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꽃구경이나 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김포 변두리 약암리까지 차를 몰았다. 들녘에는 봄 기운이 슬며시 번지고 있었지만, 기대했던 벚꽃은 아직 봉오리를 꼭 다문 채였다. 대신 눈길을 잡아 끈 건 길가에 불쑥 나타난 오래된 온천 건물 한 채였다.
입구에 가까이 가자 이곳이 최신식 스파 리조트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 금세 드러났다. 계산을 마치고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나무로 짠 파우더룸 아래 낡은 고무줄에 매달린 붉은 플라스틱 빗 하나가 덩그러니 흔들리고 있었다. 세월이 만든 흠집은 분명 낡음의 표식이지만, 어쩐지 '옛날 목욕탕' 특유의 정서를 기대하게 만드는 풍경이기도 했다.
목욕탕 안으로 들어서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사람들의 피부였다. 탕에서 나오는 이들 대부분의 몸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뜨거운 물에 오래 몸을 담근 것 치고는, 그 색이 짙었다. 막상 탕 안으로 들어가자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물빛 자체가 흙탕물처럼 탁하고 붉었다.
안내판에는 이 물이 지하 460m 붉은 암반에서 용출되는 온천수라고 적혀 있다. 철분과 염분 등 각종 무기질이 풍부해, 처음 나올 때는 투명하지만 공기와 만나 10~20분이 지나면 산화돼 붉은색으로 변한다는 설명까지 붙어 있다.
실내탕을 지나 노천탕으로 나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물에 몸을 담그고 앉으니, 머리 위로는 차가운 공기가 훅 들어오고, 허리 아래로는 뜨거운 기운이 피부를 타고 스며들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그야말로 온 세상이 내 것만 같았다. 탕 밖 들녘의 꽃망울은 아직 굳게 닫혀 있었지만, 물속에서 내 몸은 한 발 먼저 피어나는 중이었다.
"여기 처음 오셨어요?"
노천탕 주변을 살피던 직원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그렇다고 하니, 기다렸다는 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직원은 MBC 드라마 <수사반장>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들려줬다. 알고 보니 이곳 약암홍염천은 국민드라마 <수사반장>의 한 에피소드에 등장한, 이른바 '실화의 무대'였다. 약암홍염천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는 지금도 "드라마에 나온 온천"으로 먼저 기억된다.
약암홍염천은 수천 년 전부터 약산의 붉은 바위에서 솟아난 신비한 약물로 전해져 왔다. 본래 '붉은배 마을'이라 불리던 이곳은, 철종이 강화도에 행차하던 길에 이 물로 눈병을 고쳤다는 전설이 전해지면서 약산과 약암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왕은 이 온천에 자신의 병을 고쳤다는 전설을 남겼고, 드라마 작가는 여기에 범죄와 반전을 얹어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 온천을 이야기의 무대로 만든 건, 결국 이야깃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꽃은 아직 들녘을 가득 채우지는 않았지만, 약암리의 온천수는 지금이 제철이다. 김포 약암홍염천은,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조용히 묻는다.
당신이 진짜 쉬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