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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경 Mar 16. 2017

<존 윅 : 리로드> 액션 세계의 야심.


 

  <존 윅 : 리로드>의 한 장면. 윅은 콘티넨탈 호텔 라운지의 총포상에서 선반 가득한 총기의 자태를 음미하며 멋들어지게 개조한 AR-15 돌격소총과 산탄총과 권총, 나이프를 고른다. 교차편집되는 양복점의 모습. 장인은 치수를 재어보며 묻는다. “원하시는 스타일은요?” 윅은 대답한다. “택티컬.” 한 때 그는 암흑세계의 부기맨이라 불리던 전설적인 킬러였다. 그는 전작에서 러시아 마피아들과 싸울 때, 마이클 만 영화의 닐 맥컬리와 빈센트가 그랬던 것처럼 몸에 딱 맞는 정장을 입고 권총을 양손으로 파지 하며 안정적인 사격과 재장전을 반복했다. 그러나 윅과 두 사람에게 정장은 다르게 다가왔다. 그들은 일상 세계에서 풍경에 튀지 않기 위에 정장을 입었다. 하지만 윅에게 정장이란, 곧 벌어질 있을 거사 치르기 위해 입는 수의에  가깝다. 그 모습은 마이클 만의 프로페셔널들 보다는 오히려 <코만도>의 매트릭스 소령이 납치된 딸을 구하기 직전, 각종 자동화기와 탄약을 근육질의 육체에 걸치는 과정과 겹친다. 물론 키아누 리브스는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아니다. 그는 우락부락한 육체 대신 우울한 감정 위에 우아한 분위기를 씌운다. 이쯤에서 영화의 정체성은 확실해진다. 존 윅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키아누 리브스만의 페르소나인 것을.


 키아누 리브스는 비운의 배우였다. 그는 누구나 이름을 대면 바로 아는 배우이며, 90년대에 인상적인 액션 영화의 주인공을 맡으며, 밀레니엄 시기에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매트릭스> 시리즈의 구세주 네오였다. 하지만 나머지 그 이외의 장르에서는 인상적이지 못했다. 알 파치노와 게리 올드만 옆에서는 한없이 작아졌고, 골든 라즈베리의 남우주연상 후보에 너무 자주 언급됐다. 그가 직접 감독을 맡았던 <맨 오브 타이치>는 완벽히 변해버린 액션 영화의 조류 속에서 초라해졌다. 제이슨 본의 서사 이후 수많은 액션 영화들이 그의 뒤를 좇았다. 엘리트 특수부대가 배운다는 크라브 마가와 시스테마의 손놀림은 셰이크 캠과  패스트 컷을 통해 그럴듯한 모습을 만들었다. 비록 그 모습이 너무 많이 겹쳐져, 관객들이 슬슬 지쳐가기는 했어도, 어쨌든간 시대는 변했다. 그러던 중 키아누 리브스가 ‘전직 킬러의 복수’를 다룬 영화에 나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쇠락한 배우가 출연하는 3천만 달러짜리 B급 액션 영화였다.  제이슨 본의 아류처럼 그 뒤를 어설프게 따라가다가 몰락해버린다는 예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존 윅>은 그러지 않았다. 어쨌든 키아누 리브스는 네오였고, <존 윅>에서의 그는 부기맨이라는 페르소나를 요셰프와 관객들에게 선보여야만 했다. 그래서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던 흘러간 액션 스타들이 그랬던 것처럼 행동했다. 카메라 프레임 안에서 우직하게 때리고, 찌르고, 엎어뜨리고 내던져졌다. 그렇게 키아누 리브스는 다시 전설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익스펜더블>의 배우들 각자가 장르 그 자체로 환원되던 시절의 정서를 통해서.


  전작에 이어 영화는 이 시리즈만이 해낼 수 있는 액션의 미학을 다시 한번 선보인다. 윅은 카모라 마피아 간부인 산티노와 과거에 맺은 맹약에 의해 암흑세계로 복귀하고, 음모에 휘말린다. 그리고 영화는 서사를 순수하게 액션의 힘으로 끌어 나간다. 윅이 적과 싸우는 과정은 난잡한 셰이크 캠과 초점 없는 클로즈 업으로 모호하게 포장된 타격기 대신, 실전 사격술과 주짓수로 단련된 자기 기량을 정갈하게 드러낸다. 3건 매치 (3-gun match;돌격소총, 산탄총, 권총을 차례대로 사용하며 다수의 표적을 빠르게 맞추는 스포츠)를 기반으로 재구성된 카타콤의 전투씬은 과장된 카메라 워크 없이도 총격 액션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격렬함을 선사한다. <존 윅 : 리로드>는 여지없이 훌륭한 액션 영화이다. 그렇지만 어째서? 키아누 리브스가 탄창을 제때 갈아 끼우고, 방아쇠 울에 손가락을 걸치지 않는 것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카 체이스를 떠올려 보자. 윅은 타라소프의 사업장에서 1969년형 머스탱 GT를 되찾아 거칠게 빠져나오다 추격자들에게 바로 공격을 받는다. 그리고 이내 마음을 바꾸어 쫓아오는 차들을 향해 도리어 엑셀레이터를 밟는다. 그를 추격하던 이들은 오히려 쫓기는 입장이 되어버린다. 더불어 많은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길고 긴 도로를 무대로 추격전을 벌이는  대신 차고와 그 근처 부둣가에서 모든 시퀀스가 이루어진다. 굉장히 신기하다는 생각이 미칠 무렵 마침 영화의 시작에 오래된 흑백 영화의 한 장면이 있었다. 버스터 키튼의 <셜록 주니어>였다. 영화의 서사가 실질적인 무언극으로 이루어지던 시절, 그는 충돌의 서스펜스와 그 과정에서 동반하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통해  당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영화의 카 체이스는 때마침 키튼의 작품들과 흡사한 면모를 지닌다. 소중한 머스탱은 처절하게 박살 나고, 윅은 분노에 휩싸인다. 타라소프는 그 과정을 청취하고 공포에 휩싸인다. 하지만 제삼자인 관객들에게 이 과정은 희극적인 역설로 환원된다. 한 시대를 풍미한 키튼의 미학은 존 윅이라는 자아를 걸친 키아누 리브스에게 다시금 주어진다. 이를 위해 500마력의 머슬카를 파괴하고, 그 댓가로 키튼의 미학이 계승된다.


  <존 윅 : 리로드>는 모든 면에서 액션의 장르적 계보를 한데 모아 독보적인 위치를 만들기 위한 야심을 드러낸다. 윅은 자신을 막는 적들을 처치하며 꾸준히 앞으로 나아간다. 그 과정은 수십 년의 역사를 통해 축적된 장르의 모습이 시대에 반영되어왔음을 은유한다. 카시안과의 만남과 프레스토 박물관의 총격전은 고전 웨스턴을 연상시키는 결투씬으로 시작하여  마이클 만의 사실주의적 총격전으로 모양새를 갖추며, 스티븐 시걸의 아이키도와 성룡의 아크로바틱 시퀀스까지 복합적으로 뒤섞는다. 액션이라는 범주 이외에는 전혀 다른 성격의 액션을 가져오기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영화는 여러 세대에 걸쳐 독자적으로 발전한 무수한 스펙트럼들의 공통분모를 찾아내 이를 현대 전술사격이란 뼈대에 덧붙이는 데 성공한다. 총격전과 격투 장면은 별개로 분리하는 대신 전투 그 자체의 일부로 동화된다. 존 윅이 극사실주의 액션이라고 하면, 그건 틀린 말이다. 그러나, 과장이 드문 액션 영화의 걸작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사실이다. 과거의 수많은 미덕들을 계승해 자신 만의 세계를 구축한 액션 영화로서.


 영화 말미에 존 윅은 컨티넨탈 호텔의 룰에 따라 암살 대상으로 지목한다. 윅은 무수히 많은 인파가 모두 그를 노리는 킬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죽이러 온다면 얼마든지 죽여버리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후속작은 윅의 끝없는 싸움이 될 것이다. 그건 확실하다. 하지만 두 편의 영화에서 윅은 너무 많은 사투를 보여주었다. 언젠가 장르적 야심이 한계가 부딪힐 수 있는 상황에서, 현실과 암흑세계 사이에서 갈 곳을 잃은 킬러의 이야기는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가. 추측이지만 암흑세계 자체가 해답이 될지도 모른다. 지하철의 시민들에게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지만, 독립적인 규칙과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독자적인 세계의 영역 확대로 말이다. 어쩌면 존 윅은 스타일리시 액션의 해리포터를 꿈꾸는 걸지도 모른다.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http://blog.naver.com/jhk88pub)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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