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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14년간의 긴 난임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비자발적인 딩크부부가 된 지 14년 만에 정말 자의가 아닌 질병으로 인해 결국 자궁적출을 해야만 했습니다. 참으로 길고 긴 여정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난임을 해결하기 위한 시기도 분명히 있었고 남은 기간은 믿지도 않는 삼신할머니에게 나의 운명을 맡겼습니다. 절대 스스로 인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14년간 비자발적 딩크였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내 의지가 아닌 죽음 대신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결국 이렇게 될걸 나는 왜 그렇게 인정하지 못했을까요.
정말 열정을 다해 난임치료를 받는 분들을 보면 명함도 내밀지 못할 만큼 부끄러운 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젊음을 갈아 넣고 병을 얻은 결말로 끝나버렸습니다. 스스로 포기할 수 없었던 14년이 이렇게 끝나다니 꽤나 허무했습니다.
주변에 공무원 시험을 오랫동안 준비한 사람들이 있는데 될 듯 말 듯, 잡힐 듯 말듯함에 포기를 모르고 몇 년을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병원을 다니던 때 첫 임신을 했습니다. 그때가 결혼한 지 2년 차였습니다. 하지만 6주를 넘기지 못하고 이별을 했습니다. 출근한 남편 없이 갑자기 혼자 소파수술을 하러 들어갔다가 눈을 떴을 때 남편을 보자마자 펑펑 울던 그때 그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유 없이 그냥 눈에서 눈물이 막 쏟아져서 내렸습니다. 그런 나를 달래려고 남편은 울지 말라는 말을 했는데 그 말에 나는 남편이 볼 때 한 번도 울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그냥 울게 뒀더라면 속이 후련했을까요. 휴가기간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고 하루 종일 눈물이 나서 도저히 회사를 나갈 수 없어 일주일이 넘도록 쉬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퇴근할 시간이 되면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밥을 먹었습니다.
그 후 총 3번의 인공수정, 2번 시험관 시술에도 저는 임신에 실패하고 병원을 다니는 걸 포기하고 쇠약해진 몸을 챙기기 위해 등산을 하며 운동을 하며 지내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두 번째 임신을 했습니다. 그때가 결혼한 지 언제였는지 기억에서 지워버렸네요.. 임신테스트를 하고 이번에는 꼭 지켜내겠노라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유산과 난임을 했던 내용을 말하고 진료를 보고 임신수첩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남편에게 조심스레 임신소식을 전했습니다. 기대도 하지 않던 남편이 당황하며 기뻐하는 모습이 생생합니다. 이번에는 확실하다며 임신하면 만드는 카드도 만들러 갔는데 그 주 주말 갑작스럽게 하혈을 했습니다. 마음을 추스르며 병원으로 바로 달려갔지만 이미 하혈로 아이가 흘러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제가 신을 믿지 않은 탓이었을까요. 신이 있다면 이런 시련을 10년 가까이 겪게 할리가 없지 않나요. 그 많은 난임시술에도 임신을 하지 못했는데 자연임신을 겨우 두 번 하고 6주도 못 넘기다니요. 그 후 저는 희망을 갖지 않기로 했습니다. 희망을 가지면 가질수록 실패했을 때 느끼는 절망감은 저를 살 수 없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겉으로는 모든 걸 다 이겨낸 듯 당당하게 지냈습니다만 속은 이미 망가져있었고, 마음 저 밑바닥에 단 1%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결국 실패했습니다.
남편과 잘 지내는 모습에 꽤 주변에서는 행복한 딩크부부로 불리지만 제 마음에는 아무리 담아도 담아도 채워지지 않는 큰 구멍이 있었습니다. 어쩔 때는 각자 헤어지고 다른 배우자를 만나면 아이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진지하게 했었습니다. 그만큼 둘 다 아이 없는 부부생활을 꿈꿔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막상 다시 시험관에 선뜻 도전할 수 없었습니다. 실패만 해본 저로써는 더 이상의 절망은 죽음과도 같아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허무한 시간을 보내고 결국엔 수술엔딩이라니 허무하죠.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거라면 왜 희망고문을 하셨는지, 처음부터 포기했더라면 제30대를 그렇게 보내지 않았을 텐데요. 그렇게 수술을 하고 2024년 저는 드디어 14년 만에 임신불가, 임신포기를 인정했습니다. 모든 시간은 소중한 경험이 된다고 하지만 저는 왜 그 14년을 허무하게만 보낸 것 같을까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큰 일은 기억하지만 작고 세세한 일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저는 많은 시술과 수술을 했고 저의 기억력은 충격으로 절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살 수 있는 거겠죠. 많은 시술로 수면마취를 많이 한탓에 줄어든 기억력과 함께 수명이 몇 년은 줄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제 모든 것을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임신불가 상태와 그로 인한 슬픔까지. 그런 일들을 이겨내고 살아냈다고 슬픔이 가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세월이 흘러갔고, 살아있을 뿐입니다. 여전히 슬프고 슬펐고 앞으로도 생각하면 문득문득 슬플 겁니다. 14년 동안 고집을 부리며 괜찮다고 외쳐댔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고 괜찮지 않습니다. 아직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아려오지만 어쩔 수 없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잠시 저 먼 기억 속에 넣어뒀습니다. 7~80대가 되면 괜찮아지는 날이 올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평생 죽을 때까지 안 괜찮겠죠. 평생 자격지심을 가지고 살 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나는 인정을 해야 합니다. 내 현실을 마주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남은 인생을 위해 제대로 거울을 들여다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