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트 브뤼헤 미켈란젤로 성모자상 그 의미

by 이남일 도슨트
제목을 입력해주세요. (1).jpg
15-20260228-141458.jpg

안녕하세요. 파리지앵 도슨트 이남일입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 예술 여정을 준비하며 다시 브뤼헤를 찾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를 운하와 중세 골목, 그리고 달콤한 와플의 도시로 기억합니다.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 붉은 벽돌 건물과 느린 시간의 분위기 덕분에 브뤼헤는 늘 ‘북유럽의 베네치아’라는 이름으로 소개됩니다. 하지만 이 도시를 여러 번 찾다 보면, 풍경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16-20260228-141458.jpg

관광객의 시선에서는 쉽게 지나치지만, 유럽 미술사의 흐름 속에서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진 작품 하나가 이곳에 남아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성모자상입니다.

03-20260228-141458.jpg

르네상스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피렌체와 로마를 떠올립니다. 미켈란젤로 역시 그 중심에서 활동했던 조각가였고, 그의 작품 대부분은 여전히 이탈리아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서 북유럽의 작은 도시 브뤼허에서 그의 조각을 만난다는 사실은 처음에는 다소 낯설게 느껴집니다. 왜 이 작품은 이탈리아가 아니라 이곳에 있을까. 그 질문은 곧 도시의 역사로 이어집니다.

10-20260228-141458.jpg

16세기 초 브뤼허는 단순한 항구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북해를 통해 유럽 각지의 상인들이 모여들던 국제 교역의 중심지였고, 금융과 물류가 집중된 경제 도시였습니다. 이탈리아 상인들과의 교류 역시 활발했고, 새로운 예술과 문화가 상품처럼 이동하던 시기였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성모자상은 바로 그런 시대 속에서 브뤼허의 부유한 상인 가문에 의해 직접 구입되어 이곳으로 오게 됩니다. 왕실의 명령이나 교회의 의뢰가 아니라, 상인 계층의 선택으로 르네상스 예술이 북유럽에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당시 유럽 사회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08-20260228-141458.jpg

그러나 이 조각의 여정은 평온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혁명군이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작품은 파리로 반출되었고, 나폴레옹 몰락 이후 다시 브뤼허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나치 독일에 의해 다시 강제로 이동되었다가 전쟁 말기 발견되어 원래 자리로 복귀하게 됩니다. 한 점의 조각이 수세기 동안 유럽의 전쟁과 권력 이동을 따라 움직였다는 사실은, 예술 작품이 단순한 미적 대상이 아니라 시대의 역사와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브뤼허 노트르담 성당 안에서 이 작품을 처음 마주하면 예상과 다른 인상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성모자상은 어머니가 아이를 보호하듯 감싸 안는 모습이지만, 여기서 마리아는 아이를 붙잡지 않습니다. 어린 예수는 무릎 위에서 스스로 앞으로 내려가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04-20260228-141458.jpg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으로 나아가야 할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마리아의 시선 또한 관람객을 향하지 않고 아래로 향해 있는데, 마치 이미 다가올 운명을 알고 있는 듯한 조용한 침묵이 공간에 흐릅니다. 종교적 상징이 인간의 감정으로 번역되는 순간, 우리는 르네상스라는 시대가 무엇이었는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

05-20260228-141458.jpg

이 작품을 볼 때 저는 항상 관람객들에게 조금 옆으로 이동해 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정면에서만 바라보면 단정한 조각처럼 보이지만, 측면에서 보면 인물의 몸 방향과 시선이 만들어내는 긴장이 훨씬 또렷하게 느껴집니다. 북유럽 고딕 성당 특유의 차분한 빛 속에서 대리석 표면이 천천히 드러나는 방식도 인상적입니다.

01-20260228-141458.jpg

강한 햇빛 아래 놓인 이탈리아의 조각과 달리, 이곳에서는 작품이 훨씬 사색적인 분위기로 다가옵니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도 공간이 바뀌면 감상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브뤼허의 미켈란젤로 성모자상은 단지 유명한 작품 하나를 본다는 경험에 머물지 않습니다. 르네상스 예술이 어떻게 이동했고, 상업 도시가 어떻게 문화의 중심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예술이 시대의 격변 속에서도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 앞에 서면 우리는 조각을 감상하는 동시에 유럽이라는 공간이 만들어온 긴 시간을 함께 마주하게 됩니다. 브뤼허를 다시 걷게 되는 이유도, 어쩌면 바로 그 시간의 흔적 때문인지 모릅니다.


▶ 네덜란드 벨기에 일정소개 글

https://blog.naver.com/leoleeparis/224037016333


▶ 공식홈페이지

www.legrandtours.com


▶ 도슨트와 함께 하는 여행 신청 및 가격 상담 카카오톡

https://pf.kakao.com/_Qmudxj



매거진의 이전글겐트 성바보성당에서 만나는 겐트 제단화 - 벨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