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일 도슨트의 파리 전시 답사 기록

by 이남일 도슨트

안녕하세요.

이남일 도슨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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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파리에 도착한 뒤, 곧바로 답사 일정으로 여러 전시 공간을 방문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장소를 보기 위해 계속 이동하다 보니 식사도 제때 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만큼 전시에 몰입했던 하루였습니다.


직접 보고 느낀 기록을 남겨두는 것이 나중의 해설과 여행을 만드는 과정에 중요한 자료가 되기에, 오늘의 답사 내용을 정리해 공유합니다.


먼저 방문한 곳은 부르델 미술관(Musée Bourdell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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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의 제자이자 프랑스를 대표하는 조각가 앙투안 부르델의 작업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공간으로, 몽파르나스 인근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관광객보다 현지 방문객이 훨씬 많은 곳이라 늘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흐릅니다. 파리에 살던 시절 자주 찾았던 장소이기도 한데, 다시 와도 여전히 좋은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르세 미술관이 세계 각국의 관람객으로 가득하다면, 이곳은 예술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장소에 가깝습니다.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정원과 아폴론, 헤라클레스 같은 고전 신화를 주제로 한 조각들이 중정 공간과 조화를 이루며, 조각이 공간 속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 느끼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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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주 드 폼 미술관(Jeu de Paume)에서는 지난해 세상을 떠난 사진가 마틴 파의 전시를 관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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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사후 처음 열리는 전시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었고, 실제로 약 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전시는 주제별로 명확하게 구성되어 있어 흐름을 따라 관람하기 좋았지만, 관람객이 많아 이동할 때마다 대기가 필요할 정도였습니다.


일상 속에서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순간들을 포착해온 그의 사진은 익숙한 장면을 낯설게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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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풍경 속에 시대의 모습이 담긴다는 점에서 사진이라는 매체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 전시였습니다.


그랑팔레(Grand Palais)에서는 올해 전시들을 고려해 1년 회원권을 구매했습니다. 6월 북프랑스 일정에 포함될 마티스 특별전을 비롯해 필요할 때마다 답사를 진행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현재 퐁피두 센터가 장기 휴관 중이기 때문에 동시대 미술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이 제한된 상황에서, 그랑팔레는 중요한 대안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여러 현대 작가의 전시가 함께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에바 조스팽(Eva Jospin)은 골판지를 활용해 숲과 자연의 공간을 재현하는 설치 작업을 선보입니다. 멀리서 보면 회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종이 상자의 층과 마모된 흔적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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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에서 본 적이 있었지만, 실제 전시장에 설치되었을 때 만들어지는 공간감은 여전히 독특했습니다. 숲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기억과 시간의 층위를 시각화하는 작업이라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클레어 타부레(Claire Tabouret)는 고전 회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인물화로 주목받는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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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회화로 번역한 듯한 대형 작품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유리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과 만나면서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는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최근 국제 미술계에서 꾸준히 주목받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미카린 토마스(Mickalene Thomas)는 마네의 「올랭피아」나 앵그르의 「그랑 오달리스크」 같은 서양 미술사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흑인 여성의 시선으로 다시 구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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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주와 반짝이는 소재를 활용해 기존의 백인 중심 미의 기준에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왔던 미술사의 시선을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퐁피두 드로잉 전시는 수장고에 있던 작품들이 공개된 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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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회화로만 알고 있던 작가들의 습작과 드로잉을 통해 창작의 과정 자체를 볼 수 있었고, 방대한 양의 작품 속에서 작가들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하는 경험이었습니다.


자코메티 재단(Fondation Giacometti)에서는 자코메티와 후마 바바의 협업 전시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인간의 존재와 실존을 끊임없이 고민했던 자코메티의 공간 안에서, 인간 신체를 절단되고 변형된 형태로 표현하는 후마 바바의 작업이 함께 놓이며 강한 긴장을 만들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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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작가 모두 완전한 인체가 아닌 불완전하고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존재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서로 다른 시대의 조각이 대화를 나누는 듯한 큐레이션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프티 팔레에서는 핀란드 화가 페카 할로넨(Pekka Halonen)의 전시를 관람했습니다.


고갱 이후 북유럽 회화가 어떻게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바라보았는지 보여주는 전시로, 서로 다른 시대와 지역의 미술이 연결되는 흐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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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 동안 총 여러 전시를 빠르게 이동하며 관람했지만, 이렇게 계속 전시를 보는 이유는 결국 제가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작가의 새로운 시도와 큐레이팅 방식이 어떻게 관람 경험을 바꾸는지 직접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특히 파리는 전시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가장 잘 고민하는 도시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이렇게 보고 경험한 것들은 결국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 때 무엇을 넣고 무엇을 덜어낼지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그 과정이 해설의 바탕이 됩니다.


전시를 보는 일은 어느 순간 습관이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됩니다. 파리의 좋은 전시는 때로 식사를 잊을 만큼 몰입하게 만들고, 그 경험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게 합니다.


그 경험을 여행에서 함께 나누기 위해, 오늘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계속 답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동 중에도 이메일을 보내고 업무를 처리하며 하루를 보냈지만,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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