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빚
“봉사활동을 해 보세요.” 퇴직 준비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마음이 끌렸다. 그 무렵 나는 오카리나를 배우고 있었다. 아직 많이 서툴렀지만, 음표마다 나의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을 만큼은 익숙해져 있었다. 아버님은 종교기관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에서 돌아가셨다. 그곳에 많은 신세를 졌다. 조금이나마 빚을 갚고 싶었다. 같은 종교기관에서 운영하는 양로원에 조심스레 연락하였다. 악보와 오카리나는 내가 제공하기로 하고, 어르신들에게 일주일에 1∼2시간 오카리나 교습을 하기로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큰일이 터졌다. 코로나. 할 수 없었다. 무척 아쉬웠다. 오래전 일이지만, 지금까지도 봉사활동은 내 가슴 한편에 숙제로 남아 있다.
나는 임대인이다. 30여 년 된 조그만 주택을 임대하고 있다. 부모님 모시고, 아이들 키우며, 젊은 시절을 보낸 집이다.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난생처음 분양받은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임대인이 되었다. 길 건너에 대학교가 있고 주변엔 지방 출신 자취생을 타깃으로 한 새로 지은 집들이 많다. 임대인이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많지만, 무엇보다 공실 기간을 줄여야 한다. 이 집에 낡은 기운이 돌면서 문제가 생겼다. 요즘 젊은이들은 구옥에 살려고 하지 않는다. 전략을 세웠다. 주변 시세보다 조금 싸게 내놓는 것이다. 한 임차인이 이사를 가겠다고 한다. 회원 수 3백여만 명의 네이버 부동산 카페에, 집구석구석을 담은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주변 환경에 대한 상세하고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 월세 매물을 등록하였다. 얼마 후, 서툰 한글로 집을 보고 싶다는 문자가 왔다. 베트남 유학생이란다. 만났다. 방이 맘에 든다고 하면서 하는 말이 보증금과 월세를 조금 깎아 달란다. 예스. 그 이후 우리 집 임대료는 다른 집보다 낮아졌다. 자연스레 내 전략을 실행하였다. 이렇게 베트남 유학생들과 인연은 시작되었다. 지금 이 집에는 베트남 유학생들이 4 가구 살고 있다. 나는 이들의 서울 생활을 최대한 도와주려고 애를 쓴다. 우리 집에 빈방이 나오면, 이들은 베트남 유학생 SNS에 방 사진과 조건 등을 올려 준다. "주인님이 너무 좋아요"라는 립서비스와 함께. 나도 모르게 미소를 띠게 된다.
유학생들은 학위과정이 끝나면 베트남이나 다른 나라로 이사를 간다. 철칙이 있다. 소박한 학위 취득 축하 겸 이별 파티를 한다. 주메뉴는 여름엔 삼계탕, 겨울엔 김치찌개이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힘들겠지만 열심히 하라며, 그들의 성공을 기원한다. 나는 이들에게 이멜 주소를 알려 달라면서 나중에 집에 놀러 가도 되냐?라고 묻는다. 예스. 나는 허튼소리를 하지 않는 편이다. 앞으로 베트남, 핀란드, 독일, 미국에 가야 한다. 이들 중에 부부가 있었다. 그 부인이 아들을 낳았다. 산후조리 마치고 오는 날, 나는 산모가 좋아한다는 아이스크림을 보냈다. 무척 고마워했다. 얼마 후, 베트남에서 손주를 보러 친정어머님이 오셨다. 나는 아이 탄생 축하 겸 친정어머님 환영 파티를 조촐하게 열었다. 이사하는 날, 이들은 나에게 말했다. “교수님, 절대 잊지 못할 것에요.” 이 말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울림을 만들었다.
2시간 만에 전화기를 보니 우리 집 유일한 한국인 임차인으로부터 전화가 3통이나 와 있다. 자매가 함께 사는데 우리 집에 10년째 거주 중이다. 구옥의 임대인은 임차인의 전화가 두렵다. 어디가 고장 났나?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하던 일을 멈추고 전화를 했다. “궁금한 것이 있어 전화했다”라며 우리 집 관련 상황에 관해 묻는다, 속으로 '휴'하면서 아니 이걸로 전화를 3번이나? 했다. 자세히 설명해 주었더니 감사하다며 뜻밖의 말을 한다. “사장님은 착한 임대인입니다.” 갑자기 눈물이 돈다. “선생님께 칭찬을 들으니 사는 맛이 나네요.” 하니, 다시 “사장님은 분명히 착한 임대인입니다”라고 한다. 나는 이분들에게 10년 동안 임대료 올려 달라는 얘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코로나 시기에 회사 사정으로 수시로 임대료를 내지 않아도 한 번도 재촉한 적이 없다. 나의 작은 배려가 이들 마음에 닿아 있었나 보다.
나는 순수한 봉사활동을 제대로 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해 우리 사회에 마음의 빚이 있다. 이를 만회하는 차원에서 일상에서 따뜻한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지하철 이용 중에 주위에 나보다 상황이 어려워 보이는 분이 있으면 기꺼이 자리를 양보한다. 건대입구역에서 한 아이는 안고 또 한 아이는 유모차에 태운 중국인 부부가 엘리베이터 위치를 묻는다. 나는 역무원에게 물어 그곳까지 함께했다. 가락시장역 출구에서 할머니가 OO 슈퍼 위치를 묻는다. 나도 잘 모르는 곳이다. 네이버 지도에서 길 찾기 검색 후, OO 슈퍼가 보이는 곳까지 안내했다. 같은 마음으로 우리 집 임차인을 대한다. 인정을 받았다. 나는 착한 임대인이다. 마음의 빚은 살금살금 작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