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혁명의 땅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7)

by 레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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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비키(силовики)는 푸틴을 지지하는 기득권 세력인 올리가르히 중에서도 최측근 집단을 의미한다. 이들은 정치, 경제, 군사 모든 분야에서 푸틴과 운명을 함께 해온 과두 세력으로서 반푸틴의 최전선에 있었던 알렉세이 나발니와 같은 정적이나, 러시아의 대표적인 반전 단체 베스나는 물론 친 서구적인 성향을 조금이라도 보이는 일반인들까지도 ‘이노아겐트’라는 오명을 씌워 탄압하고 감시하는 데 앞장을 선다. 그래서 러시아가 좀 더 민주적이고 투명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푸틴도 푸틴이지만, 이 실로비키들부터 먼저 척결하거나 변화시켜야만 한다.

그건 그렇고 오늘 새벽 내 러시아 친구 한명이 급하게 러시아를 떠났다. 징집령과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 병합 투표로 인해 전쟁이 전면전으로 확전되고 국경이 폐쇄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내린 결정이었다. 일부 러시아인들 입장에선 의리없는 배신자로 비춰질 수도 있겠으나, 나는 자유를 찾아 떠난 그녀의 결정을 존중한다. 떠나기 전 만났을 때 그녀는 내가 자신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나는 너무 급하게 서두르지 말라는 말 외엔 달리 해 줄 말이 없었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나 역시 조급증이 들었던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3주 후 한국행 티켓을 끊어놨는데 출국 일정을 앞당겨야 하는 건 아닌지 지금도 걱정이 된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는 국가 소멸 위기가 더 커졌다. 카프카스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의 영향력 약화로 그 동안 잠잠했던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둘러싼 분쟁이 재점화 됐고,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탄의 국경 충돌이 일어났으며, 그루지야는 남부 아브하지야 수복을 노리고 있고,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와 거리를 둔 체 중국과의 밀착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전력을 쏟아 붓는 사이 이들 지역 국가들이 힘의 공백을 이용한 지역 패권 경쟁에 뛰어 들고 있는 것이다. 체첸의 수장 카디로프는 우크라이나전에 적극 협조하며 푸틴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고 있지만, 체첸은 언제든 자신들의 독립을 주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 같은 대내외적 위협과 더불어 러시아의 인구 감소 역시 국가 소멸 가능성을 키우는 주된 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주 생산 연령인 청장년 남성 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더불어 출산이 가능한 여성 출생률 감소 역시 이런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더욱이 이번 전쟁으로 인해 이와 같은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영토 합병이나 이민 정책을 통해 자연 인구 감소를 상쇄하기엔 터무니 없이 역부족이며, 러시아 정부의 인구 정책 역시 다출산 여성에게 영웅 칭호를 부여하는 식의 소련 시절 관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푸틴은 이런 위기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강행하고 있다. 병합 투표가 완료되면 돈바스 지역에 대한 침입을 자국 영토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해 전면전을 벌일 태세다. 전쟁 승리를 위해 최악의 경우엔 핵을 사용할 수도 있다. 전쟁에 질 경우 앞서 말한 대내외적 위기와 위협이 가속화돼 자신의 실각과 러시아 체제 붕괴를 촉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돈바스 지역을 안전하게 병합하는 수준에서 전쟁이 마무리된다면 더 큰 위기를 막을 수도 있다. 서방의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타협의 여지가 없긴 하지만, 수세에 몰린 푸틴이 그나마 체면 치레를 하며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 전략인 셈이다. 물론 푸틴이 조금이나마 이성을 되찾아 핵을 선택지에서 제외시키고 적당한 시점에 협상을 통한 종전을 선택할 수도 있다. 전쟁에 대한 책임을 지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권좌를 다시 한 번 메드베예프에게 이양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말이다. 물론 실권은 그에게 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국내의 반대 여론을 잠재우고 합병을 선언한 돈바스의 안정을 추구하며 후일을 도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나처럼 핵전쟁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의 희망이 담긴 바람일 뿐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왜냐하면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역시 푸틴 만큼이나 극단적이고 단호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현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 측간에 협상의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 양상이다. 둘 중 누구 하나, 아니면 둘 다 죽어야만 끝나는 치킨 게임이다. 이를 중간에서 중재할 국제적인 리더십 또한 부재하다. 바이든, 시진핑 너 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정권 수호로만 셈속이 가득 차 있다. 내가 지금 오늘 새벽 급하게 출국한 친구를 떠올리며 조기 출국을 고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푸틴이나 시진핑 같은 독재자들은 정권에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충성을 보이는 것이 애국이라고 강조한다. 푸틴은 서방의 견해에 조금이라도 동조하는 경향을 보이면 ‘이노아겐트’라는 딱지를 붙여 배신자 취급한다. 하지만 이건 애국이 아니다. 정부가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부정을 저지르면 그걸 저지하고, 이에 대해 항의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이다. 독재자들은 자신의 정권 수호를 위해 극단적이고 극우적인 사고를 지닌 가짜 애국자들을 전략적으로 양산해낸다. 자신들의 홍위병으로 쓰기 위해서다. 이와 같이 권위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문화가 지배적인 곳에서는 비단 정부 뿐 아니라 일반 사회 조직에서도 같은 양상을 보인다. 그래서 수평적이고 투명한 문화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일상 언어에서부터 좌석 배치에 이르기까지 사소한 곳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야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인종이나 성별, 언론에 대한 차별 뿐 아니라 나이나 서열에 의한 차별에도 반대하고 저항해야 한다.

수평적이고 차별 없는 문화에선 독단적인 리더십에 대한 견제와 평화적인 교체가 언제든 가능하다. 자유와 인권에 대한 존중감이 권위나 권력에 대한 공포감보다 크기 때문이다. 권위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문화에선 힘과 권위를 숭상하며 비정상적인 사고나 관례가 상식으로 인정되는 반면 정의가 훼손되고 개개인의 개성이나 자유는 언제든 제한받을 수 있다. 물론 자유엔 책임이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개성은 속물근성이나 허영이 아닌 진심이 바탕이 되어 표출될 때 인정받을 수 있다.

조국을 등지고 외국으로 떠난 내 친구는 과연 애국자가 아닐까? 푸틴의 관점에서 보자면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를 떠난 모든 사람들은 조국의 배신자들이다. 내 다른 친구의 이모 가족들은 모스크바에 있는 집을 비워두고 가족 전체가 외국을 떠돌고 있다. 처음엔 터키로 갔다가 지금은 세르비아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나는 오히려 국내에 머물며 푸틴의 전쟁에 찬성하거나 침묵하는 사람들보다는 비록 소극적인 저항이긴 하지만 전쟁이 싫어 외국으로 떠난 이들이 더 애국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들은 평화에 찬성하고, 시대착오적이고 무모한 전쟁에 반대하는 이성적 사고와 객관적인 판단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https://youtu.be/KOJrzKAh2h8?si=5YsGkI8_kJWpJG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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