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집사가 되었습니다.
나의 결혼 생활은 참으로 외로웠다. 물론 성격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결혼 후 친구들과 점점 멀어졌기 때문이다. 27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던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가장 먼저 한 케이스였다. 내 뒤로 점점 친구들이 결혼을 했지만, 다들 나를 앞질러 임신과 출산을 하면서 왠지 모를 열등감에 시달렸다. 결혼과 동시에 임신 압박을 받았기 때문에 나의 신혼시절은 열심히 병원을 다니고 운동을 했던 기억밖에 없다. 외동아들과 결혼을 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결혼과 동시에 한방에 임신을 하신 시어머니는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셨다.(물론 지금은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다.)
시어머니가 처음인 분과 결혼이 처음이었던 나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초반에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던 나였다. 나 또한 늦둥이로 태어나 늦은 나이에 육아를 하는 엄마를 보며 빠른 임신과 출산이 목표였기에 꽤 열심히 병원도 다니면서 임신을 준비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실패로 끝났고, 허무한 1년이 지나갔다.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들은 나의 상황을 이해할리 없었고, 결혼을 한 친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소식을 전해줬기에 나는 점점 고립되어 갔다. 그러다 보니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낯선 동네에서 생활은 즐겁지 않았다. 그때의 남편은 지금과 정반대로 협조적이지 않았고, 늦은 퇴근으로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눌 시간조차 없었기에 나는 외롭고 외로웠다. 달달하고 행복해야 할 신혼 초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받지 않아도 될 스트레스만 잔뜩 받은 채 친구들과 멀리하며 혼자 외로움을 달래야 하는 나날이었다.
그렇게 10년이 넘은 지금 친구들은 하나 또는 둘의 자녀를 두고 벌써 첫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간다고 한다. 가장 먼저 결혼한 나의 삶은 변하지 않았고, 결국 고양이 집사가 되었다.
아이 없는 백수의 삶은 시간이 여유롭다. 집안일을 좀 하고 남들 열심히 일하는 시간인 낮에는 카페를 가서 독서를 한다. 그리고 저녁 준비를 한다. 남편이 오기 전까지는 하루에 한마디도 할 필요가 없었다. 외동처럼 자란 나에게는 TV가 친구였는데 결혼 후에도 TV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단조로운 삶이었고 지루한 삶이었기에 남들 보란 듯이 나는 잘살고 있다며 보여주기식 여행도 열심히 다녔다. 누군가는 여유로운 삶이라며 행복해 보인다고 하지만 썩어 문 들어진 내속은 아무도 몰랐다. 자존심에 아무에게도 힘들다는 소리 한 번을 하지 않고 오로지 혼자 비바람을 맨몸으로 맞았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미련한 일이었다. 차라리 가족들에게라도 힘들면 힘들다고 말할걸 참고 참다가 결국 한 달에 한 번꼴로 대폭발을 해버렸으니 매번 그걸 당하는 남편도 참 불쌍했다.
한때 학교를 다닐 때처럼 친구 만들기에 열중했던 날도 있었다. 온라인에서 만난 인연들은 오래가지를 못했고, 같은 처지인 사람들은 나를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을 떡하니 했다. 멘붕의 멘붕을 겪던 때였다.
결국 나는 혼자 있기를 선택했다. 지금도 역시나 친구는 별로 없다. 지금의 베스트 프렌드는 남편뿐이다.
혼자 놀기의 달인이 된 지금이지만 가끔은 카페에 혼자 있다 보면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남편과 달리 여자들만의 수다도 가끔 필요한 법인데 말이다. 늘 인생은 고독한 법이지라며 나를 달래 왔지만, 문득 사무치는 외로움은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가을이를 만나고는 24시간 감시당하는 삶을 살면서 확실히 외로움이 줄었다. 혼자 멍하니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내 옆에 가을이가 항상 있어준다. 게다가 가끔 엉뚱한 짓도 해서 웃을 일이 생긴다. 심심한 나의 일상에 에피소드를 만들어주는 가을이 덕분에 남편과 대화가 더 풍부해졌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서로의 안부보다는 '오늘 가을이가 이랬어 저랬어'하는 재미.
게다가 동네 친구가 없던 나에게 동네 친구를 만들어 줬다. 새로 오픈한 동네 카페에 아깽이를 구조하셨다는 피드를 보고 방문했다. 용기 내 가을이가 쓰던 장난감을 전해드렸는데 알고 보니 고양이 5마리의 집사님이셨다. 같은 또래의 학부모들이 나누는 대화처럼 자연스럽게 반려묘 얘기를 하면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알고 보니 결혼한 지 꽤 되었지만, 아이가 없는 젊은 사장님 부부와 친해져 동네 방앗간처럼 들러 반려묘 정보를 공유하고 일상얘기를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집순이였던 나를 밖으로 나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줬다.(물론 지출은 있다. 세상의 공짜는 없으니까)
가을이를 키우면서 SNS 계정을 만들어 사진을 공유한다. 예전에는 팔로워들 피드에 임신을 했다거나 아이들 사진으로 도배가 되면 팔로우를 취소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 새끼는 나만 이쁘다고 하듯이 물론 내 계정이지만 남들에게 피로감을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가을이 계정을 만들었는데 다른 고양이 집사들과의 교류는 재미있고 신세계였다. 게다가 앱에서 만난 일본인 언니도 고양이를 두 마리 키우는 사람이라 더욱 빨리 친해졌고, 실제로 만나기까지 용기를 준 것도 집사라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도치 않게 그 언니도 아이가 없기 때문에 더욱 공감대 형성에 도움이 되었다.
'유유상종'이란 말처럼, 새댁도 아니고 아이도 없는 나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존재였다.
"결혼했어요? 아이는 있어요?"라며 대화를 걸어오는 사람에게 지금은 당당히 "없어요"라고 할 만큼 꽤 마음이 단단해졌지만, 반대쪽에서 어색한 침묵이 흐를 때면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나도 주저하게 된다.
"아, 결혼하신 지 얼마 안 되셨어요?"
"아니요. 10년 넘었어요"
"아..."
친절하게 다가왔다가도 같이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색한 침묵 또는 어쭙잖은 위로 후 뒷걸음질 치는 사람들에게 나는 꼭 말해주고 싶다. "저 안 물어요"라고...
아마도 나의 이런 삶은 노년에도 계속 되겠지.. 아이가 없어도 친구 좀 해주면 안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