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이 유치원 교사에서 왜 플로리스트로 직업을 바꾸게 되었는지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웃자고 하는 이야기이지만 그 시절에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상태가 가장 좋았다.
아이들은 어른이 아니다. 그렇기에 번갈아가며 질문을 하거나 앞사람이 말하고 난 뒤 순서를 지키며 질문이나 요구사항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이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동시다발적으로 이야기를 하기 마련이다.
그뿐이겠는가? 목소리는 어찌나 큰지 놀이시간이 되면 사랑스럽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늘 소음으로 바뀐다. 아이들의 순진무구함과 발랄함이 좋지만 가끔은 아이들의 에너지와 소리가 감당이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귀가 먹먹할 때도 있었고 아이들이 귀가하고 혼자서 교실에 있을 때도 "선생님 선생님" 부르는 환청이 들릴 때가 많았다.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늘 아이들이 하원하고 나면 동료 교사들과 하루 일과를 이야기 나누기보다는 혼자서 우두커니 교실을 지켰다.
주말이 되면 밥을 먹거나 카페를 가더라도 조용한 곳을 찾게 되었고 늘 옆 테이블에 아이들이 있으면 일부러 다른 곳을 가거나 테이블을 옮기기도 했다. 주말만큼은 내가 살아야 했기에.
그러다 보니 주말이 좋았고 방학이 늘 기다려졌다. 방학이 되면 아이들 역시 내가 했던 것처럼 "선생님은 방학 동안에 뭐할 거예요?" 라며 방학 계획을 되물었다. 나의 대답은 늘 하나였다. 초임교사 시절에는 어디로 여행 갈 거야라고 이야기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선생님은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조용한 곳에서 책만 볼 거야"라고 말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만큼 지쳐있었다.
과중한 업무와 무례한 학부모들 못지않게 아이들의 에너지를 감당할 수 없는 내가 문제가 있나 싶을 만큼 힘들었다.
나중에 <센서티브-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을 위한 섬세한 심리학> 책을 읽고 나니 내 성향은 워낙 예민하였기에 작은 것 하나에도 크게 놀라고, 작은 소음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신경이 곤두서는 민감한 성향이었는데 그런 시간을 버텼다니 대단한 것이었다.
'아이들은 시끄럽지만
꽃은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까'
사실 그래서 플로리스트란 직업으로 바꾼 건 아니었다.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에 꽃박람회에서 처음 만난 라넌큘러스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되었고,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배우고 싶은 플라워 레슨을 받게 되면서 오직 꽃에만 집중하며 보내는 시간이 행복했다.
꽃은 그렇게 하나의 배움이 아니라 내게는 아주 큰 의미로 다가온 힐링이었다.
꽃을 만지는 그 순간만큼은 아무런 걱정도 들지 않았고 내일이 월요일이란 사실도 잊은 채 이 꽃을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예쁘게 만들 수 있을까 그거 하나만 고민하며 꽃을 만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꽃일을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우아하고 예쁜 모습만 본 것이다.
그 어떤 직업도 쉽지 않다는 것을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고 유치원 교사만 아니면 뭐든지 좋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 착각이었다. 현실은 달랐다. 그렇게 탄탄대로일 거라고 생각했던 꽃일은 우아하거나 예쁘지 않았고, 고되었다.
그러나 그 고된 일 역시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었다. 나에게는 더더욱 꽃을 만질 수 있는 기회가 쉽게 처음부터 찾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