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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호 Dec 11. 2020

<이제 그만 끝낼까 해>의 화면비율이 특별한 이유

[오늘 밤엔 넷플릭스-12월2주]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 리뷰


애초에 찰리 카우프만에게 정교한 논리를 기대해서는 안 됐다. 비선형 서사 구조와 어딘가 어긋난 플롯 배치는 그를 대표하는 인장이다. "찰리 카우프만에게 있어 플롯은 어떤 결론에 도달하고자 하는 과정이 아니다. 플롯 그 자체가 현실이며 의미가 된다."(두개의 우주가 교차하는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프리즘오브 스페셜호)는 송경원 평론가의 정리는 찰리 카우프만의 작가관을 요약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문장이다. 그는 이제껏 실재하는 육체 속에 벌어지는 추상적 개념을 어떻게 운동하는 이미지 위에 형상화할지 방법을 고심해왔다. 그의 영화가 복잡하거나 혼란스러운 구조를 띠는 이유는 머릿속 온갖 사색이 물보라처럼 일었다가 금세 휘발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찰리 카우프만의 스토리텔링은 결론이라는 소실점을 향한 수렴의 과정에 매달리지 않는다. 대신 한줄기 제재에서 산발하는 의식과 무의식의 타래를 스크린 위에 모으는 것이 그의 주된 관심사다. 


넷플릭스를 통해 발표한 신작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역시 그의 개성이 두드러진다. 이 영화의 주요 골자는 제이크(제시 플레먼스)의 망상이다. 제이크는 언젠가 술집에서 마주치고 그대로 아무 인연도 아니었을 여성을 떠올린다. 이름도 직업도 모름. 하지만 제이크의 머릿속에서 그 여성은 이미 애인(제시 버클리)이 되어있다. 만난 지 6주 혹은 7주, 기간은 아무래도 좋다. 영화가 제이크의 상상이라는 점, 또 애초에 이 영화가 찰리 카우프만이 빚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제 그만 끝낼까 해>에 치밀한 묘수풀이는 그다지 중요치 않음을 알게 된다.


한 가지 <이제 그만 끝낼까 해>에서 특기할 점은 영화의 화면비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1.33:1 화면비를 고수한다. 의식과 무의식이 혼재하는 몽상과 1.33:1 비율의 영상 간에 어떠한 유기적 연결고리가 내제할까. 우리가 어떤 정념에 젖거나 상상 속을 헤엄칠 때 그 화폭은 정형화된 비율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는 비스타 비전이나 시네마 스코프로 크롭하여 상상하지 않는다. 아니, 그전에 머릿속 이미지를 직사각형의 틀에 가둘 수 없다는 전제가 맞다. 우리의 상상은 납작하게 평면화된 이미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실제 감각과 상상 속 감각을 인지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현실에서 우리는 물리적 경로로 받아들인 오감을 동시에 입력한다. 반면 상상 속의 콜라주는 오감을 고루 활용하기보다 특정 감각에 편중한다. 그렇기에 어떤 때는 눈 앞에서 터지는 섬광탄처럼 다른 감각을 빼앗고 또 어떤 때는 물안개를 닮아 자몽하다. 


이 영화가 1.33:1의 화면비를 선택한 이유도 이와 같다. 상상에서 영화로, 감각을 전이하며 영화는 화면의 좌우를 잘라낸다. 좌우가 사라진 화면은 관객의 시야를 제한한다. 대신 정방형에 가까운 화폭은 안정감을 토대로 시선을 중앙으로 유도한다. 화면을 채우는 피사체에 힘을 싣는 것이다. 상상 속 제한적인 감각을 한정된 시야로 일군 영화는 스크린 너머의 깊이를 더한다. 우리가 몽상할 때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집중하듯이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상상 속에 구축된 인물과 상황에 집중한다. 


이러한 화면비의 효능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곳이 바로 엔딩 무렵의 발레 씬이다. 제이크와 여자친구, 경비원의 옷차림을 한 세 무용수가 등장한다. 이들은 텅 빈 학교에서 뮤지컬 <오클라호마!>를 재현한 발레를 시작한다. 이때 카메라는 줄곧 무용수의 신체를 화면 가득 잡는다. 만일 가로가 훨씬 긴 화면이었다면 공란의 후경이 셋의 춤을 작게 만들었을 것이다. 배경을 최소화하기 위해 클로즈업을 시도하자니 화면 바깥으로 단절되는 신체 부위가 커진다. 반면, 배경의 미학을 포기한 1.33:1의 화면비는 제이크가 염원했을 ‘연인과의 뮤지컬’ 상황을 탁월하게 표현한다. 유려한 몸동작을 포착하는 데 성공한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제한된 화폭에서 제이크의 백일몽을 한없이 덧없고도 아름답게 소화한다.




감독: 찰리 카우프만

출연: 제시 플레먼스 , 제시 버클리 등

장르: 스릴러, 드라마

시청가능플랫폼: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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