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과 디자이너는 제품을 만드는 데 있어 가장 밀접하게 협업해야 하는 관계입니다. 기획, 디자인, 개발, 검증까지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PM과 디자이너는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서로 다른 팀에 속해 있고, 각자의 우선순위와 시야가 다르다 보니 같이 일한다고 해서 정말 잘 협력한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가장 어려운 지점이라고 생각한 부분은 협업이 잘 되고 있는지 아닌지를 서로 말로 확인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이 진행되기만 하면 괜찮다고 생각했고, 불편한 이야기는 굳이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꽤 오랫동안, 잘 맞춰가고 있다고 믿으며 ‘불편한 협업’을 계속 유지해 왔던 것 같습니다.
이 글은 그런 불편함을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 진행했던 PM(Product Manager)과 PD(Product Designer)의 워크숍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워크숍을 통해 협업의 방식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보고,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과정을 담고자 합니다.
PM과 디자이너는 함께 제품을 만들어가는 데 필수적인 파트너지만, 때로는 ‘하나의 팀’처럼 움직이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각자 속한 팀이 다르고 일하는 방식이나 우선순위도 다르다 보니, 협업을 조율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2024년, PM/PD 간의 협업 프로세스를 정비하면서 역할을 좀 더 명확히 나누자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기획을 PD가 주도하고, PM은 일정, 목표, 배경 정의 등으로 역할을 구분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한쪽의 역할이 지나치게 커지고, 다른 한쪽은 비어 있는 듯한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PD는 제품의 기획부터 정책 정리, 디자인 가이드 제작, 번역 문서 관리까지 폭넓은 업무를 맡게 되었고, PM은 오히려 실질적인 기여 범위가 줄어든 느낌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이런 불균형을 서로 조율하지 않은 채 그냥 진행해 왔다는 데 있었습니다.
각자 마음속에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업무 흐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말하지 않거나 참고 넘어간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프로젝트의 속도가 느려지고 협업 과정에서 세세한 부분들이 누락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개별적으로 보면 모두가 열심히 일하고 있었지만, 팀 간에는 미세한 엇박자가 계속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프로세스를 정비하고 역할을 나눴음에도 협업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나는 문제의 핵심이 ‘방법’이 아니라 ‘대화’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문제를 바라보면서도, 말하지 않고 지나쳤던 것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대로는 서로에 대한 이해 없이 일만 흘러가겠다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획하게 된 것이 바로 이번 PM/PD 워크숍이었습니다. 목적은 단순했습니다.
서로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꺼내보자.
프로세스를 다시 짜기보다, 먼저 대화의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것도 평소 회의처럼 긴장된 자리 말고, 조금은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의견이 오갈 수 있는 구조가 더 좋다고 생각했고 이를 기반으로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워크숍 초반, 분위기를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 아이스브레이킹에 집중했습니다. 서로의 얼굴을 직접 그려주는 아주 단순한 활동이었지만, 그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그림 실력이 서툰 사람들이 만든 결과물은 금세 웃음을 자아냈고, 디자이너 한 명이 자발적으로 그 그림들을 슬랙 이모지로 만들어준 덕분에 워크숍 이후에도 그 기억이 팀에 자연스럽게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느꼈습니다.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낄 때, 훨씬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
이어진 미니게임은 릴리즈 직전에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 상황을 다루는 역할극이었습니다. PM, PD, 현지화 담당, QA 등 역할을 나눠 가상의 상황을 함께 해결하는 게임은 단순한 놀이를 넘어, “우리가 놓치는 게 무엇이었는지”를 되돌아보게 해주는 기회였습니다. 문제 상황을 해결하려 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말들—“이건 누가 결정해야 하지?”, “이 기준은 왜 모호했지?”—은 결국 우리가 그동안 제대로 논의하지 못했던 기준의 빈틈과 책임의 모호함을 짚어주고 있습니다.
워크숍의 흐름은 전반적으로 좋았습니다. 특히 초반의 아이스브레이킹과 미니게임은 참여자 모두가 긴장을 풀고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만,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 지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액션 아이템을 정리하는 단계였습니다.
각 팀은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되짚고, 그에 대한 개선 방향을 제안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분명 문제 인식은 공유되고 있었고, 실행 의지를 아예 느낄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손이 머뭇거리는 순간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생각은 있었지만, 선뜻 정리해 적거나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이게 과연 실행될 수 있을까?
과거에도 비슷한 워크숍이나 회의에서 좋은 아이디어들이 나왔지만, 결국 실행되지 않고 흐지부지된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험이 반복되다 보면, 사람들은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게 됩니다. 의견은 낼 수 있지만, 그것이 실행될 것이라는 신뢰가 없다면 진짜 변화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인상 깊었던 지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스트링(번역) 프로세스 개선에 대한 문제 인식이 팀 전체에서 자연스럽게 모아졌다는 점이었습니다. 입사 초기부터 번역 관련한 비효율을 여러 번 겪었고, 몇 차례 개선을 시도했지만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워크숍에서 이 문제를 공감해 주는 목소리가 꽤 있었고, 얼마 전 개발그룹에서도 외부 번역 서비스(lokalise) 도입에 대한 논의가 다시 나온 것을 보며 작지만 의미 있는 연결이 만들어졌다고 느꼈습니다.
완벽한 액션 플랜이 도출되지는 않았지만, 같은 문제를 보고 있고, 해결하고 싶어 한다는 공감의 출발점은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번 워크숍의 진짜 성과는 그 출발선에 함께 섰다는 데에 있었습니다.
워크숍이 끝났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닙니다. 사실상 큰 변화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고, 팀 간의 긴장감이 완전히 풀렸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번 워크숍이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말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은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도 말하지 않았고, 말해도 바뀌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팀원들이 비로소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 워크숍이 단발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분기별로 정기적인 워크숍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매주 진행하는 PM/PD 정기 미팅만으로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 어렵고, 협업 구조나 실행 문제처럼 구조적인 이야기는 따로 시간을 내지 않으면 다루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번처럼 심리적으로 안전한 분위기 속에서 진짜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꾸준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곧 다가오는 정기 미팅에서는, 이번 워크숍에서 도출된 액션 아이템이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지를 함께 점검해 보자고 팀에 요청해 두었습니다. 제가 그 미팅에 참석하지 못하는데, 오히려 그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리드 없이도, 팀이 스스로 문제를 점검하고 개선 방향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건 협업이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어딘가 어색하고, 느리고, 불완전합니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조금 더 잘해보자”는 공감의 기반은 마련되었다고 믿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앞으로도 계속 같은 방향을 향해 이야기할 수 있는 팀이 되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조금씩 실제 변화로 이어지도록 계속해서 시도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