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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경 Mar 16. 2017

<포 아너> 폭력을 영리하게 즐기는 방법.

 

 강자들간의 서열을 논하는 것, 흔히 말하는 “VS놀이”는 세상에서 손꼽히는 쓸데없는 짓이다. 대다수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고, 이루어질 일들은 진작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밌는 이야기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 유형의 화제는 시대가 변해도 꾸준히 유지되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최영의와 이소룡이 싸우면 누가 이기며, 해병대와 특전사가 맞다이를 뜨면 누가 이기냐 등의 이야기 말이다. 그런데 그 시시껄렁한 논쟁들은 가끔 재밌는 결과를 만들었다.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와 권투선수 무함마드 알리는 1976년에 맞붙었고, 훗날 UFC가 탄생했다. 그리고 2017년에는 <포 아너>가 나왔다.


  <포 아너>는 ‘누가 최강의 전사인가?’ 라는 주제로 작품을 이끌어나간다. 실제로는 전혀 마주칠 일이 없던 기사와 바이킹과 사무라이라는 집단이 자연재해로 인해 쇠퇴해가는 가상의 세계에서 천년 동안이나 전쟁을 벌인다. 거기에는 전쟁과 생존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불어 게임의 제목이 말하는 “명예”는 정작 아무런 언급이 되지 않는다. <포 아너>의 멀티플레이, 그러니까 플레이어들이 참여하는 전쟁을 조장한 아폴리온은 신념 때문이 아니라 약육강식이 최고라는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혀 의미없는 학살과 약탈을 자행한다. 그의 의도 대로, 전쟁 속의 수 많은 플레이어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을 베어나간다. 그 결과에는 경험치와 기록에 따른 보상만 존재하며, 보상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명예”는 멀티플레이 로딩의 외마디 이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 "명예"는 당대 전사집단들의 그럴듯한 이미지의 총합일 뿐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포 아너>의 정체성이 확립된다. 각각의 전사집단이 싸우는 현장에서, 작품이 주목하는 것은 전사들의 투쟁 그 자체이며, 중세시대 전쟁의 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스토리 모드에서 보여지는 아폴리온의 기괴한 이상향과 결말은, 서사의 심각한 허점에도 불과하고 게임의 본질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어쨌든간 기사와 바이킹과 사무라이는 서로 싸울 이유가 생겼고, 플레이어들이 그 싸움에 이입할 지점은 생겼기 때문이다. “비디오 게임의 스토리는 포르노의 것과 비슷하다”는 존 카멕의 게임 철학처럼,<포 아너>는 서사의 정교함을 포기하는 것이다. 대신 전투 그 자체의 과정에서 느껴지는 긴장과 승리의 카타르시스에 주목한다. 비디오 게임이 허용하는 한계 내에서 사실적으로 구현된 전투기술은 당대 전사들의 이미지를 향유하고 싶었던 대중의 욕망를 충족시키는데 부족함이 없으며, 처형을 통한 잔혹한 연출은 중세와 그 이전의 야만성에 대한 사실주의로서 포장되며 말초적 욕구에 대한 죄책감을 희석시킨다.     


  비록 제목과 게임의 주제의식이 일치하지 않지만, <포 아너>는 영리한 게임이다. 최강자에 대한 논쟁은, 어디까지나 당사자성과 무관한 제 3자들의 시선에서 힘의 우열관계를 판단하는, 철저한 흥미거리이고, 그 저변에는 힘에 대한 단편적이고 일차원적인 숭배가 깔려있다. 이 과정에는 여성 혹은 유색인종과 같은 사회적 소수자에게 부여되기 마련인 혐오적 폭력의 투사에 대한 문제의식이 배척되기 마련이다. <포 아너>는 이를 간과하지 않는다. 그래서 게임은 전쟁에 등장하는 전사 모두에게 두꺼운 투구와 갑옷를 씌워 인간적인 모습을 거세한다. 그들에게 성별과 피부색, 민족성이 드러나기 이전에, 모두가 전투에 동등한 자격으로 나서는 전사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에 따른 윤리적 문제를 배제하고 순수한 서열 싸움에 충실했노라 증명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기에 신체훼손이 즐겁게 권장하고, 게임 내에서 얼마나 많이 죽였는가로 보상이 결정되는게 게임의 전부임에도 영리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 자체에서 느껴지는 즐거움에선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즐겁게 느낄 수 있다. 캐릭터의 외향은 어쨌든 달라지는게 없고, 십분이 멀다하고 멈추는 서버의 상태만 어떻게 감안할 수 있다면 말이다. <포 아너>는 그런 게임이다.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http://blog.naver.com/jhk88pub)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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