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전쟁에서 배우는 조직경영
전쟁은 일어나면 안 될 비극이지만 국가의 생산 능력과 위기 대응 능력, 군대라는 특수 조직의 역량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 책은 일본의 경영학자들이 일본군이 패배한 6개의 주요 전투를 설명하고 이를 조직 경영의 관점으로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내놓은 책입니다.
1984년에 출간되었지만 지금 봐도 꽤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6개의 전투 목록에는 한국의 독립에 큰 기여를 한 "츠지 마사노부" 와 "무다구치 렌야" 장군이 활약한 전투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노몬한(할힌골) 전투
2. 미드웨이 해전
3. 과달카날 전투
4. 임팔 작전
5. 레이테 해전
6. 오키나와 전투
분석한 실패 원인에는 지금 조직에 대비해 봐도 도움이 되는 흥미로운 사례가 몇 가지 있어서 정리해 봅니다.
경직되고 관료주의 조직에서 현장을 도외시하고 탁상공론만 하다보니까 작전계획서는 늘 애매했고 일선 전투부대는 작업 목표를 명확하게 알수 없었습니다.
일본군의 작전계획서에는 다음과 같이 추상적이고 허무맹랑한 내용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결사 임무를 수행하여 성지(聖智)에 따를 것"
"천우신조와 신명(神明)의 가호"
"성패를 초월해 국운을 걸고 단행할 것"
이런 때문에 일선 부대에서는 구체적으로 뭘 해야할지를 몰라서 허우적대거나 본질과 상관없는 자잘한 일에 집착하는 상황이 빈번했습니다.
"미국의 귀싸대기를 맛갈나게 후리면 미군이 전의를 상실해 강화 조약"을 맺을 거란 막연한 전략에 의거해서 태평양을 가로질러 오는 적 함대와 결전을 벌여 승리해서 단숨에 끝장을 보는게 전략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단기 전투에 집착해서 아까운 병력을 소멸시키고 장기전에 필요한 병참과 보급은 무시했고 방어 수단도 강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육군의 최고 엘리트는 육군대학출신이었고 이들이 근무하는 대본영 참모본부 작전과는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었습니다.
이들은 정보부서등 타 분야를 무시했고 이때문에 첩보 수집 및 정보 분석 능력에서 미군에 뒤처졌습니다.
실패를 축적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이를 조직의 지식 자산으로 쌓을 시스템이 전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정신력을 강조하면서 무기와 상대 전력을 과소평가했고 이때문에 "반자이 어택"이나 카미가제같은 효과도 적고 병력만 잃는 작전을 반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대본영의 작전과는 작전계획서를 실행 부서에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전투를 직접 지휘하는 일선 지휘관이 보여달라고 하자 월권이라고 윽박질렀고 사정하자 마지 못해 일부를 보여주고 자세히 들여다 보려하자 잽싸게 가로채 갔다고 합니다.
군 차원에서는 더 심각했습니다.
육군과 해군은 다른 나라 군대인것처럼 대립했고 서로 정보를 숨기고 전투의 결과도 알려주지 않아서 미국 언론을 보고 전황을 파악하는 등 조직내 불신이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과달카날 전투에서 츠지 마사노부는 착검 총돌격으로 미군을 궤멸시킬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했고 이에 반대한 현실적인 지휘관은 파면되었습니다.
전투 결과는 일본군의 궤멸이었지만 대본영은 츠지의 감투 정신을 높이 사서 너그럽게 봐주었습니다.
이렇게 신중론자는 비겁자 취급을 받고 실수라도 하면 엄하게 책임을 물었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강경론자는 승진시키는 잘못된 인사행정도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이외에 가장 어이가 없었던게 매뉴얼에 대한 집착이었습니다.
1942년에 과달카날에 미군이 기습적으로 상륙했는데 일본군의 작전계획서에는 미군이 1943년부터 태평양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거라 예상했기 때문에 문서에 기반해서 현실 파악을 도외시했고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고 합니다.
매뉴얼은 모든 상황을 반영할수도 없고 경전이 아닌데 현실을 도외시하고 문서에 현실을 맞추려고 했다고 할까요.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면 계획을 잘못 짠거니까 어긋나지 않을 상세 계획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흔히 볼수 있는 계획우선주의자들이 생각나면서 아이젠하워 장군의 명언을 떠올렸습니다.
"Plan is nothing, planning is everyt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