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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태영 Jan 14. 2024

바라는 바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계절에 바다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바다를 처음 찾아갔던 건 초등학생 시절의 여름 방학이었습니다. 친척들과 함께 버스를 빌려 주문진에 갔었습니다. 텐트도 치고, 고기도 구워 먹고, 모두들 신이 났었지만, 그 시절의 저는 여행 자체를 싫어하던 아이였습니다. 강물에 두 번 빠져 죽을 뻔했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있기도 했고요. 그러니 바다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습니다. 그저 만화책을 보거나, 게임하는 게 제일 좋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바다에 들어갔다가 파도에 떠밀려 바닷물만 두어 모금 먹고 나서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기만 바랐던 기억이 나네요.

 

 바다에 진심이기 시작했던 것은 해운대에서부터였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본 적 없었던 탁 트인 전경은 가슴속 깊은 곳까지 시원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몰랐었던 바다의 매력을 알게 된 순간이었지요. 그때부터 바다 근처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을 느꼈으니까요. 결혼을 하기 전에는 '제주도에 가서 살아볼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휴양지로 유명한 나라 모리셔스도 바다가 아름다웠습니다. 서쪽 해안에는 깊고 거친 파랑, 동쪽 해안에는 밝고 투명한 에메랄드빛 물결이 섬 주변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물로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운 색은 모두 갖고 있었던 모리셔스의 바다가 더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바다를 찾는 사람들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바다를 만나 여유롭고 행복해하던 표정이 유독 저의 시선을 잡아끌었습니다. 매일 아침 해변을 산책하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고, 더운 날엔 바다로 첨벙 뛰어들기도 하고, 수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석양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일상은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모리셔스의 바다에 흠뻑 빠진 덕분에 아내와 이민에 대해서 한동안 진지하게 고민을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동해 바다를 보러 강릉에 다녀왔습니다. 점심시간이 지난 일요일 오후였지만 해변의 주차장은 바다를 보러 온 사람들이 타고 온 자동차로 그득했습니다. 저희도 그중 하나였지요. 아이들이 신발을 벗고 모래사장을 밟았습니다. 모래사장이 처음인 아이들은 발바닥에 닿는 감촉을 낯설어했지만, 막상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나서부터는 그 누구보다도 신나 했습니다.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어렸을 때의 기억보다 바닷물은 더 맑고 푸르게 보였습니다. 자연스레 신발을 벗고 저도 아이들과 함께 동심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어렸을 때는 이걸 왜 몰랐을까요. 잠깐 첨벙첨벙하는 사이에 몇 시간이 흘렀습니다. 돌아갈 길이 멀기 때문에 더 놀겠다는 아이들을 겨우 달래고 씻겨서 자동차에 태웁니다. 사실 아이들보다 제가 더 아쉬운 마음이었습니다.

 

 발밑으로 철썩이는 파도와 다르게 멀리 보이는 수평선은 괜스레 희망을 품게 만듭니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호흡을 가다듬고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것만으로도 원하는 일의 반정도는 벌써 이뤄낸 것 같습니다. 아직 눈과 발에 담지 못한 바다가 훨씬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집니다. 언젠가 집 앞에 마당 대신 바다를 가져다 놓을 그날을 상상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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