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보기에 이상적인 가족이라 하더라도 사연 하나쯤 없는 집안이 없다.
아무리 부모는 자식에게 헌신을 하며 살아왔다 하더라도 자식이 느끼는 부족함을 채워줄 수 없고, 자식은 부모의 작은 말 한마디에 상처받은 구멍이 성인이 된 후에도 메꿔지지 않아 부모를 원망한다. 주는 입장에서는 큰 사랑이었으나 받는 입장에서는 늘 부족하기만 한 게 사랑이다.
내 16살 많은 언니는 자라오면서 늘 부모를 원망해 왔다. 오랜 난임으로 딸 둘을 겨우 낳은 엄마는 자식들이 다치기라도 할까 산에는 뱀이 나와서 가면 안 되고, 바다는 빠질 수 있어 위험하니 가면 안 된다는 분이셨다. 그 시절 무뚝뚝하고 말이 없던 아버지였지만, 딸들에게만큼은 그 흔한 '까시나' 한 번을 안 하던 생선 가시를 발라 주던 자상한 아버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는 공부를 잘했지만 대학도 못 보내주는 부모를 원망했고, 지금껏 50이 넘은 시점에도 술 한잔이 들어가면 그 옛날 어린 시절 얘기를 꺼내며 부모를 원망했다. 딱히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잘난 것 하나 없는 늦둥이 동생을 질투하며,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아직도 치유하지 못했다.
때론 푸념으로 때론 화를 내고 울부짖으며, 그때 일들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며 엄마에게 달려드는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그렇게 결국 엄마는 사과를 했다.
태어나자마자 질투의 대상이 된 나는 그런 언니가 이해되지 않았다. 없는 형편에 자식을 키우느라 고생을 마다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부모는 내게는 아주 소중한 것이었다.
술을 좋아던 아버지는 늘 말썽을 부리셨고, 그런 뒤치다꺼리는 모두 엄마의 몫이었다. 자상한 아버지였지만, 좋은 남편은 되지 못한 아버지였다. 16년 전 공부 잘하는 딸을 대학에 보내지 못했던 엄마는 공부에 취미가 없는 늦둥이만큼은 4년제 대학을 보내기 위해 아등바등 죽을힘을 다해 뒷바라지하셨다. 그러니 내 입장에서는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모든 건 다 타이밍이다."
세상은 참 얄궂게도 원하는 사람에게 원하는 것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언니에게는 대학이 그랬고, 나에게는 아이가 그랬다. 젊을 땐 돈이 없어 누리지 못하고, 나이가 들면 몸이 따라주지 않아 누리지 못하듯이 모든 건 타이밍이 맞아야 한다.
따지고 보면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는 가족 사이 다들 서로를 위해 노력했던 것들을 조금만 더 인정해 주고,
부모가 처음이라 몰라 놓쳤던 것들을 이해해 줬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그렇게 원망하면서도 누구보다 엄마를 걱정하는 언니에게-
이제는 지나간 시절에 얽매이지 않고,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멋지게 살아가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