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는 시간

'connecting the dots'를 떠올리며

by 순리

중독의 시대.

지금 아이들은 어떤 모습이고, 부모로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주제로 처음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 10월 초이니, 꼬박 6개월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2개월여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14편여 정도를 모아, 12월에 출판사와 계약을 했습니다.

그리고 3월 중순에 초고를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처음 책을 쓰면서 타임라인을 정리해 보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시작을 돌이켜보면 아이들이 커가면서 엄마로서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답답한 마음을 메모해 둔 것이 3년여 전이었습니다. 마침 그즈음에 중독병동을 떠나 일반 정신과 클리닉으로 이직하는 전환점을 맞으며 아이들의 중독 문제를 진료실에서 실감하게 되었지요.


만약 3년 전에 엄마로서, 중독병동 근무자로서 자녀교육에 대해 글을 쓰려고 했다면 진료실 현장의 목소리를 담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소아정신과 전문의도 아닌데, 왜 이렇게 청소년환자들을 많이 감당해야 하는지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하고, 소아청소년 전문분과를 더 공부하지 않은 제가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 근무지가 서울이나 수도권만큼 병원 선택지가 넓은 곳도 아니었기에 불평할 수 없었습니다. 차로 한두 시간 걸리는 지역에서까지 몰려드는 환자들을 그동안 의사로서의 소명으로 능히 감당하고 있던 동료 선생님들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소아청소년 환자들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아 수시로 교과서와 최신 자료들을 뒤적여야 하는 제 상황이 그저 빨리 나아지기만을 바랬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쌓여가면서 강도 높은 트레이닝 과정 같았던 근무 시간이 조금씩 편안해졌습니다.

또, 저에게는 저만의 강점이 있다는 걸 깨달았지요.


중독병동에서 보아왔던 사례들과 치료 경험이 스마트폰/게임 중독을 걱정하는 부모들에게 실질적인 조언으로 다가갈 수 있었던 점.

입원을 문의하는 심각한 케이스에 병동치료의 목표와 현실을 생생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점.

초등학생 학부모라서 진료실에 오는 아이들의 수업 진도나 학사일정에 맞춤형 질문을 할 수 있었던 점.

공부와 학원, 선행 등 부모들의 불안과 니즈를 누구보다 잘 알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점 등.


10년간 우울, 불안, 불면은 기본으로 깔고 가는 중증 정신질환자들을 케어하다가

갑자기 아이들의 성장, 발달 문제부터 훈육, 교육 상담부터 커버해야 하는 클리닉으로 들어왔다는 저의 '정처 없는 커리어 흐름'에 대해 스스로 인정하고, 자긍심을 갖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정리하며,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이 무척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이대로 아이들이 자란다면 그 끝에는 어떤 모습인지 생생하게 알고 있기에, 지금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부모와 의사로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저만의 소중한 자산이라는 생각을 하게 해 주었으니까요.


지난 6개월 동안,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connecting the dots'를 많이 떠올렸습니다.

상황에 따라 어쩌다 보니, 그때는 잘 모르고 선택하게 된 삶의 여정들이 실은 내 안에서 연결되고 있다는 감각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젊은 시절의 선택과 방황들이 다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는 메시지, 나이가 들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만 받아들였는데, 이렇게 직접 느끼고 나니 저의 지나온 모든 시간과 선택들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의미 없어 보이는 시간들, 왜 그랬을까 후회했던 선택들이 나름의 의미와 가치로 제 안에 녹아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참 감사합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도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책을 쓰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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