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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호 Dec 23. 2020

환상통에 관한 유려한 설화 <운디네>

[영화의 단상] 영화 <운디네>(크리스티안 펫졸드, 2020) 리뷰

현실 부정이 무너지고 상실의 슬픔이 들어설 때, 인연은 찾아온다. 운디네(파울라 베어)는 이별을 고하는 요하네스(야코프 마첸츠)에게 "나를 떠나면 당신을 죽여야 해. 잘 알잖아."라며 심드렁한 협박을 건넨다. 아직 운디네는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해 몇 시간 후로 대화를 미뤄보지만 다시 요하네스를 찾아간 자리에 그는 없다. 대신 크리스토프(프란츠 로고스키)가 운디네를 찾아온다. 불쑥 찾아온 인연에게 동한 마음은 깨진 어항의 물처럼 급격히 쏟아진다.

도시 개발 역사학자 운디네는 크리스토프 앞에서 다음날 있을 발표를 연습하고 산업잠수부 크리스토프는 운디네를 데리고 강 밑 깊은 곳으로 잠수한다. 운디네가 외곽에 사는 크리스토프를 찾을 때면 크리스토프는  기차역 제일 앞선 자리에서부터 뛰어와 그녀를 맞이한다. 한낮의 재회에서 짙은 밤 침대 위 다정한 속삭임까지, 운디네와 크리스토프는 다분히 일상적이고 소소한 연인의 행복을 만끽한다. 어느 날 운디네와 크리스토프가 길을 걷다가 요하네스 커플과 마주치는데 운디네는 크리스토프 품에서 요하네스를 응시한다. 이후 영화의 평형은 붕괴되기 시작한다.


<트랜짓>(크리스티안 펫졸드, 2018)에서 이미 호흡을 맞춘 바 있는 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과 프란츠 로고스키, 파울라 베어는 <운디네>에서도 유려한 협업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운디네>는 현실과 신화적 몽환의 경계를 속절없이 녹여 없앤다. 영화의 외양은 사랑을 둘러싼 세 사람의 치정극이지만 영화는 곳곳에 삽입한 운디네의 베를린 개발사 발표를 거쳐 도시가 내포하는 변화와 개발의 슬픔을 환기한다. 유럽 설화 속 물의 정령에서 모티프를 딴 주인공 운디네는 늪지대 간척의 역사를 설명하며 돈을 벌지만 몸 전체에 물을 끼얹어 다시금 환생하는 아이러니한(동시에 애처로운) 존재다. 운디네는 변화와 발전이라는 당위적 동력 뒤에 과거로 혹은 자연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야릇한 반동을 표상한다.

운디네와 크리스토프가 서로의 부재에서 느끼는 감정도 충분히 확장해볼 법하다. 연인 간 이별의 슬픔은 곧 개인이 살면서 겪는 상실의 환상통을 환유하고 이는 다시금 개발의 과정에서 물리적으로 잃어버렸지만 정신적으로 잊지 못하는 장소의 특수성을 가리킨다. <운디네>는 고혹적인 이야기를 빚으며 현시대의 환상통이 어디서 기인했을지 질문을 던진다.




감독: 크리스티안 펫졸드

출연: 프란츠 로고스키, 파울라 베어, 야코프 마첸츠

장르: 드라마, 멜로

수상: 70회(2020)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여자연기자상(파울라 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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