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왕정 시대 마지막 왕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는 일곱 언덕 중 가장 높은 타르페이아 언덕에 새로운 신전을 짓기로 했다.
그는 물론 그의 할아버지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는 사비니족과 전쟁하러 나갔을 때 ‘승리를 거둔다면 유피테르, 유노, 미네르바를 모시는 신전을 지어 바치겠다’고 맹세한 적이 있었다. 신에게 한 맹세를 지키지 않으면 나중에 천벌을 받는다는 게 당시 로마인의 생각이었다.
로마인들이 이 언덕을 ‘타르피아’라고 부른 것은 역사를 잊지 말자는 뜻에서였다. 타르피아는 과거 초대 국왕 로물루스 시절 로마에 쳐들어온 사비니족에게 나라를 팔아먹는 바람에 이 언덕에서 아래로 떨어져 죽은 소녀의 이름이었다. 조국을 배신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려는 게 로마인들이 이런 이름을 붙인 이유였다.
타르페이아 언덕에는 이때까지만 해도 로물루스가 건설한 유피테르 신전이 있었다. 규모는 매우 작아 가로, 세로 길이가 겨우 5~6m에 불과했다. 4대 왕인 안쿠스 마르키우스가 신전을 증축했지만 여전히 규모는 크지 않았다.
타르퀴니우스는 각종 전쟁에서 챙긴 전리품을 판 수익금을 신전 건설비용으로 투입했다. 주변 도시들과의 전쟁이 모두 끝났기 때문에 싸우러 나갈 일이 없어진 로마 평민을 강제로 공사에 총동원했다. 로마는 물론 주변 도시에서 건축에 오래 종사한 기술자를 모두 투입하기도 했다.
기초 작업을 위해 타르페이아 언덕을 팔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막 살해된 남자의 머리가 발견된 것이었다. 깨진 머리에서는 따뜻하고 신선한 피가 흘러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소식을 들은 타르퀴니우스는 곧바로 현장에 달려가 잠시 작업을 멈추라고 했다. 그는 로마의 점술가들을 불러 모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오?”
“저희들로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당장 에트루리아에 가서 최고의 점술가들을 찾아보도록 하시오.”
타르퀴니우스는 먼저 첩자를 에트루리아에 보내 누가 점술을 가장 잘 보는지 살폈다. 점술 능력이 최고라고 알려진 점술가를 찾아낸 그는 로마의 저명인사들을 몰래 사절단으로 보냈다.
로마 사절단이 에트루리아 점술가 집에 갔을 때 한 청년이 문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로마에서 온 사절이오. 점술사 선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소. 그분에게 우리가 왔다고 전해주시오.”
청년은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면서 사절단을 한쪽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그분은 저의 아버지이신데 지금 매우 바쁘십니다. 잠시 후에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먼저 왜 오셨는지 저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잘 모르시겠지만 여러분이 질문을 할 때 실수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에게서 미리 이야기를 듣고 가면 실수를 피할 수 있습니다. 질문을 정확하게 하는 게 점술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사절단은 그의 조언에 따라 타르페이아 언덕에서 일어난 이적을 설명했다. 젊은이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놀라운 조언을 내놓았다.
“제 말을 잘 들으세요. 아버지는 이적의 의미를 설명해 주실 거예요. 거짓을 말씀하시지는 않습니다. 점술가가 거짓말을 하는 건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여러분이 답변할 때 실수하도록 유도질문을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질문하고 답변할 때 실수하지 않도록 제가 묻고 답하는 방법을 미리 알려드리겠습니다.
먼저 아버지에게 이적을 설명하십시오. 아버지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실 겁니다. 그리고 작대기로 땅에 선을 긋고 이렇게 말씀하실 거예요.
‘이것은 타르페이아 언덕이오. 이쪽은 동쪽을 보고 있고, 이쪽은 서쪽, 이쪽은 북쪽, 반대쪽은 남쪽을 보고 있다오.’
아버지는 작대기로 각 방향을 여러분에게 가리키실 겁니다. 그리고 어느 쪽에서 머리가 발견됐느냐고 물으실 거예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아버지가 작대기로 방향을 가리키면서 물어볼 때 절대 대답하지 마십시오. 대신 이렇게 말씀하세요.
‘우리가 로마에서 타르페이아 언덕에 있을 때 나타났습니다.’
아버지가 계속 답변을 강요하더라도 절대 속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고 숨김없이 이적의 의미를 설명해주실 거예요.”
미리 설명을 들은 사절단은 잠시 후 밖으로 나온 하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점술가에게 이적을 설명했다. 점술가는 아들의 말처럼 아주 교묘하게 사절단을 속이려고 했다. 그는 땅에 원을 그린 뒤 직선을 긋고 계속 물었다.
“머리가 어느 방향에서 발견됐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십시오.”
사절단은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지 않고 굳건하게 한 가지 대답만 반복했다. 모두 점술가의 아들이 미리 가르쳐준 대로였다.
“로마의 타르페이아 언덕입니다.”
점술가가 원과 선을 그은 땅은 에트루리아였다. 로마 사절단이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결국 그곳은 에트루리아 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점술가는 영광을 로마가 아니라 에트루리아에 주고 싶었던 것이다.
점술가가 계속 대답을 강요하자 사절단은 버럭 화를 냈다.
“점술가여! 조짐을 당신 마음대로 이용하려 하지 마시오. 공정하게 대답하시오.”
점술가는 로마 사절들을 속여 조점을 에트루리아에 유리하게 이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할 수 없이 진실을 털어놓았다.
“당신 동료들에게 전하시오. 머리를 발견한 장소는 이탈리아의 머리가 될 운명이 점지된 곳이라고.”
에트루리아에서 돌아온 사절단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타르퀴니우스는 매우 기뻐하더니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말을 꺼냈다.
“언덕에서 발견한 머리는 먼 옛날 전설에 나오는 에트루리아의 영웅 아울루스 비벤나의 유골이다. 내가 옛 영웅의 머리를 발견한 것은 로마의 전성기를 이룰 위대한 통치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널리 알리도록 하라.”
로마인들은 아울루스의 머리가 발견된 이후에는 언덕에 타르페이아 대신 ‘카푸트 올리(Caput Oli)’라는 이름을 붙였다. ‘카푸트’는 ‘머리’라는 뜻이고 ‘올리’는 아울루스의 약칭이다. 따라서 카푸트 올리는 ‘아울루스의 머리’라는 의미다. 이 이름이 조금씩 변해 나중에 카피톨리노(Capitolino)가 됐다.
타르퀴니우스는 기술자들에게 신전을 당초 계획보다 더 크게 지으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그는 신전의 완성을 볼 수 없는 게 타고난 운명이었다. 사절단이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마인들에게 밀려 권력에서 쫓겨난 것이었다. 신전은 그가 퇴위하고 10여 년 뒤에야 최종적으로 완성됐다.
카피톨리노 언덕에 완성된 신전의 정식 명칭은 유피테르 옵티무스 막시무스 카피톨리누스였다. 둘레는 244m, 각 면은 61m였다. 남쪽을 바라보는 전면에는 기둥이 세 줄로 세워졌다. 다른 면에는 기둥이 한 줄씩 세워졌다. 신전은 하나의 지붕 아래 세 개의 사원으로 구성됐다. 중간의 사원은 유피테르에게, 양측 사원은 유노와 미네르바에서 헌정됐다.
고대 로마 역사를 통틀어 카피톨리노 언덕의 유피테르 신전은 로마의 많은 유피테르 신전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신성시되던 곳이었다. 이곳은 로마의 종교는 물론 패권을 상징하는 장소였다.
로마는 고대 로마 제국의 수도였고, 카피톨리노 언덕과 유피테르 신전은 로마의 심장이었다. 나중에 영어와 스페인어로 국가의 수도를 캐피털(capital), 프랑스어로 캐피탈레(capitale)라고 부르게 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