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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na Sep 02. 2022

미국 음악선생님 Ms.Kil

미국 음악선생님 취업기.

8월이 끝났다.

8월을 정리하자면, 새시작 그리고 적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긴장되던 첫 음악 수업도 무사히 잘 마쳤고, 정신없이 substitute techer(이하 Sub)도 3번이나 뛰었다.(Substitue teacher에 관한 건 다음번에 따로 이야기 하는 것이 좋겠다.)


어디부터 얘기를 해야할까? 너무 긴 이야기고, 너무 복잡한 이야기라- 글로 남기려니 막막하기만 하다.


2022년 3월, 2022-2023 School Year 부터 일 할 수 있는 미국 공립초등학교 음악 선생님 자리에 지원했다. 처음 음악선생님 자리에 대해 얘기를 듣게 된 건- 딸 희음이에게다. 학교에서 교장선생님과 담임선생님이 음악 선생님 채용에 대해 얘기 하는 것을 우연히 듣고는 우리 엄마가 음악선생님을 할 수 있다며 엄마랑 얘기 해 보라고 한 게 시발점이 됐다. 아이가 한 말이라 그냥 흘렸을 법도 한데 교장선생님은 그러지 않았고 희음이에게 엄마와 오피스에 와 달라는 말을 남겼다. 그렇게 시작으로 나는 몇 번의 이메일을 학교 교장선생님과 주고 받았다. 채용절차, 필수 자격요건, 근무에 대한 설명 등등이 주를 이루는 이메일이었고 공고가 나면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알려주겠다고 했다. 당시에는 Pre-school에서 열심히 근무하고 있을 때라 음악 선생님 자리가 간절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 전공을 살릴 수 있고 근무 환경도 더 좋을 것 같아 정식으로 음악선생님 자리에 지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은 했었지만 채용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했고, 합격 발표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총 5명이 지원했고, 당연히 면접을 봤으며 면접은 너무나 캐쥬얼 한 분위기 속에 즐거운 분위기로 진행되었지만 엄청 길었다. 그리고 수업을 어떻게 진행 할 것인지 자세히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사실 나는 면접 준비만 했지 수업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보지 않았었던 터라 엄청 당황했었다. 버벅 거리기도 했었던 것 같은데, Pre-School과 네팔에서 음악수업을 했었던 경험을 떠올리면서 최선을 다해 답을 했다. 면접을 진행하던 교장선생님은 내가 네팔에서 음악수업을 했던 경험에 많은 관심을 나타냈고, 그 때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물었다. 그외에도 실질적인 질문이 많았던 것 같다.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할 때 나만의 노하우가 있는지? 음악 수업의 목적이 무엇인지? 수업 중에 아이들이 싸움이 났을 때,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 수업을 하는데 한 아이가 끝까지 수업에 참여하지도 않고 계속 나는 못한다는 소리를 반복한다면 어떨 것 같은지? 체력이 좋은 편인지? 운동을 좋아하는지? 등등. 분위기는 화기애애 했지만, 질문은 그렇지 않은 면접이었다. 

면접을 본 후에도 한달 정도를 기다리고 나서야 잠재적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잠재적 합격은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합격이 되었다고 끝이 아니었다. 내가 이력서에 기재했던 내 경력 증명 서류들을 이 때 제출하게 된다. 여기에서 특이경우가 발생했는데 이유는 내가 한국인이고, 한국에서 대학을 나왔기에 야기된 문제들이었다. 대학교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한국에서의 성적증명서를 미국 교육부에서 바로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내 대학성적증명을 공증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내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를 교육부(DOE)가 지정한 업체에 보내면 그 곳에서 내 전공과 함께 내가 이수한 과목들, 그리고 학점들을 미국 대학교 학점 및 과목들, 전공과 비교하여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검토해 준다. 모든 검토가 끝나면 결과가 적힌 서류를 학교로 보내주는데, 이 과정이 2주 반 정도가 걸렸고 공증 비용 역시 300불 가까이 들었다.(시간이 촉박해 돈을 더 내고 express service를 이용했다.) 이 서류가 도착하고, 내 레퍼런스 체크를 마치고 나면 백그라운드 체크와 지문 등록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을 다 통과하면 진짜 최종 채용이 확정된다. 휴. 

잠재적 최정 합격자가 되고 나서부터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교장선생님이 아닌 학교의 행정업무 전반을 담당하는 SASA(School Administrative Sevices Assistant)와 하게 되는데, 학교의 SASA Diane이 친절하고 성격이 좋아 힘든 과정을 그래도 덜 힘들게 마칠 수 있었다. 


어쨋든!! 채용 과정이 너무 길어서 그랬는지 처음에는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였던 마음이 점점 간절함으로 바꼈다. 와, 정말 간절히 되고만 싶었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는데, 수업은 어떻게 해야할지, 뭘 준비해야 하는지는 뒷전이었고 일단 되기만 해라! 준비야 밤을 새서라도 하면 되지, 이런 마음이었다. 근데 막상 진짜 음악 선생님으로 채용이 딱 되고 나니까 머리가 하얘지면서 이걸 어쩌나 싶었다. 한국에서도 학교 음악선생님은 생각도 안했었는데, 난데없이 미국에서 음악선생님이라니!! 일을 너무 크게 벌렸나 싶어 덜컥 겁이 나면서 이제와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진짜 내가 왜 그랬나 싶었다. 채용이 확정된 건 6월 말. 학교 시작은 8월. 고작 7월 한달이 온전히 수업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매일 유투브를 찾아 아이디어를 얻고, 구글을 뒤지며 자료를 찾았다. 뭔가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모이면서 수업을 딱! 짜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진짜 수업을 짜려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어떻게 수업을 시작해야 할 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내가 막막해 했던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일단, 날 도와줄 다른 음악선생님이 학교에 없었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음악수업이 어쩌다보니 멈춰졌고, 그렇게 2년동안 아이들은 음악 수업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전 음악선생님은 코로나와 함께 은퇴를 하고 학교를 떠났고, 음악실은 학교의 창고가 되어 2년간 온갖 짐들이 다 모이는 곳이 되어있었다. 제대로 남아있는 악기도, 음악 수업 자료도 하나 없는 상태로 맨 땅에 헤딩을 해야 했다. 

1차 청소를 마치고 난 뒤의 음악실. 이틀을 꼬박 애썼는데도 여전히 갈 길이 멀었을 때의 모습이다.

창고 같던 음악실에서 짐이 다 나가고 나서 음악실을 청소하고,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악기들을 하나씩 닦아가며 쓸만한 것들을 건져내 분리하는 데에만 1주일 이상을 써야했다. 음악실 청소가 끝나고 나에게 남은건 낡은 키보드, 몇개의 탬버린과 타악기들, 이빨 빠진 실로폰 몇개, 짝 안맞는 리듬스틱들 등이 다였다. 이걸로 뭘 할 수 있으려나 진짜 막막했다. 교장 선생님으로 부터 필요한 것들을 생각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부터 적어서 제출해 달라는 말을 들었지만, 아무 것도 없는 교실에 어떤 것이 가장 필요한 것인지 순위를 메긴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나는 정말 모든 것이 다 필요했다. 하다못해, 서류정리함이며, 선생님 책상과 의자며, 아이들이 앉을 카페트 까지도!!!!!!! 필요한 걸 다 적으면 레터지 5장은 우습게 넘길 것 같았다.

먼지 구덩이 속에서 살아남은 악기들. 이마저도 온전한 것들이 몇 개 안된다. ㅜㅠ
짝 안맞고 녹슨 실로폰 조각들. 버려야 할 것들인데 악기가 너무 없어 이걸 핸드벨 처럼 활용해 보기로 했다.

또다른 이유로는 난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미국 학교 생활에 관한 건 희음이를 통해 듣는 것이 전부였고, 미국 아이들의 학교 생활을 그나마 어림잡아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게 2021-2022년 School year동안 Pre-School에서 일하면서였다. Pre-School에서 일을 시작했던 처음, 한국과 너무 다른 모습에 놀란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는데 진짜 초등학교는 어떨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미국 초등학교의 음악 수업은 어떤지, 요즘 한국은 어떤 음악수업을 하는 지, 알 길이 없던 난 진짜로 닥치는 대로 자료들을 긁어 모았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음악 선생님들 개인이 운영하는 유투브 채널도 찾게 되고, 미국 음악선생님들의 블로그도 여럿 알게되었다. 몇몇 선생님들은 실제 본인이 사용하고 있는 수업 계획서도 공유하고 있어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온 마음으로 고생을 하고, 수도 없이 계획을 고쳐가며 첫 한달의 수업을 짰다. 너무 막막해서, 수업시간에 진짜 뭐라고 말을 할 지 스크립트까지 짜서 아이들이 앞에 있는 것 처럼 연습도 했다. 수업시간을 넘기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하려고 분단위로 수업을 쪼개고 아이들의 질문과, 변수들도 계산해 시간을 철저하게 계산했다. 플랜 A,B,C를 만들고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너무 휑한 교실도 도저히 그냥 둘 수 없어 일단 급한대로 큰 불라탄 보드 2개를 꾸몄다. 나머지는 천천히 채워나가는 것으로..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Bullatine Board.
메인 White Board 양 옆으로 이렇게 꾸몄다. 아직 휑한 보드판들이 많은데 그건 차차 해야겠다.

아!! 나는 Pre-K-3rd Grade 음악 수업을 맡게 되었다. 4-5th Grade는 우쿨렐레를 배운다. 우쿨렐레는 내가 가르치지 않고 다른 선생님이 가르치신다. 일주일에 한번 우쿨렐레 시간에만 오시는데, 그 분과 음악실을 함께 사용한다. 


첫 수업을 한 이야기는 따로 쓸테지만, 첫 날 첫 수업은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들에게는 최대한 나의 정신 없음을 들키지 않으려 숨겼는데 내 안에서는 완전 엉망진창이었다. 분단위로 짰던 수업도 막상 아이들과 맞닥뜨리니 지킬 수 없었다. 큰 틀은 유지했지만, 반 분위기에 맞춰 또 아이들의 흥미에 맞춰 매 시간 수업을 유연하게 진행해야 했다. 

그래도 디테일하게 짠 수업덕에 큰 어려움 없이 첫 수업을 마칠 수 있었다. 휴!


첫 날, 집에 돌아와서는 그대로 뻗었다. 희음이를 챙길 마음의 여유도 몸의 에너지도 없었다. 소파에 누워 멍하게 한참을 있었다. 잘 살아남고 왔다! 칭찬한다! 나를 위해 했던 말이었다.




앞으로, 쭉 수업을 기록해 보려 한다. 온전히 나를 위해서.

그리고 혹시나 나처럼 맨땅에 헤딩하며 고생하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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