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sitive
경북 봉화에서도 깊은 산골 깡시골에서 태어난 나는 이미 4~5살 때부터 막걸리 심부름을 하고 자랄 만큼 꽤 진취적인 아이였다. 늦둥이인 나를 모르면 간첩일만큼 동네에서 꽤 유명했던 나였다. 농사일로 바빴던 부모님을 대신해 점빵(슈퍼)을 하던 아버지의 먼 친척 부부가 나를 돌봐주셨는데, 부모님보다 나를 금지옥엽으로 키워주신 할아버지 덕분에 나는 평생 친할아버지 할머니보다 특히 점빵 할아버지를 좋아했다.
깡촌의 코찔찔이 소녀는 동네를 누비며 다녔다. 하지만 내 또래 친구들이 흔치 않았기 때문에 동네 언니 오빠들한테 얻어맞는 날들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점빵 할아버지는 나를 때린 아이 집 앞마당까지 쫓아가 한번만 더 우리 복주를 괴롭히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오셨단다.(그 시절 내 이름은 소주에 붙어있는 금두꺼비를 닮았다며 복주로 불렸다. 우리 언니의 작명 센스는 나를 평생 따라다녔다. 아무도 내 본명을 모르는 듯이 복주라 불렸으니 말이다.)
시골에서 엄마의 손보다는 점빵 할아버지할머니의 손에서 자란 나는 무서울 것이 없는 천하무적이었다. 그 깡시골에서 점빵을 했으니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마음껏 먹는 호사를 누리며 살았다. 그렇게 나의 찬란한 시절은 6살 지금 살고 있는 도시로 이사를 오면서 막이 내리고 말았다. 이제는 나를 지켜줄 할아버지 할머니도 없고 이곳은 전쟁터였다.
한마음 한뜻으로 아이를 돌보던 시골과 달리 도시의 생활은 팍팍하기만 했다. 한집에 여러 세대들이 모여 살던 집. 그중에서도 가장 작은 반지하 단칸방에서 시작했던 우리의 삶은 넓은 마당 딸린 집에 살던 시골과는 천지차이로 바뀌었다.
이사를 오고 바로 유치원에 들어간 나는 한집에 살던 외할머니가 돌봐주셨고 엄마와 아빠는 맞벌이를 시작했다. 엄마는 반지하를 탈출하기 위해 새벽부터 공장에 나가 일을 해야했고, 유흥을 좋아하던 아버지는 도시생활에 젖어 사고를 치기 시작했다. 치열한 삶 속에서 여유가 없던 엄마는 냉소적으로 변해갔으며, 아버지와 잦은 다툼으로 매일 집안은 시끄러웠다. 이사 온 지 1년도 안된 어느 날 엄마는 나에게 "너 언니랑 형부랑 함께 살래? 엄마 아빠는 시골로 가고.."라는 말을 꺼냈다. 나는 울며불며 엄마와 떨어지지 않겠다 매달렸다. 사고를 많이 치는 아빠를 보며 언니는 나를 맡아 교육시키겠다며, 엄마아빠는 시골로 다시 내려가는 게 어떻겠냐고 했던 모양이다.
그날이 있은 후부터 나는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러다 나는 엄마 아빠와 떨어져 살 수도 있겠구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에 말썽을 부리지 않고 사는 것이 최선이었다. 시골에서 하고 싶은 대로 살던 나였지만, 도시에서의 생활은 나의 성격도 바꿔놓았다.
매일매일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러웠고, 함께 사는 외삼촌네 눈치도 봐야 했고, 사고 치는 아빠에게는 없는 애교를 부려가며 집안 분위기를 바꿔야 했다. 그 당시 엄마 눈에 내가 들어왔을 리 만무했고, 그렇게 가족 모두 아무도 모르게 나는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모두가 내편이던 시골과 달리 도시는 아무도 내편이 없었다. 다른 친구들의 부모님은 젊었고, 가정환경도 달랐으며, 나는 여기에서 돌봐줄 사람 하나 없는 가난한 집 아이였다. 또래 친구들과 비슷하게 성장했지만, 나도 모르게 점점 예민해졌고, 분위기를 살피는 게 나의 일상이 되었다. 항상 혼자였고, 외로웠다.
사람들은 예민함은 타고난다고 말한다. "우리 애는 갓난아기 뒤통수에 센서등이 있는지 눕혀놓으면 울고 눕혀놓으면 울고 해서 밤새 안고 동네 한 바퀴를 돌정도로 예민했다니까요"라고 말하며 예민함은 유전 또는 선천적이라고 말하지만, 나의 경우를 봤을 때는 예민한 성격은 후천적이다.
멋모르고 해맑기만 하던 어린 시절과 달리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로 인해 나는 점점 예민하게 변해갔다.
어린 시절 친척들이 날 놀리기 위해 "넌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 엄마가 안 보여 찾으면 "엄마 집 나갔다"라며 나를 놀려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진짜 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울면서 엄마를 찾았다.그 시절 꽤 늦은 나이에 날 낳은 늙은 부모와 10살이 훌쩍 넘는 언니는 어린 나의 시선에서 봐도 평범치 않은 가정이었기에 나는 진짜 엄마가 날 주워왔나 싶어 늘 불안했다.
도시에 온 후 힘든 일에 지친 엄마는 늘 차가운 등을 보이며 잠에 들었고, 아빠는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이 많아 저녁만되면 불안해 해야했다. 고작 6살 나는 이미 집안의 분위기를 알아차렸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