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말
"글을 써보면 어떻겠냐"라는 주변의 조언을 몇 번 들은 적이 있습니다.
친한 친구들은 제가 아주 가끔 쓰는 블로그글이 재미있다는 이유로,
남편은 저라는 사람이 그런 창작 활동에 잘 어울리고 잘 맞을 것 같다는 말로,
친정 오빠는 일이나 육아 말고 저를 위한 일,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일을 계속 이어나가라는 뜻을 담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그저 웃을 때도 있었지만, 대개 손사래를 쳤지요.
저에게 그럴만한 에너지가 별로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실제로도 일은 너무 지치고 고되게 느껴졌고, 아이들은 너무 어렸으며, 제가 그렇게 부지런한 성격도 아니었습니다. 차분히 뭔가를 쓸 정도의 에너지가 있으면 차라리 그 시간에 일을 하고, 일하지 않는 자투리 시간에는 그냥 쉬고 싶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글을 쓰는 일이 저에게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로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중독병동을 그만두고 잠시 휴지기를 가질 때, 책을 써보려고 시도했습니다.
병동에서 겪었던 온갖 인간군상과 일화들을 생각의 흐름대로 쏟아냈더니 어느새 글뭉치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새 블로그 글을 정기적으로 쓰는 소모임을 시도하는, 매일 1편씩 글을 쓰는 루틴을 만들라는 글을 자주 읽는 저를 발견했지요. 이 10년간의 현장경험이 완전히 휘발되기 전에 어딘가에, 누군가에게 꼭 남겨야 한다는 저만의 의무감으로 '술 마시지 않는 법'이라는 전자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꿈꾸었던 본격적인 '책 집필'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하나의 주제로 수십 편의 글을 꿰어낼 정도로 아우르는 깊이에 이르지 못했고, 그 수준을 위한 덩어리 시간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책을 낸 이들을 부러워하기만 했지, 책 쓰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지 못했지요.
결국 다시 일을 시작하고 하루, 이틀, 한 달, 일 년이 지나면서 점점 나름의 염원이었던 '책 쓰기'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좀 더 부지런을 떨지 못한,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했지요.
다시 2년의 시간이 흘러, 삶의 새로운 휴지기가 생겼습니다.
이번에야말로 꼭 책을 쓰리라 다짐한 적은 없었는데, 어느새 문학상 공모전 날짜를 기억하고, 브런치 작가신청을 하는 저를 다시 발견했지요.
그리고 '책 집필'이 아니라 글을 꾸준히 축적하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생각의 흐름대로 쏟아내지 않고, 한 글에 하나의 주제만 담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도 중요하지만, 쉽고 와닿게 전달하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말을 되새겼습니다.
더 늦어지기 전에 투고를 했고, 서둘러 출판사와 미팅도, 계약도 했습니다.
흐지부지 중단되지 않도록, 휴지기가 끝나고 다시 바빠지면 정말 영영 못 쓰게 된다는 절박함으로 매일 도서관 출근 도장을 찍었습니다.
초고를 넘기고 나니,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출판사와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스러웠고, 무엇보다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못 썼던 것'이라는 말을 스스로 믿을 수 있게 되어 기뻤습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말.
공부에는 때가 있으니 '할 때 해야 한다'는 말로만 이해했었는데, 이제는 '가장 좋은 때를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라는 말로도 들립니다.
처음의 두서없는 글뭉치, 스스로를 과대평가했던 출간 기획서, 우선순위와 집중력에 대한 시행착오의 시간이 없었다면 오늘이 없었을 것입니다. 꾸준히 축적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관점을 전환하고, 다시 실패하지 않으려는 각오로 집중했던 '집필의 시간'은 지난 실패를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