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매거진의 글들은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 쓰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이렇게 하면 된다”는 문장도,
“이게 정답이다”라는 결론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미 여러 번 지나쳐 온 장면들을
다시 한 번 나열했을 뿐입니다.
회의실에서 “일단 해보죠”라는 말로 논의가 끝났던 순간
결과가 어긋났을 때 가장 아래 이름부터 불렸던 순간
모두가 불안해했지만 아무도 멈추지 못했던 흐름
“최선을 다했다”는 문장으로 판단의 공백을 덮었던 날들
이 장면들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이미 많은 조직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어 왔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 장면들을 이렇게 설명해 왔습니다.
누군가 용기가 부족해서
누군가 판단을 잘못해서
조직 문화가 성숙하지 못해서
준비가 충분하지 않아서
이 매거진은
그 설명들을 반박하지 않습니다.
다만
다른 가능성을 하나
기록합니다.
그 장면들은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판단이 사라지도록 설계된 구조 안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결과였을 가능성입니다.
이 기록은
기술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시스템은 더 정교해질 것이고,
자동화는 더 깊어질 것이며,
속도는 계속해서 증가할 것입니다.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판단이 머물 자리가
어디에도 설계되지 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누가 멈출 수 있는가
언제 멈춰야 하는가
무엇이 위험 신호로 간주되는가
그 멈춤은 어떻게 보호되는가
이 질문들이
역할과 권한으로
설계되지 않은 조직에서는,
사고는
예외가 아니라
정상적인 결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항상 사람의 이름으로
기록됩니다.
이 글들이
당신을 편안하게 만들지 않았다면,
그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 불편함이
낯선 감각이 아니라는 점만
남겨 둡니다.
이미 어딘가에서
비슷한 감각을
느낀 적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매거진은
그 감각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반복해서 관측되는 상태라는 점만 기록합니다.
우리는 이미
판단이 사라진 이후의
조직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제 남은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 판단은
다시 개인의 용기로 돌아올 수 있는가.
아니면,
머물 자리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가.
시즌 2에서는
이 질문을
조직의 내부로 가져갑니다.
판단이 사라진 이후,
조직은
어떤 방식으로 무너지는가.
그리고
왜 이 붕괴는
특정한 형태로
반복되는가.
다음 기록에서
계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