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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돌이 Sep 05. 2022

출산기

39주 5일 산모의 아기 낳기

사실은 이미 출산하고 2달이 지난 시점이다. 늘 그렇듯이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늦어버렸다. 이제는 뭔가 아득한 느낌까지 나는 나의 출산기. 




37주부터는 매주 병원에 가서 아기와 나의 상태를 살펴봤다. 아기는 머리보다는 배 둘레가 조금 통통한 활발한 아기였고, 나는 별 탈 없이 건강했지만 아기는 전혀 내려오지 않고 내 골반도 열리지 않은 채였다. 진통이 오는 것을 기다리다가 자연분만을 시도해보는 것으로 준비 중이었다. 그러던 중 마지막 진료에서 아기가 4.5키로로 확 커졌고 아직 많이 내려오지 않은 상태임을 확인하시고는 바로 예정일 이틀 전에 유도분만을 잡아주셨다. 갑자기 일정이 잡히니 확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 언제 올지 모르는 진통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정해진 날에 가서 시작하는 것이 더 편하겠당! 생각했다. 일정이 잡힌 날부터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원래 많이 먹었지만 더 더...) 아기가 내려오게 하는 요가와 운동도 꼬박꼬박 했다! 아 드디어 아기를 낳는다니!


유도 분만일 새벽에 병원에 도착해야 해서 그 전날 모든 짐을 다 싸놓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래서 뒤척뒤척하다 아기 내려오는 요가도 하다가 새벽 한 시쯤 남편과 나란히 누웠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늘 그렇듯이 고양이가 내 배 쪽을 살짝 밟고 지나갔는데, 갑자기 배에서 뚝 소리와 함께 뭔가 끊어진 느낌이 났다. 나는 겪어본 적도 없지만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양수가 터진 느낌이라는 것을!


재빠르게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에 앉으니 폭우처럼 양수가 쏟아져내렸다. 당황한 남편은 뭐야 뭐야 거리며 뒤따라왔고, 나는 양수가 터졌으니 바로 병원에 가아한다고 외치며 계속 양수를 쏟아내고 있었다. 겨우 진정됐을 때 옷을 입고 준비를 해서 차를 탔다. 차를 타고 가면서 드라마 같은 이 상황에 헛웃음을 흘리고 있는데... 양수가... 다시 한번 폭포처럼 쏟아져내렸다. 패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ㅠㅠ


겨우겨우 병원에 도착해서 수술실로 들어가 태동검사와 내진, 항생제 알레르기 확인을 하고 링거를 꼽고 분만실로 들어갔다. 관장을 하고(폭탄 터지는 소리를 냈다) 누워서 자연진통이 오기를, 원래 유도분만이 잡혀있었던 아침까지 기다리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엄마가 나를 짧은 시간 내에 쑴풍 낳았댔고, 나는 평소 고통에 조금 무딘 편이기 때문이다. 자궁 수축 정도를 보여주는 기계에서 수치가 올라갈 때마다 통증이 심해졌는데, 새벽까지는 아 이 정도는 견딜 수 있어!라고 생각할 만큼의 통증이었다. 옆 침대에서 남편은 코를 골며 자고 있고, 나는 비몽사몽 간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진통을 느끼며 두근두근하며 있었다. 진통보다는 가끔 해주시는 내진이 정말 너무 아팠다...... 이 때는 곧 아기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레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침 7시가 되어 유도분만을 위해 촉진제를 투여해주셨다. 그때부터 아 이게 산고구나 라는 극한 고통이 시작되었음....... 아.. 지금 생각해도 그 고통은 어디에서 느낄 수 없는 그런 고통이었다. 잠깐이라면 잠깐 왔다 사라지는 고통이기는 한데, 그 순간 정말 못 견디게 괴로웠다. 두 시간 정도는 생으로 느끼다가 9시에 무통주사를 맞았다. 맞기 위해 등을 말고 주사를 넣고 뭐 그런 과정은 생각도 안 난다. 무통은 정말 할렐루야다. 무통 덕분에 내진도 아프지 않고 거의 쉬면서 있었다! 그런데 한 시간 정도 모니터링하시더니 내 자궁수축에 맞춰 아기가 심장박동수가 떨어진다고 하셨다. 조금 더 지켜보자고 말씀하셔서 계속 누워있었다. 무통이 꺼져서 다시 고통스러워하다가 12시 반에 다시 무통을 넣어주셨다. 그러나 곧 선생님이 오셔서 아기가 다시 심장박동이 떨어진다며, 이럴 경우 위험하기 때문에 수술해야 한다고 하셨다. 원래 자연분만만 고집한 것도 아니고, 아직 자연분만까지는 골반이 더 많이 열려야 하기에 수술해야 한다는 말이 반갑기까지 했다. 그 고통을 더 긴 시간 버틸 엄두가 안 났다! 너무 무셔!! 수술 설명을 듣고 신속히 수술 준비를 하게 되었다. 아... 이게 바로 진통은 진통대로 겪고 수술은 수술대로 하는 케이스 구만ㅜㅜ 하면서 씁쓸해하다가 그래도 아기를 더 빨리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했다. 


정신없이 수술실로 가서 수술대 위에 눕자 여러 사람들이 분주하고 능숙하게 수술을 준비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정신이 없기도 하고 제왕절개는 어떤 느낌일까, 아플까 하면서 떨리는 맘으로 누워있었다. 설명해주실 때 '마취를 해서 통증은 없으나 감각은 있을 거다'라고 하셨는데.... 그게 무슨 말일까 생각하면서 누워있었다.


드디어 선생님께서 걱정하지 말라며 수술 시작하겠다고 말씀해주셨고, 마취를 해주셨다. 마취가 잘 되었는지 확인하시고 절개를 시작하셨는데... 오 마이 갓이다... 내 복부를 여러 번에 걸쳐서 절개하는 '느낌'이 생생하게 났다! 내 복부의 살, 근육, 자궁 등등 겹겹을 각각 절개하고 그것을 벌려둔 채로 고정하는 소리와 느낌도 다 느낄 수 있었다. 기분이 너무 오싹하고 통증은 없지만 조이는 느낌, 벌어지는 느낌들이 나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 괴로워서 계속해서 끙끙거리자 내 머리 위에 계시던 마취과 선생님께서 "재워드릴까요?"라고 하셔서 바로 네네(제발요ㅠㅠ) 대답하고 나는 곧 잠에 빠져들었다. 아마 몇 분 안돼서 아기가 으앙 나왔을 것이고 내 가슴에 안겨졌을 텐데, 그 찰나를 못 견디었다 나는.... 그러나 후회는 없다ㅠ 그 순간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에.


내가 수면마취에 빠져들고 후처치를 하는 동안 아기는 아빠를 만났나 보다. 영상과 사진으로 얼떨떨하게 아기를 안고 있는 남편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기는 목욕을 하고, 나는 수술을 모두 마치고 회복실로 나와서 마취가 깰 때까지 누워있었다. 신생아실에 가기 전에 아기가 나를 만나러 왔는데, 나는 그때까지도 마취가 덜 깨서 비몽사몽 하면서 아기도 잘 못 봤다. 마취에서 깬 후에는 누운 채로 병실에 옮겨졌고, 그렇게 내 출산은 마무리되고 산후조리기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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