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그네스와 나보나 광장

by leo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통치하던 291년 로마의 기독교 집안에서 예쁜 여자 아이가 태어났다. 부모는 지체가 아주 높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귀족이었고 비교적 부유한 사람들이었다. 여자 아이는 아그네스(이탈리아어로 아녜제)라는 이름을 얻었다.


아그네스는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애지중지 자랐다. 부모가 워낙 독실한 신자여서 그녀도 갓난아기 때부터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다.


“아빠, 엄마, 나는 커서 결혼하지 않을래요. 평생 하느님의 은총을 축복하며 살 거예요.”


아그네스는 어릴 때부터 말만 이렇게 한 게 아니라 실제로 평생을 순결하게 살 생각을 갖고 있었다. 부모는 신앙심이 깊은 어린 딸이 기특하면서도 남편 없이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갈 일이 걱정되기도 했다.


부모가 미남, 미녀였던 덕에 아그네스도 어릴 때부터 ‘예쁜 아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열서너 살이 됐을 때는 로마 최고의 미인으로 널리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아직 어린 소녀에 불과했지만, 그녀의 미모 이야기를 들은 여러 귀족 집안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러 귀족 중에서도 집정관 샘프로니우스가 특히 흥미를 보였다. 당대 최고 권력자였던 그는 아그네스를 아들과 결혼시키고 싶어 했다. 그는 아그네스가 더 나이 들기 전에 며느리로 들이기로 하고 중매인을 그녀의 부모에게 보냈다.


“집정관님이 아그네스를 무척 아끼십니다. 그래서 며느리로 들이고 싶어 하십니다. 그렇게 된다면 여러분의 노후는 물론 아그네스의 앞날도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딸이 결혼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느님 앞에서 했다는 사실을 아는 아그네스의 부모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딸에게 샘프로니우스 아들의 청혼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이미 하느님의 은혜와 결혼한 몸입니다. 그분을 저버리고 어떻게 세속의 인간과 결혼할 수 있겠습니까? 힘드시겠지만 집정관의 청혼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씀해주세요.”


아그네스가 청혼을 거절했다는 소식을 들은 샘프로니우스는 화가 났다. 신분은 물론 재산에서도 자신과 비교할 수 없는 처지인 아그네스가 로마 최고의 권력자인 자신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자신과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것이라고 생각했다. 샘프로니우스는 아그네스를 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그네스가 기독교 신도라는 점을 알아낸 뒤 처형시키려고 했다. 당시만 해도 기독교를 믿는 것은 로마에서 불법이었다. 당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로마의 여러 황제 중에서도 가장 악랄하게 기독교를 박해한 사람이었다.


“집정관님,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아그네스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서 처녀입니다. 법에 따르면 처녀를 처형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아그네스가 기독교 신도라 하더라도 죽일 수는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시민들의 분노를 사게 될 것입니다.”


법률을 담당하는 부관의 보고를 들은 샘프로니우스는 더 화가 났다. 자신의 명예를 모욕한 아그네스를 죽일 수 없다니 미칠 것만 같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방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던 그는 갑자기 환하게 웃었다. 나름대로 좋은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던 것이다.


“아그네스를 납치해서 매춘굴로 보내라. 다른 남자들이 성폭행하게 만들어라. 아그네스의 몸을 더럽혀 모욕을 주면서 동시에 그것을 핑계 삼아 사형도 시킬 수 있을 것 아니냐?“


아버지만큼이나 화가 난 샘프로니우스의 아들은 병사들을 몇 명 데리고 가 아그네스를 납치한 뒤 매춘굴로 보냈다. 어두운 밤 골목길마저 환하게 밝힐 만한 빼어난 미모를 가진 아그네스가 나타나자, 술에 취한 채 매춘굴에서 뒹굴던 사내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샘프로니우스의 아들은 팔짱을 낀 채 골목 한쪽 벽에 기대 사내들이 아그네스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지켜보기로 했다. 한 병사가 사내들을 보며 말했다.


“저 여자는 집정관님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 너희들이 어떤 짓을 하더라도 집정관님은 너희들을 처벌하지 않을 것이다.”


난데없이 벌어진 일에 처음에는 어리둥절해하던 사내들은 병사들이 끌고 온 아그네스 주변에 침을 질질 흘리며 모여들었다. 한 사내가 허연 이빨을 번득이며 아그네스를 덮치려고 달려들었다. 그의 주변에 서 있던 다른 사내들은 그가 어서 일을 끝내고 자신들에게도 차례가 돌아오기를 고대했다.


아그네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하느님에게 기도를 드렸다. '하느님, 몸과 마음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으악, 내 눈!“


바로 그때였다. 아그네스를 향해 달려들던 사내가 갑자기 두 손으로 눈을 부여잡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른 사내들은 왜 저러지 하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갑자기 눈이 안 보여. 눈이 멀어버렸어.“


다른 사내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들 ‘저 놈이 무슨 미친 짓거리를 하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의 뒤에 서 있던 다른 사내가 다시 아그네스를 덮치려 했다. 그러나 그도 앞의 사내처럼 아그네스 앞에서 갑자기 두 눈을 부여잡고 소리를 질렀다.


“오, 내 눈! 앞이 안 보여. 하느님, 용서해주세요. 잘못했습니다. 제가 천사를 건드리려 했습니다.”


두 사내가 연이어 눈이 멀었다고 소리를 지르자, 다른 사내들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두려움에 떨며 달아나버렸다. 순식간에 매춘굴 골목길에서는 사내들의 모습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샘프로니우스의 아들은 깜짝 놀라 벽에 기댔던 몸을 바로 세웠다. 저놈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아그네스의 몸을 끌어당기려고 손을 내밀었다. 순간 갑자기 앞을 볼 수 없게 됐다.


“아, 눈이 안 보여.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정말 하느님의 분노란 말인가?”


샘프로니우스의 아들은 골목 안에서 이리 비틀 저리 비틀거렸다. 그가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보이자 병사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들 가운데 하나가 샘프로니우스의 집으로 달려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보고했다.


아그네스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샘프로니우스의 아들에게로 갔다. 그는 다시 하느님에게 기도를 올렸다.  


“하느님, 저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세요. 비록 나쁜 짓을 하려 했지만 제게는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습니다. 하느님의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아그네스가 기도를 마치자마자 샘프로니우스의 아들은 다시 앞을 볼 수 있게 됐다. 그는 다시 눈을 뜨자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대로 달아나버렸다.


아들의 이야기를 들은 샘프로니우스는 화가 더 났다. 그는 아그네스에게 다른 혐의를 뒤집어 씌워 친구인 재판관 안토니우스에게 재판하게 했다. 아그네스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 사형 장소는 도미티아누스 경기장으로 정해졌다.


병사들은 아그네스를 묶은 뒤 나무더위 위에 세웠다. 그리고 기름을 끼얹어 나무에 불을 붙이려 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아그네스의 발밑에 쌓인 나무에 불이 붙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샘프로니우스는 짜증을 냈다.


“도대체 무엇 하는 짓들이냐? 그깟 불 하나도 제대로 못 붙인단 말이냐? 비켜라. 내가 직접 하겠다.”


샘프로니우스는 직접 나서서 불을 지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나무에 불을 붙일 수 없었다. 그는 몇 시간이나 식은땀을 흘리며 고생한 끝에 겨우 나무에 불을 붙일 수 있었다. 이때 다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나무에 불이 붙기는 했지만 아그네스의 발밑에 있는 나무는 태우지 않고 주변 나무들만 태웠던 것이다.


샘프로니우스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옆에 서 있던 병사의 칼을 꺼내 아그네스의 목을 베었다. 아그네스의 피는 경기장에 흘러 넘쳐 옆에서 사형을 기다리던 다른 기독교도들의 옷을 적셨다.


아그네스는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성폭행 피해자들의 수호성인이 됐다. 또 순결, 양치기, 소녀, 약혼한 커플, 처녀의 수호성인이 됐다.


유명 인사들의 공동묘지이자 성당인 판테온에서 고대 로마 황제들의 공동묘지인 산탄젤로 쪽으로 가다보면 넓은 광장이 나온다. 광장은 마치 소시지처럼 길쭉하게 생겼다. 대부분 광장이라면 직사각형이거나 대충 비슷한 모양일 텐데 이곳은 매우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과거 이곳은 육상경기를 했던 ‘도미티아누스 경기장’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육상 경기장의 트랙이 길쭉하게 생긴 것과 똑같다.


광장은 다양한 형태의 건물로 둘러싸여 있다. 밤이 되면 광장에는 식당, 선술집에서 내놓은 테이블이 자리를 차지하고, 무명화가들이 작품을 전시하거나 관광객들의 그림을 그려주기도 한다. 이곳은 바로 나보나 광장이다.


옛날 로마가 일곱 언덕만으로 이뤄진 도시였을 때 로마와 테베레 강 사이에 넓은 공터가 있었다. 로마인들은 이곳을 마르스 광장, 마르스 평원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양을 키우는 초원이었지만 나중에 군인들이 군사훈련을 받는 장소가 됐다. 세월이 더 흘러 전쟁을 앞두고 군사들이 모이는 곳이 됐고, 전쟁에서 이긴 뒤 개선식을 치르기 위해 군사들이 대기하는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이곳에서 출발한 개선식 행렬은 포로 로마노의 ‘성스러운 길’을 거쳐 카피톨리노 언덕의 유피테르 신전까지 행진했다.


고대 로마인들은 각종 행사를 치를 수 있는 대형 시설을 많이 건설했다. 검투사 대결 등을 위해 콜로세움을, 전차 경주를 위해 대전차경기장 치르코 마시모를 만들었다. 당시에는 육상경기도 인기가 있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마르스 광장 한쪽 구석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도미티아누스 경기장을 지었다. 이 시설은 로마에서 육상 경기를 위해 지은 첫 상설 경기장이었다. 관중석 규모는 1만 5000~2만 명 정도여서 치르코 마시모보다 조금 작았다. 217년 콜로세움에 불이 나서 복구를 하던 동안에는 도미티아누스 경기장에서 검투사 대결이 펼쳐졌다.


세월이 흘러 로마가 망한 뒤 도미티아누스 경기장은 활기를 잃어버렸다. 나라가 망했는데 사람들에게 육상 경기를 즐길 여유가 있을 턱이 없었다. 경기장은 당연히 원래 용도를 잃어 버렸다. 시내를 떠난 빈민들이 도미티아누스 경기장 등 마르스 광장에 모여 살았다.


그렇다고 해서 도미티아누스 경기장이 아예 부서져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르네상스 초기까지만 해도 여전히 존재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기에 귀족들이 경기장 대리석 등을 건축 자재로 마구 뜯어가는 바람에 결국 없어지고 말았다.


도미티아누스 경기장은 나중에 나보나로 이름이 바뀌었다. 원래 이곳에서 열린 운동경기를 ‘아고네스(agones)’라고 불렀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고네스는 ‘인 아고네(in agone)’로 바뀌었고, 다시 세월이 지나면서 ‘나보네(navone)’로 변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오늘날의 이름인 ‘나보나(navona)’가 됐다.


나보나 광장이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17~18세기 무렵이다. 1644년 대주교 팜필이 인노첸시오 10세 교황으로 서임되면서부터 이곳은 크게 변모했다. 그는 원래 교황이 되기 전부터 나보나 광장에 대저택을 갖고 있었다. 그는 높아진 명성에 걸맞게 더 큰 건물을 짓고 싶어 했다. 그래서 저택 주변 땅을 사들인 뒤 팜필 궁전을 건설했다.


인노첸시오 10세는 팜필 궁전이 들어선 나보나 광장을 멋있게 꾸미고 싶었다. 그래서 당대 최고 건축가인 베르니니에게 ‘4대강 분수’를 짓게 했다. 분수 한가운데에는 교황의 권력을 상징하는 오벨리스크를 세웠다. 오벨리스크 꼭대기에는 팜필 가문의 상징인 비둘기를 달았다.


‘4대강 분수’에서 4대강은 갠지스 강, 나일 강, 다뉴브 강, 라플라타 강이다. 네 강은 다양한 사람의 모습으로 묘사돼 있다.


긴 노를 가진 사람은 바로 갠지스 강이다. 노가 길다는 것은 배가 아주 쉽게 멀리 다닐 수 있다는 뜻이다. 갠지스 강은 그만큼 역사가 깊고 넓고 풍요롭다는 뜻을 담고 있다. 노가 길면 배가 안전하게 멀리 갈 수 있다. 인노첸시오 10세의 가문이 갠지스 강과 긴 노를 가진 배처럼 영구히 존속하기를 소망한다는 뜻을 담았다. 나일 강을 상징하는 인물은 머리에 덮인 천을 걷어내려고 애쓰고 있다. 천이 눈을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즉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모른다는 것이다. 천을 걷어내려 하는 것은 알고 싶다는 뜻이다. 이것은 당시만 해도 나일강의 원천이 어딘지를 몰랐다는 것을 뜻한다.


한 사내가 오른손으로 문양을 잡으려 하고 있다. 다뉴브 강을 상징하는 사람이다. 문양은 인노첸시오 10세 가문의 것이다. 다뉴브 강은 로마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의 강이라는 뜻이다. 라플라타 강을 상징하는 사람은 동전 더미 위에 앉아 뱀을 보고 놀라고 있다. 동전은 황금의 대륙 아메리카가 유럽에 가져다준 부를 상징한다. 뱀은, 부자가 돈을 도둑맞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있는 것을 의미한다.


‘4대강 분수’를 완공한 인노첸시오 10세는 성 아그네스를 위한 성당도 짓기로 했다. 나보나 광장이 성 아그네스의 순교지라는 데 착안했다. 팜필 궁전 앞에 4대강 분수를 지어 분위기를 만들었으니 성당까지 지으면 궁전의 위상이 더 높아질 거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교황의 뜻이니만큼 새 성당 건설에는 당대 최고 건축가였던 레이날디 부자는 물론 보로미니와 베르니니가 참여했다. 인노첸시오 10세는 성당이 완성되는 장면을 지켜보지 못했다. 그가 죽은 뒤에야 완공됐기 때문이다.


사실 성 아그네스 성당은 교황의 가족 기도실이나 마찬가지였다. 성당은 팜필 궁전 바로 옆에 붙어 있다. 그래서 팜필 가문 사람들이 손쉽게 성당으로 드나들 수 있었다. 이 성당에는 기도실에 성 아그네스의 해골이 모셔져 있다. 카타콤베 위에 지어진 성 아그네스 교회 제단 밑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