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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Nov 17. 2020

교토 라쇼몬의 괴물



8세기까지 교토 남쪽에 라쇼몬(羅生門)이라는 문이 있었습니다. 600년 동안 교토의 관문 역할을 한 문이었습니다. 당시 교토는 일본의 수도였습니다. 이 문은 황궁으로 이어지는 주작대로의 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12세기 무렵 교토 남부 지역은 상습 홍수에 시달렸습니다. 이 때문에 라쇼몬은 황폐해졌고 사람이 살기 싫어하는 곳이 됐습니다.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아기를 낳을 경우 유기하는 곳으로 유명했습니다. 연고가 없는 시체도 이곳에 갖다버렸습니다. 나중에는 범죄자가 숨어 지내는 곳으로 전락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곳에 ‘이바라키 도지(茨木童子)’라는 귀신이 살기도 했습니다.


결국 15세기에 일본 정부는 라쇼몬을 뜯어냈습니다. 여기에서 나온 돌은 고리야마 성을 짓는 데 사용했습니다. 라쇼몬은 폐허만 남게 됐습니다.


하지만 교토 사람들은 여전히 무서운 괴물 때문에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새벽 무렵이면 라쇼몬에 나타나는 괴물이었습니다. 괴물은 문 주변을 지나는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벌벌 떨었습니다. 해가 지면 라쇼몬 근처에는 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교토에 라이코라는 장군이 살았습니다. 아주 용맹해서 어느 누구도, 어떤 상황도 두려워하지 않기로 유명한 장군이었습니다. 그는 술보다는 사람 피를 즐겨 마시는 괴물들을 모두 죽여 전국적으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라이코는 괴물들을 모두 몰아내고 두목의 목을 베어 버렸습니다.


라이코에게는 용감하고 충성심 강한 사무라이들이 따라다녔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사무라이 5명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어느 날 저녁 다함께 훌륭한 식당에 술을 마시러 갔습니다. 그들은 사케를 나눠 마셨고, 생선회와 생선구이를 마음껏 즐겼습니다. 다섯 사무라이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호조가 껄껄 웃으며 다른 동료 네 명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매일 저녁 라쇼몬에 괴물이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나? 그가 지나는 사람들을 잡아먹는다고 하더군.”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와타나베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형님,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우리가 괴물들을 모조리 베어버렸지 않습니다. 설사 한두 마리가 도망쳤다 하더라고 감히 우리가 사는 교토에 나타나 난장판을 만들 리 없습니다.”


“그럼, 자네는 내 말을 안 믿는다는 건가?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형님, 그런 뜻은 아닙니다. 누군가 형님에게 거짓 소문을 전했다는 뜻입니다.”


“그럼, 자네가 가서 한 번 확인해보고 오게나. 정말 괴물이 있는지 없는지….”


와타나베는 껄껄 웃으며 즉시 대답했습니다. 그는 겁쟁이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물론이죠. 형님. 제가 당장 가서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와타나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는 갑옷을 차려 입고 투구를 쓴 뒤 장검을 허리에 찼습니다. 그는 호조를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님, 제가 거기에 다녀왔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까요? 뭔가 증명 방법이 있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다섯 사무라이 중에서 막내가 종이 두루마리를 하나 꺼냈습니다. 그리고 먹과 벼루도 꺼냈습니다. 호조와 나머지 세 사무라이는 거기에 이름을 각각 적었습니다.
 

“좋습니다. 제가 이 두루마리를 라쇼몬에 걸고 오겠습니다. 내일 아침에 형님이 동생들을 데리고 라쇼몬에 가셔서 확인해 보십시오. 괴물이 있다면 제가 한두 마리는 미리 잡아놓겠습니다.”


와타나베는 다시 껄껄 웃으며 말을 타고 의기양양하게 라쇼몬으로 달려갔습니다. 매우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달도 없고 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거센 바람까지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비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와타나베는 주군 라이코 장군처럼 겁을 모르는 사무라이였습니다. 그는 잠시 후 라쇼몬에 도착했습니다. 라쇼몬 근처에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너무 어두워 와타나베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생각한 대로군. 여기 괴물은커녕 사람 하나도 안 보이는군. 종이를 여기 붙여야겠어. 그리고 집에 가서 잠이나 자야지.’


와타나베는 종이를 꺼내 문에 붙였습니다. 그리고 말 머리를 돌려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때 무엇인가 뒤쪽에 나타나 그의 투구를 잡아당겼습니다.


“와타나베, 먼 길을 오느라 수고하셨는데 뭘 그리 서둘러 돌아가시나?”


와타나베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습니다.


“누구냐?”


와타나베는 손을 뒤로 뻗어 누가 뒤에 있는지 살폈습니다. 큰 팔이 투구를 잡고 있었습니다. 나무 둥치만큼 크고 털이 수북하게 덮인 팔이었습니다. 그는 투구를 붙들고 있는 게 괴물이라는 사실을 직감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칼을 꺼내 괴물의 팔을 힘껏 내리쳤습니다.


엄청나게 큰 비명이 들리더니 괴물이 와타나베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와타나베는 깜짝 놀랐습니다. 라쇼몬만큼 큰 괴물이 눈앞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많은 괴물을 처치했지만 이렇게 큰 괴물을 본 적은 없었습니다.


괴물의 눈은 태양에 비치는 거울처럼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징그럽고 큰 입은 아주 크게 벌려져 있었습니다. 입에서는 뜨거운 불기운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와타나베는 그런 괴물을 보고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괴물에게 칼을 휘둘렀습니다. 와타나베와 괴물은 오랫동안 싸웠습니다.


괴물은 와타나베를 떨게 만들 수도, 물리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달아났습니다. 와타나베는 괴물이 달아나게 놔둘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는 말을 타고 뒤를 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빨리 달려도 괴물을 따라잡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괴물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와타나베는 다시 라쇼몬으로 돌아갔습니다. 말에서 뛰어내려 주변을 살펴보던 그는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가 잘라낸 괴물의 큰 팔 중 하나였습니다.


“핫핫! 이것이면 됐어. 내일 형님과 동생들에게 내가 어떻게 괴물을 쫓아냈는지 증거로 보여줄 수 있겠군.”


와타나베는 집으로 돌아가려던 생각을 접고 다시 술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호조와 동생들은 여전히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는 괴물의 팔을 방바닥에 집어던지며 큰소리로 웃었습니다.


“형님, 이게 뭔지 보십시오. 괴물의 팔입니다.”


와타나베는 깜짝 놀라 두 눈을 크게 뜬 호조와 동생들에게 조금 전 겪었던 괴물과의 싸움 이야기를 생생하게 설명했습니다. 조금은 과장을 덧붙여 이야기를 이어가나갔습니다. 다들 수고했다며 와타나베에게 술을 한 잔씩 권했습니다. 그는 기분이 좋아져 밤새 술을 마셨습니다.


다음날 아침 와타나베가 팔을 베어 괴물을 쫓아버렸다는 소문이 교토 시내에 퍼졌습니다. 사람들이 괴물의 팔을 구경하려고 몰려들었습니다.

와타나베는 괴물의 팔을 어떻게 보관해야 할지를 두고 고민했습니다. 반드시 이른 시일 안에 괴물이 팔을 찾으러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와타나베는 튼튼한 나무로 큰 상자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쉽게 부수지 못하게 나무를 쇠로 둘러쌌습니다. 그는 상자 안에 괴물의 팔을 넣고는 큰 자물쇠를 걸어 잠갔습니다. 아무도 자물쇠를 열지 못하게 꼭 열쇠를 갖고 다녔습니다. 그는 상자를 방에 보관한 뒤 하루에도 여러 차례 방을 오가며 상자를 살폈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와타나베는 깊은 밤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리, 제발 안에 좀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인이 밖에 나가보았습니다. 늙은 할머니가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외모만 놓고 보면 아주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할머니, 무슨 일로 누구를 찾아오셨습니까?”


“와타나베 씨가 어릴 때 이 집에서 유모로 일했던 사람이랍니다. 와타나베 씨가 집에 계신다면 드릴 말씀이 있으니 한 번 만나 뵙게 해 주십시오.”


하인으로부터 유모였다는 할머니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와타나베는 안으로 모셔오라고 했습니다. 사실 그는 어릴 때 자신을 키워준 유모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깊은 밤에 찾아올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와타나베의 방에 들어온 유모는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한 뒤 입을 열었습니다.


“나리,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하셨군요. 정말 기쁩니다. 나리가 라쇼몬의 괴물을 쫓아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괴물의 팔을 자르셨다고 하더군요. 정말 존경받아 마땅한 위업을 쌓으셨습니다.”


“괴물을 붙잡지 못해서 아쉬울 뿐이오. 팔을 자르는 대신 그놈을 잡아 죽였어야 했는데….”


“제가 죽기 전에 괴물의 팔을 한 번만 보고 싶군요. 제가 젖을 먹여 키운 나리가 얼마나 훌륭한 일을 했는지 확인하는 게 마지막 소원이랍니다.”


“그건 안 됩니다. 미안하지만 그 부탁은 들어줄 수 없다오.”


“왜 그런가요?”


“괴물은 반드시 복수하는 종족이랍니다. 내가 상자 문을 열면 갑자기 괴물이 나타나 팔을 낚아채 가져가버릴지도 모르오. 그래서 일부러 아주 튼튼한 상자에 넣어둔 거요.”


“나리는 정말 신중하신 분입니다. 그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늙은 유모일뿐입니다. 제게 팔을 안 보여주실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이야기를 듣고는 아침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이렇게 달려온 거랍니다. 늙은 옛 유모의 부탁을 이렇게 냉정하게 거절하시다니 매우 섭섭하군요.”


와타나베는 난처해졌습니다.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결국 유모의 청을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알겠소. 그렇게 간청한다면 보여주도록 하지요. 나를 따라오시오.”


와타나베는 유모를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와타나베는 방문을 꼭 닫았습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방 한쪽 구석에 놓인 상자를 꺼내 자물쇠를 열었습니다.  


“유모, 이리 가까이 오시오. 팔을 꺼낼 수는 없으니 안을 들여다보도록 하시오.”


“팔이 어떻게 생겼나요. 제대로 한 번 보게 해 주십시오.”


유모는 마치 겁먹은 것처럼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상자로 다가갔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팔을 쭉 뻗어 상자 안으로 집어넣어 괴물의 팔을 꺼내들었습니다. 그리고 울부짖는 목소리로 이러게 말했습니다.


“아! 드디어 내 팔을 다시 찾았구나!”


유모는 갑자기 몸을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엄청난 크기의 괴물로 변했습니다. 와타나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방 안에 있는 괴물이 라쇼몬에서 만났던 그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와타나베는 재빨리 몸을 돌려 방 한쪽 벽에 걸려 있던 검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전광석화처럼 괴물을 향해 휘둘렀습니다. 하지만 괴물도 빨랐습니다. 그는 와타나베의 검을 가까스로 피한 뒤 지붕을 뚫고 올라가 달아나버렸습니다.


‘내가 어리석었구나. 늙은 유모가 이렇게 깊은 밤에 나를 찾아올 이유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거기에 속다니….’


와타나베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했습니다. 그는 언젠가 괴물이 다시 나타나기를 고대했습니다. 그때는 절대 살려 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괴물은 와타나베에게 너무 겁을 먹어 다시는 교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교토 사람들은 더 이상 괴물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됐습니다. 밤에도 마음 편하게 나들이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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