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보이지 않는 브라만 부부가 살았습니다. 그들은 아들 브라만이 구걸해서 얻어오는 음식에 의존해 살았습니다. 이런 생활은 오랫동안 계속됐습니다. 마침내 아들 브라만은 비참한 인생에 지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로 가서 그의 운을 시험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나라로 갈 거요. 내가 없는 몇 달 동안만 부모님을 잘 모셔주시오.”
아들 브라만은 음식을 꾸려 길을 떠났습니다. 여러 날을 걸은 끝에 이웃 나라의 수도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한 상인의 가게 앞에서 먹을 것을 좀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상인이 그를 보고 물었습니다.
“어디서 오신 분이시오? 여기는 왜 오신 거요? 신분은 어떻게 되시오?”
“저는 브라만입니다. 아버지는 눈이 안 보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님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매일 구걸을 한답니다.”
상인은 아들 브라만의 처지를 딱하게 여겼습니다.
“우리나라 왕은 매우 자상하시지요. 그 분께 가보는 건 어떻겠소? 내가 궁전까지 데려주겠소.”
마침 그때 왕은 브라만을 한 명 구하고 있었습니다. 막 준공한 황금사원을 돌볼 수 있는 브라만이었습니다. 상인이 젊은 브라만을 데리고 가 매우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소개하자 왕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너에게 이 사원 관리를 맡기겠다. 임금으로 매년 쌀 50포대와 현금 100루피를 주겠다.”
두 달 뒤 브라만의 아내가 남편을 찾으러 집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남편이 도착한 곳까지 가게 됐습니다. 그곳에 있는 황금사원에서 매일 아침 왕이 거지 한 명을 골라 1루피를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내는 다음날 아침 서둘러 궁전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뜻하지 않게 남편을 만났습니다.
“당신이 여기는 왜 온 것이오? 왜 부모님을 버리고 온 것이오. 그분들이 저주해서 내가 죽어도 괜찮단 말이오. 당장 돌아가시오. 내가 귀가할 때까지 기다리시오.”
“싫어요. 굶어죽으러 돌아가기 싫어요. 시부모님이 굶어서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요. 집에 쌀 한 톨도 남아있지 않단 말이에요.”
“아! 이런!”
아들 브라만은 괴로운 표정을 짓더니 종이에 무언가를 적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건넸습니다.
“자! 이걸 받으시오. 나중에 왕에게 보여주시오. 그러면 왕이 돈을 줄 것이오. 이제 서둘러 돌아가시오.”
아들 브라만이 건네준 종이에는 세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첫째, 여행을 하다가 밤에 낯선 장소에 도착하면 어디에 머물더라도 항상 조심하라. 절대 잠들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두 번째, 결혼한 여동생 집을 방문할 때는 아주 화려하고 위풍당당하게 가라. 동생은 오빠로부터 챙길 걸 생각하면서 환대할 것이다. 하지만 거지 모습으로 가면 눈살을 찌푸리고 쫓아낼 것이다. 세 번째, 어떤 일을 하려거든 직접 하라. 그리고 용기를 가지고 두려움 없이 처리하라.
아내는 집에 도착해서 남편을 만난 이야기를 시부모에게 전했습니다. 남편이 종이쪽지 하나를 줬다고도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왕에게 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친척을 대신 보냈습니다. 왕은 종이를 읽더니 화를 냈습니다.
“저 자를 두들겨 패서 쫓아내라.”
다음날 아침 실망한 아내는 종이를 읽으면서 길을 걷다 우연히 왕의 아들을 만났습니다.
“여인이여! 무엇을 그리 열심히 읽고 계시오?”
“다른 나라에서 황금사원을 지키는 남편이 저에게 준 것입니다. 이 종이를 왕에게 건네면 돈을 줄 거라고 했는데 왕께서는 돈 대신 매를 주셨습니다.”
“내게 보여주시오. 그럼 돈을 드리리다.”
왕자는 아들 브라만의 아내에게서 받은 종이를 읽어보았습니다. 분명히 어딘가에 쓸모가 있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는 말에 올라 궁전으로 돌아갔습니다. 브라만의 아내는 왕자에게서 받은 돈으로 쌀을 넉넉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시부모와 아이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었습니다.
왕자는 그날 저녁 왕에게 아들 브라만의 아내를 만난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종이쪽지를 산 일도 설명했습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칭찬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반대였습니다.
“이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내가 낮에 그 종이를 가지고 온 자를 흠씬 두들겨 패서 쫓아버렸는데, 너는 돈을 주고 샀단 말이지? 당장 궁전에서 나가거라. 너처럼 어리석은 놈에게 이 나라를 줄 수 없다.”
왕자는 어머니와 친척, 친구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말에 올라 나라를 떠났습니다. 어디로 갈지 생각도 없었습니다. 왕자는 해가 질 무렵 처음 보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낯선 사내를 만났습니다. 그는 왕자를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시오. 우리 집에 가서 하룻밤을 묵도록 하십시오.”
“고맙습니다.”
사내는 왕자를 위해 바닥에 매트를 깔았습니다. 그리고 음식도 제공했습니다. 음식과 매트를 본 왕자는 아들 브라만의 아내에게서 산 종이쪽지를 생각했습니다.
‘아! 이 종이가 일러준 첫 사례가 바로 이것이구나. 오늘밤 잠들면 안 되겠군.’
사내는 한밤중에 조용히 일어나더니 칼을 들고 왕자에게 몰래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이불 위로 칼을 깊이 찔렀습니다. 이미 일어나 숨어있던 왕자가 사내 뒤에 나타났습니다.
“왜 나를 죽이려 하는 것입니까? 내가 죽으면 당신에게 무슨 도움이 된단 말입니까? 굳이 나를 죽이려 한다면 개를 죽인 사내 꼴이 되고 말 겁니다.”
“개를 죽인 사내라니, 무슨 말입니까?”
“칼을 내려놓으면 말해드리지요.”
사내는 칼을 멀리 던져버렸다. 왕자는 사내의 손을 잡아 자리에 앉히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 부유한 상인이 살았습니다. 그에게는 개가 한 마리 있었지요. 어느 날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상인은 갑자기 가난해졌습니다. 그는 형제처럼 지내는 다른 상인에게서 5천 루피를 빌렸지요. 그리고 돈을 갚겠다는 징표로 아끼던 개를 보냈답니다.
머지않아 다른 상인의 집에 도둑이 들어 온 재산을 털어 갔습니다. 그의 수중에 단 1루피도 남지 않았지요. 그런데 개는 상황을 다 알고 있었어요. 그는 도둑들을 따라가 상인의 재산을 숨긴 장소를 확인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상인의 집에서는 눈물바다가 펼쳐졌지요. 온 집이 털린 걸 뒤늦게 안 겁니다. 상인은 미칠 지경이었어요. 그때 개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상인의 옷소매를 물고 잡아당기더랍니다. 마치 밖으로 나가자고 하는 것 같았지요. 이 모습을 본 상인의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개가 뭘 아는 모양이다. 따라가 보자.’
그래서 상인과 사람들은 개를 따라 갔지요. 개는 숲에 가더니 큰 나무 앞에서 막 짖었답니다. 발로는 땅을 파는 시늉을 하면서. 상인과 하인들은 그곳을 팠습니다. 그랬더니 잃어버린 재산이 묻혀있었습니다.
상인은 정말 기뻤습니다. 그래서 개를 옛 주인에게 돌려주기로 했답니다. 개의 목줄 안에 사연을 적은 편지를 넣었고요. 빌려준 5천 루피는 선물이니 갚지 않아도 된다고 적었지요. 개 주인은 돌아온 애견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 친구가 왜 개를 돌려보냈지? 돈을 갚으라는 이야기인 모양이군. 내가 지금 갚을 능력도 안 되는데. 개를 죽여야겠어. 그리고 다른 사람이 죽였다고 속여야지. 그러면 빚을 갚지 않아도 될 거야.’
개 주인은 애견을 죽여 버렸답니다. 그리고 목줄을 풀었더니 편지가 나오더래요. 그는 편지를 읽었습니다. 그제야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정말 슬퍼 목 놓아 울었지요.
자, 이것 보시오. 나중에 당신 목숨을 잃을 짓을 하지 않으려면 조심해야 합니다.”
왕자가 이야기를 마쳤을 무렵 해가 떴습니다. 그래서 왕자는 무사히 그 집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왕자는 매제가 다스리는 나라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수도승처럼 꾸며 궁전 근처 나무 밑에 앉아 기도에 열중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수도승이 나무 밑에 앉아 있다는 소식은 왕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는 흥미를 느꼈습니다. 당시 아내가 아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여러 의사를 불러 치료를 맡겼지만 허사였습니다.
‘수도승이라면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왕은 수도승을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수도승은 왕의 궁전을 밟을 수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저는 열린 공간에서 살아야 합니다. 왕이 저를 만나려면 직접 오셔야 합니다. 그리고 왕비도 저에게 데리고 오셔야 합니다.”
왕은 아내를 데리고 수도승에게 갔습니다. 수도승은 왕비를 납작 엎드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세 시간 정도 꼼짝도 못하게 했습니다.
“이제 됐습니다. 일어나십시오. 당신의 병은 다 나았습니다.”
그날 저녁 궁전에서 큰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왕비가 진주로 만든 묵주를 잃어버렸습니다. 아무도 묵주를 찾지 못했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수도승을 찾아갔습니다. 왕비가 엎드려 있던 곳에 묵주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뭐라고? 묵주가 수도승 곁에 있었다고? 이 놈이 묵주를 훔치려고 장난질을 쳤구나. 그 놈을 잡아 목을 잘라라.”
왕은 묵주를 찾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를 냈습니다. 하지만 그 명령은 실천되지 못했습니다. 이미 왕자는 도망간 이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종이쪽지에 적힌 두 번째 조언도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왕자는 원래 옷으로 갈아입고 혼자 걷고 있었습니다. 한 도공이 아내,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울기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궁금해서 물어보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웃다가 갑자기 울고, 울다가 갑자기 웃으니 말입니다.”
“당신 일이 아니니 귀찮게 하지 마시오.”
“혹시 내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않소.”
“우리나라 왕에게는 딸이 있답니다. 그런데 왕은 매일 딸을 결혼시켜야 한답니다. 그녀와 결혼한 사람은 첫날밤에 모두 죽어버리니까요. 이 나라의 거의 모든 젊은이가 공주와 결혼했다가 목숨을 잃었지요. 그런데 오늘 제 아들에게 그 차례가 돌아왔답니다. 공주와 결혼하는 걸 생각하면 정말 기쁘니 웃음이 나오다가, 첫날밤에 죽을 걸 생각하니 슬퍼서 울지 않을 수 없지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정말 웃다가 울 일이군요. 하지만 더 이상 울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 아들 대신 내가 궁에 가지요. 적당한 옷이나 한 벌 주십시오. 결혼식에 갈 수 있게 말입니다.”
도공은 왕자에게 아주 훌륭한 옷을 주었습니다. 각종 장식품도 달아주었습니다. 왕자는 궁에 가서 공주와 결혼했습니다. 그날 밤 그는 공주의 방에 들어갔습니다.
‘무서운 순간이군! 나보다 먼저 살해당한 많은 젊은이처럼 나도 죽을지 몰라.’
왕자는 칼을 불끈 쥐었습니다. 그리고 침대 위에 누웠습니다. 마치 자는 것처럼 꾸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폈습니다. 그런데 한밤중에 공주의 코에서 큰 뱀 두 마리가 기어 나왔습니다. 뱀은 왕자를 향해 기어왔습니다. 그를 죽이려는 것 같았습니다. 왕자는 칼을 꼭 쥐고 있다 뱀 두 마리가 근처로 다가오자 휘둘렀습니다. 순식간에 뱀 두 마리는 각각 두 동강 나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왕은 평소처럼 공주와 결혼한 청년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확인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왕과 공주가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목소리는 공주의 남편인데, 아직 살아있단 말인가?’
왕은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두 사람이 환히 웃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건가? 자네는 도대체 누구이기에 이렇게 대단한 일을 해냈나?”
“왕이시여! 저는 사실 먼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아들입니다.”
왕자는 여기까지 오게 된 사연을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공주와 결혼해서 죽지 않고 살아난 청년이 왕자라는 이야기를 들은 왕은 매우 기뻤습니다.
“앞으로 이 궁전에서 살도록 하게. 자네를 나의 후계자로 삼겠네. 내가 죽으면 이 나라를 다스리도록 하게.”
왕자는 궁전에서 1년 이상 살았습니다. 그는 왕에게 고향에 다녀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왕은 그의 요청을 허락했습니다. 그에게 코끼리와 말 여러 마리, 그리고 사돈에게 줄 선물로 각종 보석을, 왕자가 여행비용으로 쓸 충분한 돈을 주었습니다.
왕자는 귀향하는 길에 매제가 다스리는 나라를 지나게 됐습니다. 그가 도착했다는 소식은 왕의 귀에 금세 들어갔습니다. 그는 서둘러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궁전에서 며칠 머물다 가라고 했습니다. 왕자는 그의 말대로 여동생이 사는 궁전에 들어갔습니다. 여동생은 미소로 오빠를 반겼습니다. 궁전을 떠나던 날 왕자는 1년 전 수도승처럼 꾸며 궁전 앞에 앉아 있었을 때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여동생과 매제에게 코끼리 두 마리, 말 두 마리, 병사 50명, 10포대에 담을 만한 분량의 보석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왕자는 고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사람을 먼저 보내 부모에게 그의 귀향을 알리게 했습니다. 부모는 아들을 너무 그리워하다 눈이 멀었습니다. 왕은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어서 오너라. 아들아. 네 손을 내 눈에 대거라. 그러면 너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왕자는 아버지의 말씀대로 손을 부모의 눈에 대었습니다. 그러자 두 사람은 다시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 왕자는 아버지에게 1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브라만의 아내에게서 산 종이쪽지에 적힌 글 덕분에 얼마나 큰 도움을 받았는지도 이야기했습니다. 왕은 아들을 다시 떠나보내야 하는 게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슬픔이 아니라 기쁨과 평화가 그의 마음과 눈을 가득 채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