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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호 Sep 03. 2022

"학교 안은 위험해" 홈스쿨링 꾸린 성남제일초 학부모들

1일 오전 방문한 경기 성남시 중원구의 한 가정집. 방 한쪽에 장난감 총과 칼이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다. 책상 위엔 라이언 인형과 쵸파 인형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앉아있다. 미색 벽지가 씐 벽 한 면을 고동색 목재 책장이 뒤덮었다. 같은 크기 같은 모양으로 난 책장 선반 위엔 역사 만화 전집, 그리스로마신화 만화책, 백과사전, 초등 과정 문제집이 빼곡하게 자리를 채웠다.


여느 가정집 방과 다를 바 없는 이곳은 요즘 매일 공부방으로 탈바꿈한다. 이날도 평소라면 평일 아침 학교에 있어야 할 초등학생 4명이 이른 시간 이곳을 찾았다. 차분했던 방 안 분위기는 이내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푸르게 물든다. 문제를 푸느라 아이들의 입이 잠시 쉴 때면 연필심이 종이 위를 달리며 내는 서걱거림이 귓바퀴를 타고 번진다.

1일 오전 경기 성남시 중원구 한 가정집에서 성남제일초 학생들이 공동 가정학습을 하고 있다.


4명의 초등학생들이 학교가 아닌 이웃 가정집에 온 이유는 학교 안전 문제 때문이다. 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성남시 중원구에 있는 성남제일초등학교. 현재 성남제일초는 학교 붕괴 우려가 불거졌다. 학교 건물을 받치는 석축과 학교 건물에 균열이 생기자 학부모들은 불안을 호소한다. 반면 교육청은 석축 안전진단 결과 B등급이 나와서 시급한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되풀이한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학교에 어떻게 아이를 보내요" 일부 학부모들은 자녀를 학교에 보내길 거부했다. 그들이 선택한 대안은 가정학습이다. 집에서 학교가 제공하는 비대면 수업을 듣거나 부모가 직접 아이를 가르친다. 그러나 모든 가정이 평일 낮에 집에서 아이를 돌볼 여력이 있지는 않다. 맞벌이, 한부모 등등… 모든 집엔 저마다의 깊은 사정이 얽혀있다.


성남제일초 2학년인 A(8)군도 지난 8월 22일부터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A군의 부모는 맞벌이다. 간호사로 교대 근무를 하는 어머니가 낮에 집에 있을 때면 A군을 돌볼 수 있다. 그러나 주간 근무를 하는 날이면 A군은 집에 홀로 남겨졌다. "집에 혼자 있으면 종일 누워서 유튜브만 봤어요" 학교와 가정의 돌봄이 모두 비껴가자 A군의 세상은 6인치 스마트폰 화면으로 쪼그라들었다.


일부 학부모들은 소매를 걷고 연대 돌봄에 나섰다. 이웃의 자녀를 대신 맡아준다. 성남제일초 학부모인 이슬비(39)씨도 지난 8월 29일부터 공동 가정학습을 꾸렸다. 이씨는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6시간가량 4~6명의 초등학생을 돌본다. 이 시간 이씨는 교습과 돌봄을 모두 맡는다. 오전 9시가 되면 이씨는 아이들에게 간식을 먹이면서 문제풀이를 봐준다. 아이들은 왼손에 오렌지 주스를, 오른손엔 연필을 쥔 채 두 눈은 문제집에 고정한다.


이씨는 19년 차 전직 학원 강사다. 이씨의 수업은 설익지 않다. "A가 서술형 문제를 어려워하니까 오늘은 서술형 문제를 많이 풀어보자" A군은 서술형 문제가 익숙지 않다. 초등학생 2학년인 A군에게 수학의 네 자릿수 크기를 비교하는 문제는 아직 어렵다. 그러나 이씨는 A군을 채근하거나 성마르게 닦달하는 법이 없다. A군이 혼자 문제 풀기를 기다린다. A군은 20여분 만에 서술형 문제를 푸는 데 성공했다. "거 봐! 서술형도 맞출 수 있잖아"


오전 수업이 끝날 시간이면 아이들의 허기진 배가 요동친다. 6명 아이들의 점심도 이씨가 감당해야 한다. 이날 이씨는 까르보나라 떡볶이를 준비했다. 점심을 준비하는 1시간 동안엔 수강생 중 맏언니인 B(12)양의 도움이 절실하다. "B야 떡볶이 만들 동안 동생들 데리고 1시간만 놀고 올래? 12시쯤엔 들어오렴" B양은 익숙하다는 듯 동생들을 이끌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보드를 타러 간다. 조력자가 나타났지만 이씨에게 한 숨 돌릴 여유는 허용되지 않는다. 홀로 6인분 장을 보고 요리를 해야 한다. 이씨는 2라운드를 준비한다.

 

이씨는 성남제일초 학생들의 학업 능력 손실을 줄이기 위해 학원강사 이력을 살려 가정학습을 꾸리기로 결심했다. 이씨는 “현재 학교에서 제공하는 비대면 수업은 영상을 보기만 하는 것”이라며 “비대면 수업 참여 학생은 쌍방향 소통을 하지 못해 발표도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이 길어져 다른 학교 학생들과 학업성취 수준 격차가 생길까 걱정됐다”고 덧붙였다.


선의에서 시작한 일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혼자서 학습과 돌봄을 모두 책임지기란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1인 2역이라는 책임은 두 배 무거운 짐이 되어 이씨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이씨는 "혼자서 학년이 제각기 다른 6명의 공부를 일일히 봐주고 밥도 다 해먹이는 데에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된다"고 말했다. 평소 8시간 자던 이씨의 수면 시간은 반토막이 났다. 이씨는 "학교에서처럼 아이들이 왕성하게 뛰어다니는 데 이곳은 공동주택이다 보니 그런 아이들을 제어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벅차다"고 덧붙였다.


객식구가 생기자 가계 지출도 늘었다. 뒤돌아서면 자라 있을 성장기 아이들이 6명이나 있다. 곳간이 평소와 같을 순 없다. 이씨는 평소 "밥을 많이 해먹이다 보니 오늘 쌀이 다 동났다"며 웃음을 지었다. 그는 "원래 쌀 10kg을 사면 우리 가족 4명이서 2달가량을 먹었는데 이번엔 2주 만에 없어졌다"고 했다. 이씨는 "학부모들이 과자와 과일 등 간식을 보내줘서 그나마 다행이다"라면서도 "가계 부담 우려가 없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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