틀즈가 있고, 멤피스에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있고, 빈에는 요한 슈트라우스가 있다.’
요한슈트라우스박물관은 각종 자료와 사진은 물론 첨단기술과 조명 등을 활용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인생, 음악을 환상적으로 꾸민 공간이다. 2개 층인 박물관은 모두 8개의 주제를 가진 방으로 이뤄졌다. 오디오가이드를 들으면서 천천히 돌다보면 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멀티디멘션 왈츠’라는 시설이다. 환상적인 영상, 조명 아래 간이의자에 앉아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음악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한 중년 남성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 음악과 영상 그리고 분위기에 푹 빠졌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대표곡인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황제 왈츠’ 등 왈츠곡은 물론 ‘디 플레더마우스’ 등 오페레타의 아리아도 흘러나온다. 어깨가 절로 들썩여지고 다리가 움찔거리는 걸 참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벽 쪽에 선 두 노부부는 손을 맞잡고 가볍고 조심스럽게 왈츠를 즐긴다.
■슈베르트 생가
칼스플라츠역 인근에서 트램 D를 탄다. 첫날 베토벤박물관에 갈 때 지나갔던 되블링거슈트라세 인근에서 내린다. 과거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연주회를 열었던 저택에 마련된 박물관 겸 연주장인 ‘슈트라우스의 집’에 가려는 게 목적이다. 이곳에서는 꽤 수준 높은 연주회가 열리지만 일정 때문에 참석하기는 어려워 박물관만 둘러볼 목적이다.
사실 박물관은 꽤 비싸다. 입장료만 19유로(약 2만 9000원)다. 그가 남긴 흔적을 훑어보는 수준의 전시회여서 굳이 이런 돈을 내고 들어갈 필요는 없을 듯하다. 요한슈트라우스박물관만 둘러봐도 충분하고 그곳이 오히려 더 훌륭하다.
사실 되블링거슈트라세로 온 실제 목표는 이곳이 아니라 인근에 있는 ‘슈베르트생가’다. ‘슈트라우스의 집’에서 걸어가면 20분, 트램을 타면 10분 거리다. 빈에서 슈베르트의 삶을 볼 수 있는 시설은 이곳뿐이므로 안 가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슈베르트생가는 매우 작다. 밖에서 주변 건물과 비교해보면 생가 건물이 왜소해 보일 정도다. 그의 가족이 살았던 건물은 가난한 소시민 16가구 80여 명이 세를 들어 살던 곳이었다. 부잣집이 아니었으니 건물이 작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건물 전체가 슈베르트생가로 꾸며졌지만 사실 슈베르트 가족은 2층의 방 하나만 빌려 여섯 식구가 함께 살았다. 그나마 아버지가 교사여서 다른 집보다 돈을 조금 더 번 덕분에 슈베르트 가족이 빌린 방이 가장 컸다고 한다.
슈베르트생가는 가운데에 자리 잡은 정원을 건물이 ‘ㄷ’ 형태로 둘러싼 모양이다.
슈베르트 가족이 살았던 큰 방 한가운데에는 책상이 놓였다. 의자에 앉아 장치를 조작하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설이다. 책상 맞은편 벽에는 슈베르트 초성화가 걸렸고, 그가 사용했던 깨어진 안경은 유리보호시설 안에 비치됐다. 원래는 다른 가족이 살던 옆방에는 피아노 한 대가 놓였고, 그 옆방에는 슈베르트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시설이 설치됐다. 여러 방 벽 곳곳에는 다양한 작가가 그린 그의 초상화가 걸렸다.
■음악의 집과 중앙공동묘지
슈베르트생가에서 트램 D를 타고 다시 시내로 간다. 목적지는 오페라하우스 인근에 있는 ‘음악의 집’이다. 엄청난 시설은 아니지만 꽤 흥미로운 곳이다. 총 4개 층으로 이뤄진 시설인데 1층은 ‘빈필하모닉’ 2층은 ‘소노토피아’ 3층은 ‘빈 클래식’ 4층은 ‘가상 지휘자’라는 주제를 갖고 있다.
빈필하모닉오케스트라 관련 자료나 사진으로 장식된 1층에는 ‘빈필의 방’이 있다. 빈필하모닉오케스트라 연주 실황을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실제 현장에 가서 듣는 것에는 못 미치겠지만 유튜브로 듣는 것보다는 훨씬 뛰어나다. 마침 2025년 신년음악회와 2024년 쇤브룬궁전 연주회를 상영한다. 쇤브룬궁전 연주회는 실내 공연장에 가기 힘든 사람도 손쉽게 관람할 수 있는 훌륭한 프로그램이다. 부산에서는 사직야구장, 삼락공원, 용두산공원에서 부산시립관연학단 연주회를 봄이나 여름, 가을에 열면 어떨까.
20여 석에 이르는 관람석에는 젖먹이, 초등학생, 중학생 자녀를 데려온 부모는 물론 노부부도 보인다. 어릴 때부터 늙을 때까지 고전음악을 늘 접하고 살면 친밀하고 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 연주를 듣던 한 어린이는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일어나서 열정적으로 박수를 친다.
3층은 빈을 빛낸 5대 음악가 요제프 하이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루트비히 판 베토벤,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슈베르트는 물론 여러 음악가들을 간단하게 소개하는 공간이다. 가장 먼저 환상적인 디자인으로 꾸며진 하이든의 방이 나온다. 그와 관련된 자료를 비치하고 그가 작곡한 여러 음악이 흐른다.
옆방은 모차르트를 소개하는 공간으로 장식됐다. 그의 가족 그림을 볼 수 있고, 그가 작곡한 음악을 헤드폰으로 들를 수 있다. 베토벤, 슈베르트의 방을 지나면 구스타프 말러의 공간이 나타난다. 마치 숲속처럼 꾸민 방은 다른 곳과 꽤 다른 느낌을 준다.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가 흘러나온다. 이 방의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곡이 아닐 수 없다. 한쪽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아 한참이나 연주를 듣는다.
이제 이번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로 가야 한다.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짐머링역에서 내려 트램 71번으로 갈아탄다. 여기서 5분만 더 가면 빈 중앙공동묘지가 나온다. ‘빈, 카페와 음악’을 주제로 여행하면서 왜 공동묘지에 왔을까. 바로 이곳에 모차르트 기념비는 물론 베토벤,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등 빈과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많은 음악가 무덤이 있기 때문이다.
중앙공동묘지 입구에서 2~3분 걸어가면 음악가의 구역이 나오는데 대부분 음악가는 이곳에 묻혔다. 음악가의 구역 구성은 인상적이다. 모차르트 기념비가 가운데 서 있고 그 주변을 베토벤, 슈베르트 등이 에워싼 형태다.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모차르트가 최고의 음악가라는 걸 내세우기 위해서다. 다들 베토벤을 ‘음악의 황제’라고, 모차르트를 ‘음악의 신동’이라고 불러 베토벤을 한 수 높게 친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셈이다.
사실 모차르트는 무덤도 없고 유해도 없다. 그는 35세이던 1791년 눈을 감았는데 장크트 마르크스 공동묘지에 묻혔다. 당시에는 평민의 경우 공동무덤을 쓰는 게 일반적이었다. 나중에는 그 위에 다른 공동무덤을 또 만들었다. 이 때문에 모차르트의 무덤은 물론 유해를 영원히 찾을 수 없게 돼 버렸다.
빈 시청은 모차르트가 죽고 68년 뒤인 1859년 장크트 마르크스 공동묘지에 기념비를 세웠다. 모차르트를 잊을 수 없었던 후배 음악인들은 기념비를 중앙공동묘지로 옮겼다. 그가 있어야 할 곳은 베토벤 등 많은 음악인이 묻힌 곳이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기념비가 옮겨진 것은 모차르트 사망 100주년이던 1891년이었다.
모차르트 기념비는 크게 상단과 하단으로 나눌 수 있다. 상단에는 위대한 작곡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뮤즈의 조각상이 설치됐다.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뮤즈는 음악 같은 예술을 관장하는 여신이니 모차르트 같은 작곡가를 추모하기에는 가장 적합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하단에는 대리석 비석 몸체에 모차르트의 얼굴이 새겨진 동판이 붙었다.
독일 출신인 베토벤은 1827년 3월 26일 빈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장례식에는 후배 작곡가 슈베르트도 참석해 추모의 횃불을 들고 행진했다. 그는 처음에는 빈 북서쪽 베링 공동묘지에 묻혔다가 1888년 중앙공동묘지로 이장됐다.
베토벤이 죽고 1년 뒤인 1828년 이제 겨우 서른한 살이던 슈베르트가 갑작스레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그는 처음에는 베링 공동묘지의 베토벤 무덤 근처에 매장됐지만 1888년 베토벤과 함께 중앙공동묘지로 이장됐다.
음악가들의 묘비를 찍고 있으려니 정말 많은 사람이 끊임없이 이곳을 찾아온다. 혼자 오는 사람도 있고, 부부로 보이는 중년도 있다. 무더기로 몰려온 단체 관광객도 보인다. 이곳에도 한국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길 건너편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 음악가들의 안식처를 찾아온 사람들을 찬찬히 살펴본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고 헤드폰을 써 모차르트의 유작인 ‘레퀴엠’을 틀어본다. 이곳 분위기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기도 하지만 이곳에서 이 곡을 한 번 들어보는 것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