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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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경제 규모면에서 세계 2위이다. 세계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가 1등과 큰 차이가 나는 2등이라는 사실이 과연 자랑스러워할 만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아무튼 국제 경제 면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진 큰 시장인 것만은 분명하다. 반도체 등 핵심 기술은 부족하지만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며 중국은 그 동안 자신의 몸집을 키워왔다. 그리고 지금은 전기차, 로봇, 항공 우주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크게 발전했다. 자원은 많지만 기술이 부족하고 내수 시장이 작은 러시아 입장에선 자신보다도 더 권위적이고 전체적인 체제를 가진 국가 중국이 그래서 더 중요한 파트너일 수 밖에 없다. 특히 현재의 푸틴에겐 미국과 대척하고 있는 시진핑의 도움이 절실하다. 하지만 바이든은 이걸 그냥 두고 보지만은 않는다. 시진핑 역시 푸틴과 바이든 사이에서 머리를 굴리며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푸틴은 스스로를 터프가이라고 믿고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에 시진핑에게 구걸하진 않는다. 그래서 시진핑이 도움을 주지 않는다 해도 광기에 사로잡힌 푸틴은 폭주를 밀어 부칠 것이다. 집단적인 확증 편향에 빠진 쇼이구, 메드베데프, 블로딘, 소바닌, 라브로프, 파트루셰프, 듀민, 프리고진, 키릴 대주교(러시아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부패한 종교 권력이 권위주의 정권의 시녀 역할을 자처하는 최악의 ‘준 신정 국가’이기도 하다)등 소위 ‘이보 랴드(его ряд)’ 그리고 푸틴과 한 배를 타고 있는 '실세 그룹'인 실로비키들 또한 푸틴을 지원한다.
한편, 시진핑 입장에선 바이든보단 푸틴에게 더 마음이 갈 것이다. 러시아가 무너진다면 다음 타겟은 중국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소견으론 이건 거의 사실이라고 본다. 이미 사드 배치와 반도체 동맹을 통해 미국은 중국 봉쇄에 들어갔으며, 중국 체제를 붕괴까지는 아니더라도 민주적인 체제로 변화시키기 위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 봉쇄로 인해 중국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고, 민심 역시 이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진핑이 감정에 휩싸여 푸틴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 예를 들면 대만 침공을 강행한다면 그의 황제로서의 장기 집권의 꿈은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 공동 운명체로 단단히 뭉친 측근 그룹이 있는 푸틴과는 달리 시진핑에겐 과거 리커창과 같은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라이벌 세력들이 자신의 내각에서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철저한 세뇌 교육을 받으며 자란 중국의 '지우링호우'나 '링링' 같은 젊은 세대 역시 경제적인 위기가 닥친다면, 자유와 경제적 풍요를 경험했던 러시아의 젊은 세대들처럼 자신들에게 강제적으로 주입된 중국식 국가주의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할 수 있다. 그럼 중국 내부 상황은 시진핑의 바램과는 다른 방향으로 향할 가능성이 크고, 결국 내부적 결속이 약화돼 분쟁이 가속화되는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시진핑이 이런 위험 상황까지 가정하고 움직일지는 알 수 없지만, 경제의 쌀인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호시탐탐 대만을 노리는 중국 입장에서 러시아처럼 과감하게 대만에 대한 침략을 단행하는 것은 극히 위험하고 어려운 선택인 것만은 분명하다. 돈바스 지역의 탈나치화와 러시아인 구제라는 나름의 명분으로 대체로 나이 들고, 저학력이며, 지방에 거주하는 인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낸 푸틴과는 달리, 시진핑에겐 '하나의 중국'이라는 이념 외에 전쟁을 일으킬 실질적 명분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외국의 지적 재산이나 기술에 대한 불법적 탈취와 위조가 상습화된 중국이라 할지라도, 대놓고 대만의 반도체 기술을 강탈하기 위해서 전쟁을 하겠다라고 한다면 전 세계가 웃을 일 아닌가? 하나의 중국이라는 이상은 시진핑의 망상일 뿐이며, 조작의 역사 위에 세워진 허상의 국가 중국이 대만의 지적 자산을 노리고 있다는 건 이미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시진핑 입장에선 그것만이 자신의 권력을 더 공고히 하고 미국에 맞설 힘을 줄 수 있는 필수적이며 추가적인 동력이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과 딜레마를 품고 있는 시진핑 입장에선 푸틴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기란 그래서 절대 쉬운 선택이 아니다. 그리고 어중간한 기술력을 지닌 중국과 밀도 높은 정치 경제적 협력 관계를 구축한다는 러시아의 생각 또한 결국 모래성일 수 밖에 없다. 그런 관계가 가속화될 경우 오히려 후진적 구조를 가진 러시아 경제가 중국에 잠식돼 중장기적으론 중국의 경제 식민지로 전락할 위험마저 존재한다. 어찌됐든, 이와 같은 음흉한 속내를 감추고 있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중국은 유럽 시장을 절대 포기하지 못할 것이며, 지금 당장 러시아와 가까워짐으로서 도래할 수 있을 그와 같은 위기를 절대 묵인하지도 않을 것이다. 인도와 튀르키예는 전략적으로 모호하게 중간자적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결국엔 서방편이다. 러시아가 기댈 언덕이라곤 고작 이란, 파키스탄 그리고 북한 정도이다. 중국 같은 비정상 국가나 벨라루스, 베네수엘라, 시리아 같은 최약소국을 제외하면 말이다. 결국 왕따인 셈이다.
푸틴을 볼 때마다 나는 박정희와 전두환이 합쳐진 거 같은 인상을 받는다. 메드베데프는 꼭 노태우 같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각각 부마항쟁과 광주민주화혁명을 북한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들이 일으킨 폭동이라 규정하고 폭력 진압한 것처럼, 푸틴 역시 돈바스를 우크라이나의 나치 세력에 의해 러시아인들이 핍박받는 지역이라 규정하고 무력 침공한 것을 보면 말이다. 물론 일부 우크라이나인들이 나치 부역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개인적인 경험을 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러시아에 비해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에서 인종 차별적인 조롱이 잦았던 것도 실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사실이다. 어찌됐든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10년 내 러시아 혹은 20년 후의 러시아는 어떤 모습일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집권기를 거친 후 정치적으로 더 민주화되고, 경제 문화 면에서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한 한국처럼 러시아도 푸틴과 베드베예프 시절을 겪은 후 그렇게 변할 수 있을까? 푸틴은 영원히 살 수 없다. 그는 이미 늙을 만큼 늙었고,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인간들처럼 언젠간 죽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말이다. 푸틴 생전에 혹은 푸틴 사후에 러시아는 크게 변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진전 없이 악화된다면, 그리고 누구도 푸틴과 ‘이보 랴드(푸틴의 측근 그룹)’의 폭주를 막지 못한다면, 가까운 시일 내 전면전으로 인한 러시아 국경의 폐쇄나 최악의 경우 핵전쟁이 발발할 가능성까지도 열어 놓고 생각해봐야 한다.푸틴을 지지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이번 겨울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이 전환될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믿는다. 유난히도 길고 추운 겨울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럼 에너지 위기를 겪는 유럽 내부에서 분열이 일 것이고, 자연스레 상황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반전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될까? 어느 정도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긴 하겠지만, 유럽 연합은 이미 몇 년 정도는 버틸 수 있는 비축유와 가스 등을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루마니아 같은 유럽 연합 내 자원 부국의 천연 자원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거나 중동, 미국, 흑해 연안국 같은 다른 판로를 확대함은 물론 태양열, 풍력 같은 친환경 에너지 개발에도 전력을 투구하며 에너지 의존의 탈러시아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물론 유럽 대부분 지역은 볕이 좋지 않아 태양열 개발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고, 푸틴의 기대처럼 어쩌면 시간은 러시아 편일 수도 있다. 또한 천연 자원이 풍부한 우크라이나 동부나 흑해 연안 지역은 이미 러시아군이 장악하고 있어 유럽 연합 입장에선 자신들의 기대처럼 대체 자원 확보가 어려울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수년 내 유럽연합의 극심한 경제 침체를 예상하는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푸틴은 이와 같은 서방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려 할 것이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유럽 연합 국가들이 지쳐 하나 둘 이탈이 발생할 때,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을 끌고 갈 수 있는 여지가 커질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와 같은 고착이 유지된다면 핵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크게 낮아질 수도 있다. 푸틴에겐 핵버튼이라는 공멸을 야기할 극단적인 선택지 외에 다른 카드도 손에 쥐어질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며, 유럽의 경제 위기는 지금 이탈리아나 헝가리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극우 정치 세력들의 득세를 불러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지만 핵전쟁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할 수 있는 차악의 선택지는 현상의 고착화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전으로 지지부진하게 이어지고(미국은 핵전쟁을 막기 위해 그런 식으로라도 우크라이나 영토에 국한된 국지전으로 양상을 끌고 가려 할 것이다), 미국과 유럽 연합 내 분열이 커져 유럽의 극우 세력들 목소리가 자국 국민들의 지지를 얻게 되면, 자연스레 푸틴에게 협상의 여지가 열리게 될 것이다. 푸틴은 이런 목표를 가지고 오르반이나 멜로니 같은 유럽의 극우 정치 세력들을 은밀하게 지원할 것이다. 중국 역시 이런 전략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럼 결국 바이든의 도박은 성공하지 못하게 된다. 러시아 손에 넘어간 우크라이나 영토를 완전히 탈환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오히려 푸틴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돈바스 해방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종전을 선언할 수도 있다. 그럼 그 다음엔 서구의 예상대로 몰도바의 트란실바니아가 러시아의 다음 타겟이 될까?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푸틴이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상태라는 가정 하에 있을 법한 이야기일 뿐이다. 지금의 푸틴은 전혀 이성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핵전쟁을 우려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자신의 조급성을 이기지 못하고 언제든 충동적으로 전술핵 버튼을 누를 소지가 푸틴에겐 있기 때문이다.
푸틴은 자주 자신의 어릴 적 경험에 비추어 코너에 몰린 쥐 일화를 이야기한다. 코너에 몰린 커다란 쥐가 갑자기 태세를 전환해 어린 자신을 공격했던 기억을 떠 올리며, 힘이 없는 상대도 최악의 상황에 몰리면 언제든 그 쥐처럼 극단적인 발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 푸틴의 무리들은 핵 위협이 공허한 협박이 아닐 수 있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여기서 푸틴의 폭주를 막지 못한다면, 러시아는 물론 지구상 대다수 인구를 점하는 중국, 아랍, 인도, 튀르키예 등의 전체주의와 권위주의 체제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며, 전 세계적으로 국수주의 또한 득세하게 될 것이다. 지구촌이라는 세계화의 꿈은 사라지고 폐쇄적이고, 대립적인 다극화 체제로 가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미국 일극 체제를 견제하는 러시아와 중국의 전략적 목표이기도 하다. 인류의 바람직한 발전과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해 그와 같은 그들의 야욕을 막아야 하는 건 세계 시민의 의무이자 이상이지만, 각각의 국가는 특유의 향토성을 지니고 있고, 개별 국가 국민 의식이나 사고 또한 다르다. 나는 그래서 러시아, 나아가 중앙아시아 그리고 유라시아의 미래를 궁금해 한다. 지금 이곳 러시아에서 편력하며 글을 쓰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혁명 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다는 것이 나의 일관된 결론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위대한 민중과 혁명의 역사를 가진 러시아 그리고 혁명의 도시 이 곳 상트페테르부르크야 말로 위대한 전환의 키를 쥐고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본다. 러시아의 변화는 더 나아가 중앙아시아와 유라시아의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인류사적인 대전환의 시작이자 새로운 희망의 발로가 될 수 있다. 양 극단만을 가정한다면 핵전쟁으로 인한 인류의 멸망이냐 아니면 새로운 희망적 시대의 도래냐가 바로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 그리고 러시아 민중의 선택과 행동에 달려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이 바로 내가 혁명의 DNA가 없는 세뇌 국가 중국의 야욕을 경계하며, 푸틴을 통해 박정희와 전두환을, 러시아의 현실을 통해 한국의 과거사를 투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https://youtu.be/ChvV01Zfp18?si=B4Xb1_pkMHGeQ6j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