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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Nov 20. 2020

4. 로물루스(7)

사비니와의 대혈전



로물루스는 호전적인 민족에 맞서 로마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최선을 다해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팔라티노 언덕 주변에 높은 성채를 세우고 성벽을 더 높였다. 해자를 파고 강한 말뚝 울타리를 세워 아벤티노와 카피톨리노 등 인근 언덕의 방비도 강화했다. 


로물루스는 목동들에게 밤에는 가축을 몰고 언덕에 올라가라고 했다. 경비병들이 가축을 지키게 하려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방어에 도움이 되는 다른 장소에도 해자를 파고 말뚝 울타리를 세우고 경비병을 배치했다. 


이러는 사이 군사적 업적으로 널리 알려진 한 사내가 그를 찾아왔다. 이름은 루코모였다. 둘은 친구가 됐다. 루코모는 에트루리아의 도시인 솔로니움에서 상당한 규모의 용병을 이끌고 왔다. 알바에서도 할아버지가 보낸 상당한 규모의 병사들이 전쟁 무기를 만드는 기술자들과 함께 왔다. 이들은 군수품, 무기, 그리고 모든 전쟁용품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양측은 전쟁을 위한 준비를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사비니 족은 봄이 시작할 때 출정할 계획이었다. 이들은 먼저 로마에 사절을 보냈다. 여자들을 돌려보내고, 그들을 납치한 데 대해 보상을 요구했다. 이렇게 하면 정의를 이루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필요성 때문에 할 수 없이 전쟁을 시작한다는 명분을 얻을 수 있었다. 로물루스는 사절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여자들은 억지로 남편과 살고 있는 게 아니오. 그러니 계속 남편과 함께 살 수 있게 해야 하오. 그 외에 사비니 족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허용하겠소. 친구로서 부탁하고 전쟁을 시작하지 않는다는 게 조건이라면 말이오.”


사비니족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은 군대를 이끌고 출정했다. 보병만 2만 5천 명이었고, 기병은 1천 기였다. 


로마군 병력은 사비니 족에 비해 그렇게 적지는 않았다. 보병은 2만 명, 기병은 800기 정도였다. 로마군은 도시 앞 두 지점에 진지를 세웠다. 하나는 에스퀼리노 언덕에 차려 로물루스가지휘했고, 다른 하나는 퀴리날레 언덕에 차려 루코모가 지휘했다. 


사비니 족 왕인 타티우스는 로마군의 준비상황에 대한 보고를 듣고는 밤에 진지에서 떠나 군대를 이끌고 국경을 넘었다. 들판에 있는 로마인 재산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고 해가 뜨기 전에 퀴리날레 언덕과 카피톨리노 언덕 사이에 있는 평원에 진을 쳤다. 


로마군의 모든 진지는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고 사비니 족이 차지할 만한 좋은 위치는 남아 있지 않았다. 타티우스는 궁지에 몰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곤란해 할 때 행운이 찾아왔다. 가장 강력한 성채 중 하나가 공짜로 그에게 굴러들어온 것이었다. 


사비니군은 카피톨리노 언덕 인근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 지역을 살펴보고 어떻게 하면 그 언덕을 기습으로 차지할 수 있을지를 알아보려는 뜻에서였다. 성에서 한 처녀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성을 지키는 임무를 부여받은 유명한 장수의 딸인 타르페이아였다. 


파비우스와 킨키우스의 말에 따르면 타르페이아는 사비니 병사들이 왼손에 차고 있는 팔찌와 반지를 보고 욕심을 갖게 됐다. 당시 사비니 족은 황금 장식품을 몸에 달고 다녔다. 에트루리아에 뒤지지 않을 만큼 고급스러운 관습이었다. 


그러나 전직 감사관인 루키우스 피소에 따르면 그녀는 고귀한 행위를 해야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어었다. 적의 무기를 빼앗아 동료 시민들에게 넘겨하려는 게 그녀의 목표였다는 것이다. 둘 중 어느 게 진실인지는 다음에 일어난 일로 판단할 수 있다. 


타르페이아는 작은 성문으로 시녀 하나를 보냈다. 사비니 왕에게 중요한 일이 있다며 개인적으로 와서 대화를 나누자는  뜻을 전하게 했다. 타티우스는 성채를 몰래 빼앗을 희망으로 제안을 받아들여 약속 장소로 갔다 타르페이아는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간 뒤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밤에 일이 생겨 성에서 나갈 겁니다. 그대는 제가 성문 열쇠를 가지고 있지요. 사비니군이 밤에 온다면 성문을 열어주겠습니다. 단 배신의 보상으로 사비니 병사들이 왼팔에 차고 있는 걸 저에게 주십시오.”


타티우스는 타르페이아의 제안에 동의했다. 그는 의식을 열어 신에게 약속을 지키겠다고 맹세했다. 타르페이아도 마찬가지였다. 


사비니군이 들어올 장소로 성에서 가장 큰 문을 선택하고, 모험의 시간으로는 밤에 경비병이 드문 때를 고른 타르페이아는 성에 있는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돌아갔다.


지금까지 내용은 로마 역사학자들이 대부분 동의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음 내용은 그렇지 않다. 전직 감사관 피소는 이렇게 주장한다.


‘타르페이아는 심부름꾼 한 명을 밤에 내보내 로물루스에게 타티우스와 맺은 약속을 알리라고 했다. 그리고 왕과 약속할 때 표현을 애매하게 한 걸 이용함으로써 방어 무기를 달라고 한 내용도 알리게 했다. 


타르페이아는 로물루스에게 밤에 성으로 지원병을 보내면 적군은 물론 적의 왕에게서 무기를 빼앗고 포로로 사로잡을 수 있다고 설명하라고 했다. 하지만 심부름꾼은 사비니 왕에게 달아나 타르페이아의 계획을 밀고해 버렸다.’


반면 파비우스와 킨키우스는 위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타르페이아는 반역하기로 한 약속을 지켰다.’ 


다음 내용은 모두가 동의하는 부분이다. 사비니 왕은 최정예 병사들을 이끌고 성 앞에 도착했다. 타르페이아는 약속대로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마치 사비니군이 성을 완벽하게 점령한 것처럼 하면서 로마 병사들에게 적이 모르는 문을 통해 빨리 달아나서 목숨을 구하라고 했다. 


로마 병사들이 달아난 뒤 사비니군은 열린 문으로 들어가 성을 점령할 수 있었다. 그들은 남아 있던 경비병들은 모두 제거해 버렸다. 타르페이아는 약속을 모두 지켰다면서 맹세에 따라 반역의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피소는 이렇게 설명한다.


‘사비니군은 왼손에 차고 있는 황금 팔찌를 타르페이아에게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타르페이아는 팔찌 대신 방패를 달라고 요구했다. 타티우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걸 분하게 생각했다. 


타티우스는 고민하다 약속을 어기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는 타르페이아에게 원하는 무기를 모두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방패를 높이 들어 올리더니 온 힘을 다해 타르페이아에게 던져 버렸다. 다른 병사들에게도 똑같이 하라고 지시했다. 타르페이아는 사방에서 날아온 방패에 맞아 목숨을 잃고 말았다.’


파비우스는 다르게 이야기한다. 


‘사비니 족은 약속을 이행하는 것처럼 하면서 사기를 쳤. 그들은 약속대로 타르페이아에게 금을 건네주지 않을 수 없었지만 보상이 너무 과하다는 점에 분개했다. 그들은 대신 처음에 맹세를 할 때 방패를 주기로 약속한 것처럼 방패를 집어던졌다.’


다음에 일어난 일을 보면 피소의 말이 진리에 더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타르페이아가 죽은 장소에 사비니인은 그녀를 기리는 기념비를 세웠다. 그리고 로마에서 가장 성스러운 그 언덕에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로마인은 해마다 타르페이아에게 신주를 바친다. 이상은 피소가 밝힌 내용이다. 


만약 타르페이아가 적에게 나라를 팔아먹다 죽었다면 로마는 물론 사비니 족으로부터 이런 영예를 받을 수 없는 게 당연하다. 타르페이아의 유해가 남아 있었다면 로마인은 비슷한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경고를 주기 위해서 유해를 파헤쳐 도시 밖으로 내던졌을 것이다. 


타티우스와 사비니군은 강력한 성채를 장악함으로써 어려움 없이 로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뒤 안전하게 전쟁을 수행할 있었다. 


두 군대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진지를 구축한 뒤 사소한 충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양측 모두 큰 이익이나 손해를 보지 않은 전투였다. 여기에 두 차례 아주 심각한 대규모 결전도 벌어졌다. 모든 군대가 격렬하게 맞섰고, 양측에서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시간이 계속 흘러감에 따라 양측은 총력전으로 전쟁을 마무리할 생각을 하게 됐다. 

로물루스와 타티우스는 모두 전술의 대가였다. 또 일반 병사들도 많은 전투에서 경험을 쌓았다. 그들은 두 진지 사이에 놓인 평원(포로 로마노)으로 진격해 서로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공격을 받았다. 동등한 조건에서 접전을 벌이거나 다시 싸움을 재개하면서 기억에 남을 만한 전투를 수행했다. 


양측의 성채를 지키던 병사들은 싸움의 관중 열할을 했다. 전투 양상은 수시로 바뀌었다. 어느 한쪽이 유리하다가 잠시 후 상황이 변해 다른 쪽이 유리해졌다. 한쪽 병사들이 우세하게 싸우면 관중은 함성을 지르거나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신선한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거꾸로 자기편 병사들이 심하게 압박을 받거나 쫓기면 기도를 하거나 안타까워하면서 그들이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격려했다. 


이 같은 격려와 간청 덕분에 전투에 나선 병사들은 육체적 한계를 넘어서는 지경까지 전투의 위험을 이겨낼 수 있었다. 양측은 결론 없이 하루 종일 전쟁을 수행했다. 어둠이 찾아오자 병사들은 진지로 돌아갔다.


다음 날 양측은 사망자를 묻었다. 부상자를 치료하면서 병사들을 재정비했다. 그리고 다시 전투를 벌이기로 작정했다. 양측은 이전처럼 포로 로마노에서 만나 밤이 될 때까지 싸웠다. 이 전투에서 로마군은 양쪽 측면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우익은 로물루스가, 좌익은 에트루리아에서 온 루코모가 지휘했다. 하지만 중앙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는 어느 쪽도 우위를 잡지 못했다. 


그때 한 사내가 나타나 사비니의 완벽한 패배를 막아주었다. 그는 흔들리는 병사들을 모아 로마군과 새롭게 전투를 벌였다. 그의 이름은 메티우스 쿠르티우스였다. 육체적으로 매우 강인했고, 전투에 나설 때에는 용기가 넘쳤다. 두려움과 위험을 경멸하는 태도로 유명했다.


쿠르티우스는 중앙에서 싸우는 사비니군 지휘관이었다. 그는 앞을 가로막는 로마군 병사들을 모두 쓰러뜨렸다. 사비니군이 큰 어려움에 몰려 밀려나고 있던 양 측면의 전투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해 그는 주변에 있던 병사들을 격려해 로마군을 쫓아갔다. 그들을 로마의 성으로 도망가게 만들었다. 


이 모습을 본 로물루스는 이미 절반쯤 완성한 승리를 미뤄야 했다. 그는 서둘러 성으로 돌아가 의기양양한 사비니군에 맞서 싸웠다. 로물루스가 병사들을 이끌고 떠나자 궁지에 몰렸던 사비니 병사들은 다시 로마군과 비슷한 조건을 이룰 수 있었다. 


로마군의 모든 공격은 쿠르티우스와 그의 병사들에게 집중됐다. 이들은 한동안 로마군의 총공세를 견뎌야 했다. 이들은 용감하게 싸웠지만 너무 많은 로마군이 공격하는 바람에 진지로 달아나 안전을 꾀할 수밖에 없었다. 


쿠르티우스는 여유 있게 퇴각을 시작했다. 무질서하게 달아나지 않았고 혼돈을 겪지 않으면서 철수했다. 그는 자리를 지켜 싸우다가 로물루스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여기서 두 장군 사이에 엄청나고 영광스러운 싸움이 벌어졌다. 


쿠르티우스는 곳곳에 상처를 입고 피를 많이 흘렸다. 그는 뒤쪽의 깊은 웅덩이까지 조금씩 밀려났다. 웅덩이를 돌아갈 수는 없었다. 로마군이 양쪽에서 대규모로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웅덩이 주변에는 엄청난 진흙이 깔려 있었기 때문에 지나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웅덩이 가운데 부분은 꽤 깊어 헤엄치기도 어려웠다. 


쿠르티우스는 주저하지 않고 웅덩이에 몸을 던졌다. 그는 중무장한 상태였다. 로물루스는 쿠르티우스가 웅덩이에 빠져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따라 진흙과 물로 뛰어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로물루스는 다른 사비니 병사들에게로 달려갔다. 


궁지에 몰린 쿠르티우스는 한참 뒤 웅덩이에서 빠져나갔다. 무기를 하나도 잃지 않고 캠프로 무사히 돌아갔다. 지금 그 웅덩이는 메워졌다. 당시 일어났던 사건 때문에 이곳은 라쿠스 쿠르티우스라고 불린다. 포로 로마노 한가운데에 있는 곳이다.


로물루스는 다른 사비니 병사들을 추격하다가 카피톨리노 언덕 근처까지 접근했다. 그는 성채를 재탈환할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많은 상처 때문에 지친데다 성채에서 날아온 큰 돌에 맞아 쓰러지고 말았다. 그는 반쯤 죽은 채 병사들에 의해 팔라티노 언덕의 성 안으로 긴급히 이송됐다. 



로물루스가 사라지자 로마 병사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우익에서 싸우던 병사들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루코모와 함께 좌익에 있던 군대는 장군의 격려를 받으며 한동안 제자리를 지켰다. 루코모는 전쟁에서 뛰어난 기량으로 유명했고, 이번 전쟁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런데 루코모도 갑자기 날아온 창에 옆구리를 찔려 쓰러지고 말았다. 로마군은 달아났다. 이렇게 해서 모든 로마군이 퇴각하게 됐다. 


용기를 얻은 사비니 병사들은 팔라티노 언덕까지 추격전을 벌였다. 하지만 성문 근처까지 접근했을 때 로물루스로부터 성벽을 지키라는 지시를 받은 청년들이 지치지 않은 힘을 앞세워 반격하는 바람에 그들은 물러나야 했다. 


이때 로물루스가 부상에서 어느 정도 회복해 놀라운 속도로 병사들을 지원하러 달려갔다. 전쟁의 행운은 순식간에 바뀌어 강력하게 로마군 쪽으로 넘어가버렸다. 달아나던 병사들은 갑자기 나타난 장군의 모습을 보고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전열을 재정비해 지체하지 않고 사비니군에 맞서 싸웠다.


사비니 병사들은 로마군 패잔병을 도시까지 추격하면서 이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도시로 쳐들어갈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하다가 갑작스러운 사태 변화를 보고 안전부터 챙겨야 할 처지가 됐다. 그러나 진지로 물러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고지에서 내려오면서 텅 빈 길을 지나 달아나야 했다. 그들은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양측이 예기치 않은 행운의 반전을 주고받기만 할 뿐 결론을 내지 못하고 하루 종일 싸운 뒤 태양은 서서히 지고 있었다. 두 나라 병사들은 모두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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