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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초 Apr 17. 2021

삶의 속도


대관람차, 새들의 저속 비행, 부서지는 해변가의 포말,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스쳐지남.

멈춰있거나, 느리거나, 혹은 순간적으로 빠르게 느껴지는 많은 것들이 눈앞에 있다가 어느 순간 시선의 뒤로 비껴 다. 마치 무성영화의 흑백 필름처럼 스크린 밖으로 빠르게 달아난다.

모든 것들의 풍경은 제 속도가 있어서, 우리가 멈춰있다고 느끼는 풍경마저도 빠른 흐름을 가지고 있다.

그 안에 있는 우리들이 그 흐름의 속도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시간이 쏜 화살처럼 빠르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도심의 시간 속 초침의 속도와, 그림자가 길어졌다가 다시 짧아지고 다시 길어지는 사이에 반복되는 하루의 속도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나이를 시속에 빗대어 우스갯소리로 인생의 속도로 표현하기도 한다.

20대는 20km/h의 속도로, 30대는 30km/h 속도로...... 그리고 60대는 60km/h의 속도로 시간이 흐른다고 하니, 100세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앞으로 모두가 인생 과속 운전자가 되는 것은 아닐는지.


마주 대하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공간의 부피감. 팽팽하게 농익은 공기의 흐름들.

허공을 가르는 여러 색깔의 대화들.

그 속에서도 어떻게든 붙잡고 싶어 지는 삶의 속도.

긴장을 놓고 있으면 어느 순간 우리를 추월하려고 하는 그 속도에 민감해지는 때가 있다.

넋 놓고 있다가 일순간 정신이 번뜩 차려지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하루의 흐름이 체감되지 않은 채로, 밝았다가 어두워지는 시간의 장단이 있고 그 안에서 그림자는 또 길어졌다 짧아지기를 반복한다.

그 하루의 속도마저도 맞추지 못하고 저만치 앞질러 가려는 생각의 속도는, 내 피부의 겉과 속이 맞지 않아 일어나는 부스럼처럼 때론 골치 아픈 각질이 되어 머릿속에서만 부유하다 허공으로 흩어지고 만다.

중력을 거스르지 못한 피부가 탄력을 잃어가듯이, 삶의 속도를 거스르지 못한 각자의 궤도는 좌표를 잃고 흔들리며 나아간다.


그럴싸한 목표를 세워놓고 분골쇄신의 다짐으로 신년을 시작했다가, 자책과 후회로 연말을 맞이했던 게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그러고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미련스럽게 다음 해로 똑같은 목표를 이월시킨다. 그것으로 위안을 삼고 시간을 유예했다는 짧은 안도를 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스스로의 시간들과 계획들에 너무 물렁하게 대처하는 게 아닌가 싶어 지는데, 맞다. 사실이다. 물렁하고, 무계획적인 것에 관대해지고, 자연스럽게 다음으로 넘기게 된다. 시간에 쫓기듯 주어진 과제들을 해결하고, 스스로를 지지고 볶아야만 하나의 일이 매듭지어진다. 여유 있게 마무리를 하고 느긋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조바심을 내며, 약속된 시간이 턱밑까지 들이닥쳐야만 하나의 결과가 나온다. 스스로의 속도를 맞추지 못하는 것이다.


주위의 상황들은 언제나 우리에게 자신의 속도를 지킬 것을 종용한다. 도로 위에서 출발 신호에 늦으면, 빨리 출발하라고 뒤에서 빵빵거리고, 과속을 하게 되면, 규정 속도를 지키지 않았다고 앞에서 카메라로 찍어댄다.




대관람차에 올라타고, 높은 곳에서 발치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을 관망하면, 시간이 멈춘 듯한 적요함을 느끼게 된다. 잠시나마 이해관계로 맞물린 타인과의 연결 고리도 없어지고, 고소공포증마저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평온함과 단순함이 밀려온다. 그 순간엔 빠르게 달리다시피 돌아가던 초침이 잠시 멈춤이 되고, 돌아가지 않던 초침에는 기름칠이 된다.

이제는 대충 어느 시점에서건 삶의 속도를 따라가려 애쓰지 말고 자신만의 안정적인 속도부터 찾으려 애써보자. 헐떡거리는 삶에 안주(安住)는 없다. 다른 사람보다 해야 할 일이 많은 사람이라,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게 바쁘게 살아간다고 해서 반칙은 아니지만, 메트로놈의 일정한 박자처럼 느리고 빠르기가 정해져 안정적인 삶의 속도를 찾았으면 좋겠다.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늘 검열받고 싶고, 괜찮다고 인정을 받아야만 비로소 안심이 되는 조급증이 있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예측 가능한 생활 리듬이 되도록.


주위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다고 말하는 사람의 초침을, 글쎄 뭐 한 사흘쯤 부러뜨려 놓을까보다.

인생 과속을 한다고 해서 범칙금은 없지만, 과속은 금물! 느리게 간다고 뒤에서 빵빵거리며 재촉하지는 않지만, 쏜 살 같은 시간을 주워 담을 수는 없으니 최소한 흘리지는 말아야지. 누구에게나 균형감 있는 삶의 속도가 매치되었으면 좋겠다.


삶의 속도를 1로 기준했을 때, 스스로 생각하기에 본인이 1에도 못 미치는 삶의 속도를 가졌다면, 최소한의 기준까지만 속도를 끌어올리면 된다. 1.5배속 이상으로 추월하는 속도를 가졌다면, 조금은 느린 박자에 호흡을 맞추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시간의 신 '크로노스'의 계획이 그러했으리라. 지구의 자전과 공전의 속도까지도 계산에 넣었을 게 분명하다.


어쩌다 몸에 작은 생채기라도 생길라치면, 얄궂은 우리 몸의 통각이 그 조그만 생채기에만 집중하게 된다.

딱지가 앉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추월하지도 않고, 추월해서도 안 되는 맞춤한 속도가 비로소 얇은 딱지를 만들어 가는 것처럼, 생채기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이다. 각각의 자리에서 각자의 기능대로 제 몫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삶의 속도에 둔감해지지는 말되, 스스로가 버겁도록 1.5배속 이상으로는 나아가지 않을 일이다.

나라고 빨리 가는 시간을 되돌릴 재주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빨리 가는 자신의 시간을 통제하면서 삶의 속도를 관장하는 주체자로서의 역할은 후회 없이 해낼 수 있다.

시간이 달려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고 하더라도, 조금은 덜 긴장하고, 조금은 덜 조급해하는 느긋한 여유가, 이제는 생겼다.

지그시 고개를 들어 파란 하늘에 시선을 돌릴 줄도 아는 그 여유가, 이제는 진정 내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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