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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경 Mar 29. 2017

<고스트 리콘 : 와일드랜드> 얻은 것과 잃은 것.


  레드 스톰이 테크노 스릴러 작가 톰 클랜시의 이름을 통해 이루고 싶었던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역에서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리얼리즘적 영웅을 그려내는 일이었다. 그의 원작 소설이기도 했던 <레인보우 식스>는 밀레니엄 시대의 반영이었다. 냉전은 끝났고 핵전쟁의 위협은 사라졌다. 하지만 미지의 시대를 앞둔 대중들이 삶이 막연한 미래에 무너질 것이라는 세기말의 공포를 향유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서브컬처의 미디어들이 이를 반영했다. 인류가 기계에 종속되고 Y2K로 인한 세계 멸망의 상상이 쏟아졌다. 그중에서도 세계 멸망의 가능성을 붕괴된 구소련으로부터 파생된 무기 밀매 시장과 이에 의존하는 테러리즘과의 사투를 그려내었던 <레인보우 식스>는 세기말 공포 중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시나리오였다.


  <레인보우 식스>가 나오기 이전에도 특수부대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라는지 아는 사람들은 많았다. 하지만 정확히 어떻게 세상을 구하는지 아는 사람들은 그 당시에는 별로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공백은 솔저 오브 포춘과 같은 잡지의 한정된 지식으로 채우거나 아널드 슈워제네거 같은 액션배우들의 과장된 연출로 채워야 했다. 그들의 생활과 행동양식을 세세하게 체험할 기회는 더더욱 드물었다. 비디오 게임으로 재탄생된 <레인보우 식스>는 그러한 기회를 제공하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렇게 톰 클랜시의 이름은 1990년대 말 비디오 게임 업계의 아이콘이 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서자 Y2K의 세기말 공포는 사라지고 미래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대신했다. 여태껏 상상의 영역에 머물렀던 소재들이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인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서 C. 클라크가 남긴 “진보된 과학은 마법과 구별이 불가능하다.”는 명언이 "마법 같은 일을 과학으로 구현한다"라는 말로 뒤집어지는 시대가 되었다.  시대적 흐름에 힘입어 톰 클랜시 프랜차이즈는 현재가 아닌 가까운 근미래의 전쟁터로 영역을 확장했다. <고스트 리콘>은 <레인보우 식스>의 밑바탕에서 나름대로 비디오 게임의 문법을 통해 상상의 현실화를 이루는 과정이었다. 사이버펑크의 미장센과 클리셰는 없더라도, 사이버펑크의 한 면모를 이루는 기술력이 적용된 현실 세계의 모습. 그것이 근미래였고, <고스트 리콘>은 전쟁 장르에서의 근미래로서 21세기를 상상했다. 물론, 9.11 테러 이후 파생된 일련의 전쟁 미디어를 체화한 <모던 워페어>와 그 후발주자들에게 전쟁 미디어의 많은 지분을 빼앗기기는 했지만, <고스트 리콘>은 여전히 근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버리지 않았고, 전쟁 장르에서 그 가치는 여전히 유효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선 지 근 20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 테크놀로지는 일상에 더욱 깊이 들어왔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모습이 SNS를 통해 금방 퍼져나가고 미디어로 재생산되는 일은 더 이상 놀라운 영역이 아니었다.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당하고 1년이 조금 지나 그를 사살하기까지의 과정이 <제로 다크 서티>와 같은 스릴러 영화에서 오롯이 재현되었다. 호버 바이크가 유튜버의 창고에서 만들어지고, 무인차량들이 미국의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토니 스타크로 유명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영화의 이미지를 빌어 신체적 장애를 지닌 아이에게 아이언 맨의 팔을 닮은 로봇 의수를 선물하고 점차 많은 신체적 장애인들이 로봇 기술의 혜택을 본다. 그 모든 것은 유튜브를 통한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널리 퍼진다. 미적 감각의 차이가 있겠지만 20세기에 상상하던 미래는 대체적으로 그런 모습이었고, 근미래는 미래의 군상을 현실에 대입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과거의 상상이었다. 하지만 상상이 현실이 되고 과거의 미래가 현재가 되자 근미래의 의의는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고스트 리콘 : 와일드 랜드>는 15년간 시리즈의 정체성을 지탱했던 근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배제한다. 시대적 변화에서 빚어진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 2017년 현재 시점에서의 근미래는 우리가 종래에 생각하는 사이버펑크의 이미지로 구현될 가능성이 크거니와, 이미 많은 전쟁 장르가 사이버펑크로 방향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UBISOFT는 근미래의 배제로 인해 생겨나는 공백들을, 현실에 의거한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묘사와 타 프랜차이즈들의 흥행요소를 통해 프랜차이즈의 정체성 변화를 꾀한다. 비록 근미래 테크놀로지를 거느린 특수부대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상업적으로 검증된 오픈월드의 자유도를 바탕으로 실증적으로 조사된 현시대의 특수부대원들의 모습을 통해 전쟁 장르로서의 가치를 유지한다.


  플레이어들은 “왕 시해자(Operation Kingslayer) 작전”으로 명명되는 카르텔 소탕 작전의 큰 틀 속에서 선형적인 레벨 디자인의 세세한 체크포인트를 따라가는 대신, 자유롭고 적극적인 판단을 통해 게임이 진행시켜 나간다. 전면적인 변화 속에서, <고스트 리콘 : 와일드랜드>는 톰 클랜시 프랜차이즈에 필요한 덕목을 만족시킨다. 플레이어가 접하는 게임 플레이의 흐름이 실제 특수부대원들의 임무에서의 메커니즘이 겹치는 것이다. 여기에 섬세하고 복잡한 캐릭터 커스터마이즈를 통해 <고스트 리콘> 시리즈가 지향해왔던 특수전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과 대리만족을 충족한다. 비록 <ARMA>와 같은 본격적인 밀리터리 시뮬레이션에 견줄 수는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지 조사를 통해 구현된 볼리비아의 자연환경과 현지인들의 생활양식 묘사 더불어 산타 블랑카 카르텔의 조직도와 범죄의 양상은 <시카리오>, <카운슬러>와 같은 하드보일드 범죄 영화를 통해 빚어진 이미지에 기대는-현존하는 것에 대한 어쩔 수 없는-한계가 있음에도 간결하고 세련된 연출을 통해 더욱 그럴듯한 논픽션에 가까운 픽션의 세계를 창조한다.


 그러나, 게임의 인상적인 외견은 게임 디자인을 통해 드러난 중대한 결점에 의해 묻혀버린다. 위에도 말했듯  <고스트 리콘 : 와일드랜드>는 변화된 시대에 근미래의 전쟁이라는 주제 대신 타 프랜차이즈의 검증된 상업적 흥행 요소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품은 <파 크라이 3>였다. 넓디넓은 오픈월드에서 펼쳐지는 게릴라 전투를 다루기에 그 선택은 얼핏 합리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파 크라이 3>의 게임 디자인은 어디까지나 그 스스로를 위한 것이었다.


  <파 크라이 3>는 광기와 성장에 대한 이야기였다. 플레이어들이 체험하는 컷씬과 전투 시스템은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제이슨 브로디가 바스와 맞서면서 겪게 되는 일련의 성장과정에 대한 서사적 반영이었다. 전투를 통해 얻는 경험치와 그로 인해 얻게 되는 전투 스킬과 문신의 완성은 브로디 개인이 생존을 이유로 끊임없는 살인행위를 반복하며, 라키야트 전사로서의 정체성을 세우는 동시에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메타포였다. 모니터를 통해 바라보는 플레이어의 관점은 모니터 속 브로디의 시선과 일치하지 않을지언정 <파 크라이 3>의 게임 디자인은 서사를 통해 성장하는 캐릭터의 내면과 일치했다. 이는 <파 크라이 4>와, <파 크라이:프라이멀>, 심지어 1980년대 목 버스터 영화의 패러디인 <파 크라이:블러드 드래곤>에서까지 동일하게 유지되는 점이다.


  하지만 <고스트 리콘 : 와일드랜드>의 주제는 특수전이었다. 게임의 주인공인 고스트 팀은 세계 최강의 군대 내에서 수많은 검증을 거치며 손꼽히는 전투원으로 인정받으며 세계 곳곳의 전쟁터에서 풍부한 경험을 거친 이들며 미국 정부가 필요하다면 어디든지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준비된 전사들이었다. <파 크라이 3>의 성장 서사는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 맞춰져 있고, 게임은 고스트 팀을 그 틀에 끼워 맞춘다. 그러나 <파 크라이 3>와 <고스트 리콘 : 와일드랜드>라는 양자 간의 접점은 RPG적 요소가 들어간 오픈월드라는 것 밖엔 없었다. <고스트 리콘 : 와일드랜드>에서 부여하는 레벨업의 당위성은 그저 장르적인 특징이라는 것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고스트 대원들은 현장의 전투 경험을 통해 신체적 능력과 전투기술을 기초부터 다시 쌓아 올려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과정을 목도한다. 특수부대원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사격술 향상과 낙하산 점프 같은 것이 성장의 서사로 들어간다면, 그것은 그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없는 일이다.


  <고스트 리콘 : 와일드랜드>이 출시 전에 그토록 강조하던 게임 플레이의 다양성은 안일한 오픈월드에 대한 집착에 의해 퇴행한다. 고스트 팀과 협력을 하게 되는 게릴라 조직의 지도자 ‘팩 카타리’는 말한다. ‘4명의 병사? 이게 그쪽이 약속한 도움이었나?’ 볼리비아 전체를 초법적으로 주무르는 산타 블랑카 카르텔이라는 악의 축과의 싸움에서 고스트 대원 4명은 스스로의 한정된 전투력에서 카타리스26과의 협력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끌어내야 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목표를 극복하기 위한 동기가 부여되지 않는다. 누구나 기관총을 두 자루나 휴대하며 누구나 똑같이 폭발물들과 특수무기를 동등하게 지니고 다니며, 장비 교체와 탄약 보급마저 자유로운 상황에서 협동과 임무분담의 의미는 퇴색된다. 카타리스 26과의 상호작용은 동맹과의 협력이라기 보단 중세 RPG에서 보아왔던 마법사들의 소환수와 다를 바 없이 묘사된다. 플레이어는 커스터마이즈 옵션을 통해 캐릭터와 총기의 외견을 더욱 그럴듯하게 꾸밀 수는 있어도 갖가지 장비 조합을 통한 능력의 특화는 이룰 수는 없다. 고스트 대원 모두가 전지전능한 상황에서 왕 시해자 작전은 치밀한 사전 계획과 협동을 통한 시너지보다는 지루한 공략만 반복된다. 게임의 협동은 싱글 플레이의 피로감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변주로만 다가온다. 게임은 이마저도 장갑차와 아파치 헬기 조작과 아이템 수집 요소로 어떻게든 해결해보려 하지만 그럴수록 <고스트 리콘:와일드랜드>가 그동안 지니고 있었던 전쟁 장르의 정체성이 GTA의 아류성에 휩쓸려 무너질 뿐이다.


  <고스트 리콘 : 와일드랜드>는 분명 많은 자본과 기술력이 들어간 게임에는 분명하다. 볼리비아의 자연환경은 기술적인 도움에 힘입어 굉장히 세밀한 변화를 보여주며, 현지 조사를 통해 완성된 풍경은 정말로 볼리비아를 탐험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렇지만 오픈월드라면 당연히 자유로워야 하고, AAA 게임이라면 당연히 멋진 그래픽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건 매우 기본적인 사항이다. 흥행 결과야 어찌 되었든, <고스트 리콘 : 와일드랜드>는 톰 클랜시 프랜차이즈로써 명백한 실패작이다. 그 사실은 5.11 tactical과 Crye Precision과 같은 현직 군경과 밀리터리 마니아들을 위한 의류 브랜드의 PPL을 끌어와도 변치 않는다.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http://blog.naver.com/jhk88pub)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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