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정광섭 May 26. 2021

"고기로 태어나서"를 읽고

닭, 돼지, 개와 인간의 경계에서 기록하다

구독 시대가 되면서 컨텐츠가 많아지니 재미있지 않으면 이내 다른 컨텐츠로 건너뛰게 됩니다.


책도 yes24 북클럽에 가입한 후에 책장에만 잔뜩 등록하고 대부분은 읽지 않거나 잠깐 읽다가 다른 책으로 건너뛰는데 이 책은 오랫만에 주의를 분산하지 않고 흥미롭게 끝까지 읽었습니다.


물론 축산업의 현실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책이므로 읽기 힘든 부분들도 꽤 많이 있습니다.

저자는 직접 닭,돼지, 개를 키우는 축산업 현장에 뛰어 들어 밑바닥 인부로 일하면서 겪은 경험을 르포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축산업의 현실과 외주 노동자등 사회의 많은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목이 "가축으로 태어나서" 가 아니라 "고기로 태어나서" 인 이유는 가축은 농사를 돕거나, 털을 얻거나, 도둑을 쫓는등 인간에게 다른 편익을 제공하지만 여기 나오는 생명들은 오직 고기를 얻기 위해 키워져서인 듯 합니다.


현대 축산업은 사료가 원가에서 가장 큰 비중(대략 80%이상)을 차지하며 이에 맞게 모든 프로세스가 설계되어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가축을 키우는 일에 프로세스 용어가 적합한가 싶지만 비싼 사료값을 감당하고 이익을 내기 위해 사료를 고기로 전환하는 단계에 맞게 극도의 효율을 내도록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같은 축산업의 잡부(?) 의 주요 역할중 하나는 분뇨를 치우는 일과 사료를 고기로 전환하는 비율이 낮은 가축(즉 성장 속도가 더딘..)을 찾아내서 폐기하는 것입니다.


가축의 종류와 크기에 따라서 폐기하는 방법이 다르지만 동물 복지의 눈으로 보면 잔인하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축산업 종사자들이 동물을 괴롭히는 걸 즐기는 악취미가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충분히 고기를 공급하려면 저런 공장식 축산으로 원가를 절감할 수 밖에 없고 작업자는 가축에 대해 생명이 있는 동물이라는 인식이 있으면 버틸수 없을테니까요.


다른 1차 산업과 마찬가지로 축산업을 지탱하는 큰 기둥은 외국인 노동자입니다. 설비 투자 비용과 사료값을 감당하고도 이익을 내려면 어쩔수 없이 낮은 인건비를 가져갈 수 밖에 없을테고 이런 급여를 받고 일할 국내 노동자는 없을테니까요.


실제로 저자가 일한 여러 농장들은 사장을 제외하고는 외국인 노동자들로 이루어져 있고 축산업에서 보기 힘든 젊은 한국 노동자인 저자를 보고 사장들이 "날 믿고 오래 같이 일하면 너도 이런 농장을 낼수 있게 도와줄꼐" 라고 얘기합니다.


사장들의 불만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말귀를 못 알아듣고 수동적으로 시키는 일 아니면 안 한다는건데 최저 임금이하의 돈을 받고 저런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환경에서 신나게 일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습니다.


 닭, 돼지야 합법적인 가축이고 사육과 도축, 유통이 체계화되었으므로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동물 복지등의 문제야 있지만 마지막의 개사육은 정말 충격의 연속이었습니다.


개 키우는 사장들은 사연없는 사람이 없다는데 그 이유는 개는 가축이 아니기 때문에 사육에 아무 규제가 없고 사료비나 축사 설비에 거의 돈을 안 들일수 있으므로 여러가지 이유로 실패한 사람들이 재기의 발판으로 개를 키우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료비가 안 드는 이유는 서울/경기 시내의 음식점들의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해서 폐기하는 일을 개사육자가 하기 때문입니다.


수거비는 별도로 음식점주에게 받고  음식 쓰레기는 갈아서 사료로 사용하므로 최소의 비용으로 시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저자가 겪은 개 사육 현장은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입니다.


규제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규제 만능주의도 버겁지만 규제는 굴레라 생각하고 반대하는 것도 다시 생각해 볼 일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규칙과 제도의 줄임말이듯 규제는 최소한의 기준점을 제시하지만 이런 규제가 없는 지옥같은 개 사육 현장을 알게 되니 세상에는 간단한 문제가 없구나 싶습니다.


저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개를 가축으로 등록할 경우 발생할 사회적 논란과 갈등을 생각하면 막막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에서 저런 일이 발생하는 걸 외면하는 것도 해결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저런 법을 입법할 간 큰 국회의원은 없긴합니다.)


저부터도 이 책을 읽고 채식을 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고기를 먹을때는 짧디짧은 생을 마감하고 고기가 된 생명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자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러시아 페인트공 알고리즘 - 일명 날코딩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