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이 밀레니얼에게 먹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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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아주 많은 코로나 시대의 마케터는 본격적으로 당근마켓을 시작하는데... 아니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각 잡고 팁까지 대방출하고 있다?
1. 사진은 쇼핑몰 사진처럼
2. 상품 이름은 눈에 띄게, 상품 설명은 키워드 가득
3. 가격이 싸면 무조건 좋은가
내 마켓은 상품 설명에 최대한 자세하게 디테일을 넣는 편이다. 사실 채팅으로 비슷한 문의에 같은 응대를 몇 번이고 하는 것이 지쳐서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상품설명에 넣으면 판매자 입장에서는 구매하지 않으면서 찔러보는 허수를 줄일 수 있고, 구매자 입장에서는 보다 신중한 거래가 가능해진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옷을 판매할 때에는 초기 구매가, 입은 횟수, 상품의 장점, 하자, 온라인에서 지금도 판매 중이라면 상품링크 등 최대한 정량적인 수치를 활용해 자세하게 넣고 있다. 아래에서 더 자세히 말하겠지만, 기업이 아니라 사람들끼리의 거래인만큼 얼마나 믿을 수 있는 판매자인지가 당근마켓에서는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다들 매너 온도에 연연하게 된다).
당근마켓과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은 여러 곳이 있다. 우리의 유서 깊은 중고나라를 비롯해, 번개장터를 필두로 한 비슷한 어플들과 인스타와 블로그를 통한 개별 플리마켓, 요즘은 수가 줄었지만 오프라인 플리마켓도 있다. 당근마켓 어플의 최대 장점은 '근처'이다. 따라서 나는 당근마켓에서 팔릴만한 물품들을 '큰 수고를 들이지 않고 얻고 싶고/항상 필요하거나 원하는 물품들' 로 나름대로 정의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옷과 화장품 등 내가 주로 판매하는 물품들은 사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물품들이다. 하지만 손쉽게 얻고, 기회비용이 낮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당근마켓에서 가장 많이 올라오는 카테고리 중 하나이다. 또한 육아용품도 맘카페를 중심으로 '어차피 아이는 금세 자라니까 근처에서 다양하게 구하자'는 의견이 많고, 이에 따라 '국민 문짝', 내 아이가 먹지 않는 이유식 등이 자주 거래되고 있다.
이에 비해 온라인 기반인 다른 어플들에서는 키워드가 더 중요하다 (개별 플리마켓은 논외로 두자. 이는 인플루언서 개인의 브랜드 가치가 훨씬 중요하다). 실제로 한정판 책, 팬층이 두터운 앨범 등 구하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는 물품들은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희소성이 있고, 구하는 사람들이 있는 제품이라 타 중고거래 앱에서 훨씬 구매율이 높았다.
당근마켓을 하다 보면 '비매너', '신고' 등의 키워드로 사용자명과 심한 경우 고유 넘버까지 박제되어 올라오는 경우가 왕왕 있다 (고유 넘버는 바뀌지 않으니, 조심하시길). 당근마켓의 풀 네임이 '당신 근처의 마켓'이다 보니 거래자는 주로 내가 거주하는 지역 주민들이다 (먼 곳의 사용자는 검색조차 되지 않는다). 따라서 오며 가며 얼굴을 마주치는 일말의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인간 대 인간이 만나는 일인 만큼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실제로 나는 코로나 기간 동안 사람들과의 만남이 줄어서, 사회 활동의 일환으로 당근마켓 거래를 즐겼다. 마스크와 손 소독제 너머에서도 여전히 따뜻한 대화는 할 수 있으니까!
판매자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가능하면 공공장소에서 약속을 잡고, 오래전에 잡은 약속은 당일에 리마인더를 해주고, 재당근시 (당근마켓에서 구매한 물건을 다시 판매하는 행위를 뜻한다) 판매자에게 미리 언질을 주는 등 기본적인 예의가 당신의 마켓 생활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글을 쓰면서 내가 얼마나 당근마켓에 진심인지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많은 물품을 손쉽게 사고, 버리는 요즘의 시대에 비록 약간의 사용감은 있지만, 나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더 가치가 있는 물품을 나누는 행위가 큰 만족감을 주고 있다. 사실 나는 돈을 번다는 사실보다도, 필요 없어진 물건의 효능을 찾아주는 것이 더 만족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이 점은 나뿐 아니라 많은 판매자들이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당근마켓에는 '무료 나눔' 옵션이 있고, 매달 '나눔의 날'이 있다. 또한 비정기적으로 '나눔 릴레이' 이벤트가 펼쳐질 정도로 다들 무엇인가를 나누는데 열심이기 때문이다.
추억이 서린 물건, 이야기가 있는 물건을 나누는 플리마켓은 아주 전 근대적인 로망이고, 적어도 밀레니엄 전에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옷을 바꿔 입는데 거리낌이 없고 (부모님들 세대만 해도 중고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 않다), 소확행을 필두로 한 구매가 곧 하나의 취미활동이고, 온라인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요즘 소비자들에게 당근마켓이 충분히 어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근마켓 MAU (월간 순이용자 수)는 지난해 3월에 비해 1년 만에 176%나 늘어났다. 거래 중개 수수료도 없는 당근마켓이, 모두가 만남을 기피하는 언택트 코로나 시대에 사용자가 늘었다는 점은 매우 시사적이다. '동네 생활'이라는 서비스도 오픈 예정인만큼 지역 커뮤니티 문화에서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 어떻게 변화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