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명상이다.

by Jennie

솔직히 처음에는 웃겼다.
어떤 주제든 마지막엔 “그것도 명상이다”로 끝나는 글들을 볼 때마다, 너무 쉽게 가져다붙이는 건 아닌가 싶었다. 연애도 명상, 돈도 명상, 회사도 명상이라니. 세상 모든 일을 명상으로 포장하는 게 과연 진심일까? 어쩌면 사람의 복잡한 현실을 단어 하나로 단순하게 덮어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게 좀 얄팍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어이없음’이 조금씩 다른 감정으로 바뀌었다. 누군가에게는 그 단어 하나 ― 명상이라는 단서가, 자신과 다시 연결되는 첫 시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책을 통해, 어떤 이는 취미를 통해, 또 어떤 이는 기도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본다. 그중 누군가에게 “명상이라는 말” 하나가 마음을 멈추게 하고, 잠시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만든다면, 그건 결코 얄팍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모든 것에 명상을 붙인다’는 건 곧 ‘모든 순간은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는 뜻 아닐까. 우리가 겪는 일들 ― 사랑, 일, 성공, 실패, 그리고 아주 사소한 일상까지 ― 그 어느 것도 그냥 흘러가는 게 아닌, 마음이 반응하고 배워나가는 과정들이다. 명상은 그 반응을 붙잡지 않고 바라보는 일, 즉 자신과의 연결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명상은 특정한 형식이나 장소의 소유물이 아니라, 삶 그 자체와 맞닿은 태도일 것이다.

이 깨달음 이후로 나는, 어떤 주제에 명상을 연결하는 일이 더 이상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는 삶을 이해하려는 오래된 시도의 흔적이 있었다. 말하자면 “이것도 명상이 될 수 있을까?”라고 묻는 순간, 우리는 이미 명상의 첫걸음을 딛고 있는 셈이다. 명상은 결론이 아니라 방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시도를 겸허히 바라본다. 누가 어떤 주제에 명상을 가져와도, 그 안에는 '살아보려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안다. 어쩌면 조금 투박하고, 다소 어이없어 보여도, 결국은 자기 자신에게 닿기 위한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이제는 나도 안다. 명상이란 ‘특별한 행위’라기보다, ‘살면서 나 자신에게 되돌아올 수 있느냐’를 묻는 하나의 길이라는 것을.
모든 것을 명상이라 부르는 그 어이없음 속에는, 사실 우리가 잊고 있던 겸허함이 숨어 있다.
“이것조차도 나를 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면.”
그 단순하고 조용한 믿음이, 어쩌면 진짜 명상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