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짐한 양념게장 한 통에 담긴 새벽의 시간_ 경기도편

by 에세이스트

지난 3월 중순 주말, 김포 대명항. 얼음 위에 하얀 플라스틱 그릇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투명 랩 너머로 간장이 진득하게 밴 꽃게들이 통째로 드러나 있다. 그 옆에는 식욕을 자극하는 빨간 양념으로 버무려진 꽃게가 산처럼 쌓여 있고, 위에는 청양고추가 툭툭 무심하게 얹혀 있다.



"우리 신랑이 잡은 꽃게로 담근…"이라고 적힌 스티로폼 뚜껑은, 이 상품이 누군가의 하루 조업 결과라는 걸 조용히 말해준다. 그런데 그 앞을 지나는 손님들이 가장 먼저 멈춰 서는 이유는 따로 있다. 통마다 붙어 있는 손글씨 가격표다.



도시 마트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가격이었다. 여기선 꽃게가 배달 음식 통 밖으로 삐져나올 만큼 수북하다. 대명항 간장게장은 한 통 1만 원, 양념게장은 2만 원이다. 관광객에게는 '대박 할인'이지만, 이 가격에 내놓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따로 있다고 했다.




"이렇게 많이 담아 주시면… 남으세요?"

"우리는 이렇게라도 팔아야 남아요. 안 그러면 버려야 하거든요."



아주머니의 말이 궁금증을 열었다. 다시 한 번 상품들을 내려다보았다. 랩 아래로 보이는 꽃게들 중에는 다리가 하나씩 부러진 것도 있고, 껍데기 모양이 조금 들쭉날쭉한 것도 있었다. 대명항 젓갈·생선 시장판은 어촌계가 직접 운영하는 직판장이다. 일부 흰다리새우를 제외하고는 전부 국내 자연산만 취급한다고 한다.



꽃게가 잘 잡히는 날엔 배 한 척당 많은 양의 꽃게가 쏟아진다. 그 과정에서 다리가 부러진 꽃게는 식당 납품에서도 선호 되지 않는단다. 그런 것들을 모아서 양념과 간장에 재워 "간장 게장 한 통 1만 원, 양념 게장 한 통 2만 원"에 내놓는다는 것.



"꽃게가 많이 들어오는 날엔 무조건 빨리빨리 빼야 해요. 그냥 두면 돈 안 되고, 버리면 그대로 손해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싸게 내놓는 거예요. 싸다고 좋아하실 수는 있는데, 우리 입장에선 버려질 꽃게를 조금이라도 돈으로 바꾸는 거죠."



아주머니는 랩이 살짝 뜯어진 통을 다시 정리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김포 대명항은 김포에서 유일한 지방 어항이다. 여의도에서 차로 한 시간 남짓, 김포 시내에서는 20~30분이면 도착한다. 바다를 처음 본 아이들, 사진을 찍으러 온 젊은 연인들, 김장을 앞두고 젓갈을 사러 나온 부모님 세대까지, 시장 안은 주말마다 사람들로 북적인다. 사람들은 눈앞의 가격표를 보며 "여기 진짜 싸다", "이거 서울 가면 얼마냐"를 연발한다.



하지만 상인들의 계산법은 다르다. 어민이 새벽 바다에서 가져온 어류는 그날 안에 행선지가 결정돼야 한다. 크기와 상태가 좋은 것들은 식당이나 중간 도매상으로 먼저 나간다. 남는 건 애매한 크기, 모양이 조금 흐트러진 것들이다.




하자 상품이 아니에요. 살은 똑같이 꽉 차 있고, 맛도 똑같이 좋아요.



아주머니는 웃으면서 생선을 들어 뒤집어 보여주고, 통 속에서 게를 하나 들어 꽉 찬 살을 보여줬다. 그 순간, '하자상품 아닐까?' 생각했던 것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졌다. 시장 끝쪽으로 걸어 나가자 '대명항 수산물직판장 신축공사'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흙 먼지가 날리는 공사장 뒤로 갯벌이 펼쳐져 있고, 물이 빠진 자리에 어선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처음 이 광경을 봤을 때 나는 솔직히 걱정부터 했다.



'이렇게 예쁜 갯벌 옆에 거대한 건물이라니, 왜지? 풍경이 다 가려지는 건 아닐까.' 하지만 어촌계 상인에게 이야기를 듣고 나니 공사장의 의미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여기 건물 오래되고 좁아서 겨울에는 바람도 숭숭 들어와요. 관광객도 늘었는데 주차도 불편하고, 화장실 찾기도 힘들고. 새 직판장이 생기면 우리도 조금은 덜 힘들게 팔 수 있고, 손님들도 더 편하겠죠. 관광객 많이 와야 이 양념게장도 다 나가요."



상인의 말 속에서, 새벽 네 시에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의 시간, 잡히는 날과 안 잡히는 날 사이에서 늘 조마조마한 마음, 버려질 생선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통을 채우는 손길이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에 양념게장을 넣으며, 오늘 저녁 반찬 고민이 해결됐다는 사실에 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싸서 산 게 아니라, 버려졌을지 모를 꽃게를 살린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