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과 중앙아시아
난 서울이나 북경 체류 시 아무 버스나 잡아타고 종종 종점까지 갔다가 돌아오곤 했다. 버스 안에서 소위 ‘멍 때리며’ 지나가는 풍경과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원이 많고 도심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걷기 편한 유럽과 러시아에서는 무작정 걷는 걸로 버스 유람을 대체했다.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나 아스타나, 키르기스탄의 비슈케크,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 몽골의 울란바토르 그리고 러시아의 울란우데 역시 그랬다. 특히 이 지역들은 내가 좋아하는 산이 많아 도심 어디서든 산봉우리들을 조망할 수 있었기에, 저 능선들을 타고 한 바퀴 쭈욱 돌아줘야 하는데 하는 등반 욕구가 치솟아 짧기만 했던 체류 시간이 아쉽기 했다.
다양한 유목 민족들과 기마 민족들의 주된 활동 무대였던 중앙아시아와 몽골의 초원 및 고원 지역은 사실상 아시아의 정체성을 만들어 낸 인류학의 보고이다. 그리고 그 정체성이란 바로 불교도 한자도 아닌 ‘유랑’이다. 인간이 주체가 되어 근대를 연 유럽 서구 사회와는 달리 아시아의 제반 민족들은 하늘을 숭배하며 유라시아 대륙은 물론 아메리카까지 유랑했다. 그리고 그 유랑은 각 지역들의 다양한 신앙과 풍속 그리고 인종들이 다채롭게 뒤섞이게 만들었다. 그리스도교만으로도 설명이 가능한 유럽의 정체성과 달리 아시아의 정체성을 특정한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내리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엔 물처럼 유동적이며 변화무쌍한 아시아의 정신인 ‘유랑’이 있다.
언어의 특성 중 하나인 교착성이란 시제를 나타내기 위해 음절을 추가하고, 격을 나타내기 위해 조사를 삽입하는 것을 말한다. 인도 유럽 어족 언어들이 시제나 격을 표현하기 위해 단어 안에서 모음을 변화시키는 것과 달리. 유럽의 핀란드, 에스토니아, 헝가리 그리고 중동과 중앙아시아의 튀르크군 언어들은 물론, 몽골어, 한국어, 일본어를 포함한 만주 지역 언어와 북아메리카의 알류트어 등 제반 알타이어는 교착성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 표음문자의 기원은 기원전 천년 페니키아어로 알려져 있는데, 중국은 물론 아시아 초원과 고원 지역을 주름잡았던 거란, 여진, 민약(탕구트)등의 언어는 한자에 표음적 요소를 결합한 우리의 ‘이두’나 ‘향찰’, ‘구결’과 유사한 문자 체계를 창안했다. 거란 문자에는 음성적 요소의 정방형 배열을 사용하여 음절을 이루는 위구르 문자가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 한글 역시 이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마도 네스토리우스교의 동방 전파 과정에서 파르티아와 사산조 페르시아를 거쳐 중앙아시아로 전달된 셈어 계통의 시리아 문자가 위구르 문자에 영향을 미쳤고, 다시 위구르 문자는 극동에 위치한 거란 문자로, 그리고 이후 거란 문자의 표음적 요소를 차용한 우리의 한글이 창제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일반적인 정설이다. 이와 같은 언어나 문자 발달의 과정의 중심에도 역시 아시아의 유랑 정신이 있다. 유랑 정신은 광대한 유라시아 대륙은 물론 멀리 아메리카까지 걸쳐 있는 제반 인종들의 풍습과 외모 등에서 일종의 공통성을 구현하며 이들의 DNA속에 면면히 실존하고 있다.
유랑 정신의 핵심은 무소유인데, 유럽이나 중국의 정주민족들과는 달리 초원과 고원의 유목 민족들은 한곳에 머무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유욕 역시 크지 않았다. 그들에겐 이동에 도움이 될 만한 말이나 낙타, 물과 양식 그리고 이동식 가옥 등만 있으면 충분했다. 그래서 짧고 덧없는 현세의 삶이나 권력보다 영원불멸한 초월이 더욱 중요한 관심사였고, 그와 같은 희구는 제도화된 종교가 아닌 절대적인 힘을 가진 아버지 하늘과 어머니 자연에 대한 일종의 신앙과 같은 형식으로 표출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중앙아시아와 몽골의 현실에선 그와 같은 유랑 정신을 찾아보기 힘들다. 부패할 데로 부패한 정치와 종교,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 때문이다. 유동적이며 변화무쌍한 물과 같았던 이들의 정체성은 이미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오히려 돌처럼 딱딱하고 정형화된 악습과 강제만이 이들 나라의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지역에 강력한 영향을 끼쳤던 페르시아 문화권의 원조인 이란의 현실은 훨씬 더 하다. 가장 빠르게 변하고 진화할 수 있는 역사적, 유전적 자산을 지닌 이들 지역이 일부 기득권 세력의 아집과 탐욕으로 인해 가장 더디고 낙후된 상황에 처한 현실을 목도하는 심정은 그래서 더욱 착잡하기만 하다.
참고로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와 몽골과 접경한 러시아 도시 울란우데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울란’은 ‘붉은’이란 뜻을 가진 몽골어인데, 울란우데에서 울란바토르로 가는 비행편을 이용할 당시 공항 직원이 나에게 물건 운송을 부탁한 적이 있어 거절한 적이 있다. 부피가 크지 않아 가방 안에 넣어 가면 그만이었겠지만 그것이 마약인지 아니면 다른 불법적인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으니 만일에 대비해 거절했던 것이다. 접경 도시에서는 이와 같은 거래나 밀매 등이 다반사로 이루어지고 있다. 아무래도 중앙 권력의 영향이 미비하다보니 고질적인 부패와 공무 태만이 만연하고 있는 셈인데, 접경 지역은 일종의 점이지대로서 투명한 제도와 정책 이행만 뒷받침 되면 문화적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시장의 활력과 교류 협력의 시너지를 극대화 할 수 있는 잠재력이 무궁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온갖 범죄와 검은 돈의 온상이 되고 있는 현실이 매우 씁쓸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