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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na Aug 24. 2020

'Caro Mio Ben'과 소프라노 조수미.

음악이야기.

산책을 하고 있는데 어느 집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Caro mio ben'이다!!



내 목소리에서 무슨 희망을 보셨던 건 지 아직도 미스터리지만! 피아노 학원의 원장 선생님은 간곡하고도 간곡하게 내게 성악을 가르쳐 볼 것을 우리 엄마에게 권하고 또 권하셨다.

우리 엄마는 끝까지 내가 음악을 하지 않았으면 하셨다. 완강한 반대까지는 아니었어도 탐탁지 않아하셨고, 이런 엄마를 알면서도 선생님은 렛슨비도 받지 않으시고 막무가내로 성악 레슨을 시작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이 모든 서사의 주인공이었던 나는 정작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성악이 무엇인지 몰랐으니 당연히 성악을 배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고 엄마는 왜 저리 싫어하는 건지 이해할 수 조차 없었다. 어린아이였던 난 새로운 걸 배울 수 있다는 것만 생각했고, 뭔가 특별한 걸 하게 된 것 같은 기분에 묘한 우월감에 휩싸여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생이었던 난 동요를 먼저 배웠다. 온갖 동요는 다 불렀다. 동요는 크게 어렵지도 않았고, 부르면 어찌나 신이 나는 지- 성악 뭐 별거 없네 하는 마음으로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때의 영향인지 아직도 나는 다른 어떤 노래들보다 동요를 흥얼거리며 부르곤 하는데- 이런 나를 남편도 주변 사람들도 신기해한다. (동요는 어릴 때 보다 지금 더 좋아하게 된 건 분명하다. 다양한 멜로디에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재미나게 또 함축적으로 표현한 가사들은 웬만한 가곡 못지않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동요에는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다양한 세상이 담겨있고, 그걸 순수하고 맑게 표현해 내는 동요가 대단하다 느껴진다.)


변성기가 지나고 두성 발성이란 걸 처음 배우면서 불렀던 노래가 앞서 언급된, 'Caro mio ben'이었다. 한국어도, 영어도 아닌 이탈리아 어로 된 노래라니!!! 된 발음으로 읽히는 자음들과 혀를 굴리는 듯 발음하는 -r 발음이 단숨에 날 매료시켰다. 발음을 하면 할수록 참 매력적이었다. 

까로 미오 벤- 끄레 디 미아 벤- 하며 소리를 내어 읽고 또 읽으며 새로운 발음에 익숙해지는 데 까지 꽤 시간을 들였다. 거기에 음을 붙이고, 노래를 하나씩 배워갔다.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요상하지만 신비로운 이탈리아 어와 아름다운 멜로디는 나를 홀리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가 본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 이태리를, 나는 까로미오벤을 부르며 먼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 나는 수많은 노래를 이탈리아 어로 부르게 되었다.

(내가 이태리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내 온몸으로 즐길 수 있었던 건,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지금이야 인터넷이 워낙 생활에 녹아있고, 그렇기에 노래도, 가사의 뜻도 검색 몇 번이면 다 해결되는 시대이지만- (라떼는 말이야~) 내가 노래를 배우던 때만 해도 CD, 혹은 테이프를 구해야만 원하는 노래를 들을 수 있었고- 두껍고 무거운 사전을 이리저리 뒤지고 뒤져야 간신히 노래 가사의 제대로 된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부르던 까로 미오 벤이 전부인 줄 알았던 내가 제대로 이 노래에 눈을 뜨게 되었던 건- 소프라노 조수미의 음반을 듣고 나서였다.


조수미의 'La promessa' 음반



1998년 발매한 소프라노 조수미 씨의 앨범 'La promessa'는 조수미의 이태리 가곡 앨범이라고도 불린다. 이 앨범에는 성악을 배우는 학생이라면 꼭 한 번은 배우게 되고 부르게 될 이태리 가곡들이 모아 담겨있다. 이태리 가곡만으로 음반을 제작하는 성악가는 예나 지금이나 드물고, 그렇기에 나에게 이 음반은 정말로 귀한 앨범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도 애정 하는 앨범이다.)




용돈을 모아 작은 동네 음반점에 찾아가 이 CD를 샀던 기억이 난다. 소중하게 들고는 집까지 뛰어들어가 음악을 틀었다. 이 앨범의 첫 곡이 바로 Caro mio ben이다. 처음 조수미 씨의 Caro mio ben을 듣고 받았던 충격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부르는 노래, 너무나도 아름다운 목소리, 쭉쭉 이어지는 프레이즈- 아니,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노래를 할 수 있지? 싶었다. 


그래도 꽤 잘하고 있지 않은가 내심 자신감에 차 있던 나는, 소프라노 조수미의 아름다운 노래 앞에 쪼그라들었다. 내 노래와 실력의 초라함을 여과 없이 직면하게 되었다.

아, 이런 사람이 성악가구나. 와, 이런 게 소프라노의 목소리구나. 


그때, 그 충격으로 성악을 그만했으면 좋았을걸!!! 나는 이 엄청난 자극으로 열정에 불타오르게 되었다. 

꼭, 저런 성악가가 되어야지! 하고..... ㅋ 

(왜 그랬니?)


초등학교 4학년 때 시작된 내 음악인생은 그 후로 가늘고 길게 대학까지 이어졌다. 내가 성악을 계속하게 되면서 수많은 성악가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음악을 듣게 되었지만- 처음, 나에게 엄청난 감동을 주었던 소프라노 조수미 같은 성악가는 없었다. 


대학생이 되고 영광스럽게도 조수미 씨와 한 무대에서 노래를 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나는 합창단의 단원으로 무대에서 존재감 조차 없었고, 그랬기에 솔직히 무대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내 온 신경은 오직 조수미! 어떻게 하면 한 번 가까이에서 만나볼 수 있을까만 생각했던 것 같다. 연주를 마치고-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대기실 앞을 서성거리다 조수미 씨를 만나는 데 성공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대답이 돌아왔는지 모든 게 뒤엉켜 제대로 생각나지 않지만- 딱 하나, 이 앨범을 들으며 성악을 배웠어요.라고 말하며 건넨 내 낡은 CD에 너무 고마워요. 또 무대에서 만나면 좋겠어요,라고 환하게 웃으며 사인해 주며 사진까지 흔쾌히 찍어주던 조수미 씨는 잊을 수가 없다. 


소프라노 조수미를 얘기할 때면, 누구나 당연히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생각할 것이다. 엄청난 기교, 어마 무시하지만 흔들림 하나 없는 고음! 당연히 그녀의 밤의 여왕은 전설적이다. 

하지만 그녀의 음악은 밤의 여왕의 아리아 한곡으로만 기억되기에는 너무 대단하고, 그녀의 잘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레퍼토리들은 한없이 아깝다! 

이상하리만큼 소프라노 조수미의 대단함은 그녀의 모국, 한국에서만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는 느낌인데 그래서 늘 너무 속상하다.


그녀가 크로스 오버 음반을 때, 가거든이라는 드라마 명성황후의 OST를 부를 때- 클래식 계의 많은 이들이 조수미의 행보를 비난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목소리를 냈었다. 클래식 성악가가 품위 없이, 품격 떨어지게 저러냐는 반응들이었다.


난 의견을 낼 수 없는 학생이었지만- 그런 얘기들을 들을 때마다 쳇, 흥, 하며 콧방귀를 뀌었었다. 그땐 맹목적인 팬심이었지만, 한참이 흐른 후 그녀의 도전과 선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녀에게도 부담스러운 도전이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어쨌든, 조수미 씨의 이런 다양한 시도 덕분에 성악은 대중들에게 많이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렵게만 생각하고 멀게만 느끼는 성악이란 장르를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고, 성악 곡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은 이들이 그녀 덕분에 하게 된 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그 길을 개척해 나가는 그녀의 삶이 너무 멋지고, 그래서 그녀가 더 좋다.



성악을 할 때도, 그리고 지금도- 참 많은 사람들이 내게 같은 질문을 던지곤 한다.

제일 좋아하는 성악가가 누구예요?

그럼 나는 언제나 주저 없이 얘기한다.

소프라노 조수미요!



* 혹시, 성악곡을 들어보고 싶은데- 너무 낯설고 어색해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오래된 음반이지만 1998년 발매한 조수미의 'La promessa' 음반을 추천하고 싶다. (앞에 언급된 음반)

한 곡의 길이가 3분 남짓으로 각 노래의 길이가 길지 않을뿐더러 크게 어렵지 않아 성악곡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지루하지 않게 한곡씩 들어보기에 좋다.

거기에 조수미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자칫 심심할 수 있는 레퍼토리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듣는 이들에게는 엄청난 황홀경을 부담스럽지 않게, 아주 편안하게 선사한다. (들어보면 아시리라!!)

이 음반을 다 듣고 나면, 

아마도 당신은 조수미 씨의 또 다른 앨범을 찾아 나서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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