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에 아주 게으르고 술만 좋아하는 빌리 더피라는 대장장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술을 마실 돈을 구할 수 있을 정도만 일했습니다. 주머니가 적당히 채워지면 술집에 가고, 주머니가 비면 다시 대장간으로 돌아갔습니다.
밤하늘이 매우 어두운 어느 날이었습니다. 빌리는 여느 때보다 술을 더 마셔 잔뜩 취한 상태에서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술을 더 마시고 싶었습니다.
“술을 더 즐길 수 있다면 악마에게 내 몸이라도 팔 텐데!”
이때 키가 크고 검은 옷을 입은 신사가 갑자기 빌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방금 뭐라고 했나?”
“술을 더 마실 수 있다면 악마에게 내 몸이라도 팔 거라고 말했다오.”
“좋아. 7년 동안 술을 잔뜩 마실 수 있게 해 주지. 그 이후에는 악마에게 가는 거야. 어때?”
“좋아요. 그런데 얼마를 줄 거요?”
“700파운드면 될까?”
“그 정도면 되겠군요.”
“나중에는 악마가 자네를 데리러 올 거야.”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요.”
빌리는 낯선 사내와의 대화를 이상하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말 대장간에 돈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가게 문을 닫고는 매일 같이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웃이나 친구에게 술을 사 주기도 했습니다. 집에 먹을 걸 잔뜩 쌓아놓고 필요한 사람에게 그냥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빌리의 도움을 받으려고 많은 사람이 그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 중에 아주 늙은 은둔자가 있었습니다.
“정말 배가 고프군. 굶어 죽을 지경이네. 먹고 마실 걸 좀 줄 수 있겠나?”
“들어오셔서 마음껏 드세요.”
은둔자는 충분히 먹고 마신 뒤 사라졌습니다. 여러 달 뒤 그는 다시 나타나 다시 배불리 먹고 마셨습니다. 또 여러 달 뒤 나타나 다시 배불리 먹고 마셨습니다.
“어르신!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마시고 마음껏 드시고 가세요.”
은둔자는 음식을 충분히 먹은 뒤 빌리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자네는 처음 보는 내게 3번이나 호의를 베풀어주었네. 그 보답으로 자네 소원 세 가지를 들어주겠네. 자네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다 이뤄질 거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네요.”
“시간은 많아. 좋은 소원을 많이 빌도록 하게.”
은둔자는 다음날 아침 빌리를 찾아갔습니다.
“세 가지 소원을 결정했나?”
“네. 대장간에 큰 망치가 있답니다. 누구든 망치를 드는 사람은 제가 멈추라고 할 때까지 망치를 계속 내리치게 해 주십시오.”
“그건 큰 도움이 안 되는 소원이 아닌가?”
“아니에요. 두고 보시면 알 거랍니다. 그리고 무엇이든 집어넣으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지갑도 하나 주시지요.”
“그것도 썩 좋아 보이지 않는데. 세 번째 소원이라도 제대로 고르게.”
“팔걸이 의자를 하나 갖고 싶군요. 거기 앉는 사람은 제가 허락할 때까지 절대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의자요.”
“자네가 선택한 세 가지 소원 모두 큰 득이 되는 게 아니로군.”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저에게는 다 뜻이 있답니다. 결국 좋은 소원이 될 거예요.”
빌리가 악마와 약속한 7년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는 악마에게서 받은 돈을 다 써버려 다시 대장간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그때 검은 옷을 입은 신사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빌리, 잘 있었나? 이제 사흘 남았군. 내가 호의를 하나 베풀지. 앞으로 사흘간 자네가 원하는 만큼 돈을 더 주도록 하겠네.”
빌리는 자주 가는 주점에 갔습니다. 그곳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빌리는 그들을 보고 환히 웃으며 말했습니다.
“친구들, 오늘은 돈이 좀 생길 거야. 자네들 술값은 내가 다 내도록 하지. 그리고 선물로 1파운드씩 나눠주겠네.”
빌리는 물병을 식탁 한가운데 놓았습니다.
‘금화 20개만 주시오.’
잠시 후 천장에서 불덩어리와 함께 금화 20개가 물병 안에 떨어졌습니다. 술집에 있던 사람들은 폭탄이 터진 게 아닌지 깜짝 놀랐습니다. 불덩이는 잠시 후 사라졌습니다.
빌리는 그들과 밤새 마시고 즐겼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기 직전에 그들에게 금화 하나씩 나눠주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빌리는 대장간에서 말굽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때 악마가 대장간으로 들어왔습니다.
“빌리, 좋은 아침이군. 이제 나와 함께 가도록 하지.”
“그러지요. 잠시 이 망치를 들고 계실래요? 가기 전에 일을 정리하고 싶군요.”
악마는 아무 생각도 없이 빌리가 건네준 망치를 들고 모루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망치질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빌리는 그 모습을 보고는 깔깔 웃었습니다. 그리고 악마를 대장간에 가둬버렸습니다.
사흘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대장간에서는 밤낮 없이 하루 종일 망치 내려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대장간 주변에 모여 들었습니다. 그들은 닫힌 문 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누군가 안에서 끊임없이 망치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사흘 뒤 빌리는 대장간에 돌아갔습니다. 악마는 그에게 간청했습니다.
“나를 속였군. 제발 풀어주게나.”
“당신을 풀어주면 내게 뭘 해주실 건가요?”
“7년이라는 시간을 더 주겠네. 돈은 지난번의 두 배를 주지. 마지막 날에는 자네가 원하는 돈을 더 갖게 해 주겠네.”
빌리는 악마를 풀어주었습니다. 악마는 약속한 돈을 주고는 사라졌습니다. 빌리는 곧바로 대장간 문을 닫고는 여인숙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는 악마에게서 받은 돈으로 노름도 하고 술도 마시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악마와 약속한 7년은 금세 지났습니다. 빌리에게는 돈이 한 푼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시 대장간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마지막 날 밤 그는 단골 여인숙에 다시 갔습니다. 이번에는 금화 다섯 개를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때 작은 사람이 들어오더니 그의 물병에 금화 5개를 넣고 나갔습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밤새 술을 마셨습니다.
다음날 아침 빌리는 대장간에 갔습니다. 악마는 빌리의 속임수를 경계했습니다. 그는 금화로 변해서 몰래 대장간 바닥에 숨어 있었습니다. 빌리가 어떤 속임수를 준비하는지 살피기 위해서였습니다. 빌리는 이를 눈치 채고는 금화를 주워 지갑에 넣어버렸습니다. 그는 지갑을 모루에 올리고는 망치로 내려쳤습니다. 악마는 고통스러워 소리를 질렀습니다.
“으악! 내 팔이 부러진다. 내 갈비뼈도 산산조각 나는구나.”
“당신을 풀어주면 어떻게 해 주겠소?”
“7년을 더 주겠네. 돈은 세 배를 주지. 그리고 마지막 하루도.”
빌리는 지갑을 열어 금화를 꺼내 던졌습니다. 악마는 서둘러 달아났습니다. 대장간에는 금화가 잔뜩 쌓였습니다. 빌리는 이전보다 더 방탕한 생활에 빠졌습니다. 노름을 하고 술을 마시면서 돈을 흥청망청 낭비했습니다.
빌리는 마지막 날 물병을 들고 여인숙에 갔습니다. 물병에 금화가 가득 차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키가 아주 작은 사내가 들어왔습니다. 덩치는 자그마한데 머리는 아주 클 뿐만 아니라 코와 입도 아주 큰 사내였습니다. 그는 물병에 금화를 잔뜩 집어넣었습니다.
여인숙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은 그를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의 몸은 마치 불덩어리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내는 빌리를 보고 말했습니다.
“빌리, 내일 아침에는 짐을 꾸리게 될 거야.”
“나도 잘 알고 있어. 껄껄.”
“빌리, 저 사람은 누구야?”
“아무것도 아니야.”
다음날 아침 빌리는 대장간에 갔습니다. 악마는 들어오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빌리는 집에 갔습니다. 그는 아내와 크게 싸웠습니다. 둘이 다툼을 벌이는 동안 악마가 들어왔습니다.
“빌리, 나는 여기 앉아 기다리겠네.”
“그러시오. 잠시만 기다리면 돼요.”
악마는 팔걸이 의자에 편안하게 앉았습니다. 빌리는 대장간에 가더니 불에 벌겋게 달군 집게를 들고 왔습니다. 그는 집게를 악마의 코로 가져갔습니다. 악마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엉덩이는 마치 의자에 달라붙은 것 같았습니다. 빌리는 뜨거운 집게로 악마의 코를 잡아당겨 창문까지 끌고 갔습니다.
악마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마을 사람들이 빌리의 집 근처로 모였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집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먼 거리에서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빌리의 집에 악마가 들어갔어. 빌리 가족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게 틀림없군.”
악마는 흉폭한 모습으로 변해 빌리를 협박했습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빌리는 악마를 팔걸이 의자에 여러 날 동안 묶어두었습니다. 결국 악마는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뭘 해주면 나를 풀어주겠나?”
“딱 한 가지요. 당신을 더 이상 만나지 않고 여생을 보내게 해 주시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만큼 금도 주고.”
악마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빌리는 그를 풀어주었습니다. 그의 집에는 금이 넘쳐나게 됐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돈을 마음껏 쓰면서 편안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빌리는 불멸의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지옥의 문 앞으로 끌려갔습니다. 문지기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누구인가?”
“빌리 더피라고 합니다.”
마침 근처에 있던 악마가 그의 이름을 들었습니다. 그는 문지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자가 여기 들어오지 못하게 해. 지옥을 망쳐버릴지도 몰라. 문을 이중으로 꼭 잠그도록 하게.”
빌리는 할 수 없이 천국의 문으로 갔습니다. 문을 지키던 성 베드로가 물었습니다.
“자네는 누구인가?”
“저는 대장장이 빌리 더피입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사람은 여기 들어올 수 없네. 게다가 자네는 매우 나쁜 사람이야.”
“그럼, 저는 무얼 해야 하나요?”
성 베드로는 빌리를 다시 세상으로 내려 보냈습니다. 그는 악마의 코와 함께 바로 불덩이로 변해버렸습니다. 이후 빌리는 땅에 발을 딛지 못하고 허공을 떠돌게 됐습니다. 사람들은 이 불덩이를 ‘윌로 더 위스프’ 즉 도깨비불이라고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