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버려도 계속 배우는 이유
“미국 사람 같아요.” 대학원 조교 시절,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하는 나를 보며 교수님께서 웃으며 하신 말이다. 젊은 날, 나는 영어에 꽤 많은 시간을 쏟았다. 매일 이른 아침에 모여 Time 지를 읽고 해석했고, AFKN 뉴스를 반복해 들으며 한 문장씩 받아 적었다. 그 시절 흔치 않았던 원어민 회화 과정도 14단계까지 모두 마쳤다. 영어는 나의 작은 자부심이었다.
이 노력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직장에서는 미국 대학과의 교류 업무를 주도하였고, 교육부 해외 파견 연구교수로도 선발되었다. 개인적으로는 해외 여행할 때 언어 때문에 주저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지금도 자유여행 다니는 나를 보며 몇몇 친구들은 “영어 잘해서 좋겠다”라며 부러워한다.
세월이 흐르고 일상에 치이다 보니 영어를 입 밖에 낼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언어는 근육과 닮았다. 쓰지 않으면 서서히 굳는다. 나이 들어 직장 생활에 여유를 찾을 무렵, ‘영어 회화 공부를 다시 해 봐야지’ 하는데 방해꾼이 나타났다. 구글 번역기이다. 그 위력은 대단하다. 10년 전 태국 푸껫 여행 중이었다. 바닥에 작은 구멍이 고르게 뚫려 있는 슬리퍼를 사려고 상점에 들어갔다. 진열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 종업원에게 영어로 물었다. 이해를 못 하는지, 잠시 기다리라더니 친구 핸드폰을 들고 와 번역기를 켠다. 나는 깜짝 놀랐다. 서로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누지 않았지만, 대화는 끝났다. 그때 처음 실감했다. 언제 어디서든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문득 생각했다. ‘굳이 영어 회화를 다시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
이번에는 또 다른 장애물이 나타났다. 나이를 먹으면서 기억력이 점점 떨어졌다. 문장은 머릿속에서 제 모양을 찾지 못했다. 예순이 지나면서 혀도 자주 꼬였다. 긴 문장을 부드럽게 한 번에 읽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니 영어 문장은 어떨까? 문장은 그렇다 치더라도 spectrophotometer 같은 긴 단어는 한 번에 읽히지 않았다. 혀가 먼저 포기했다. ‘나만 그런가?’ 하고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 어느 날 TV에서 나이 든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뉴스를 보는데 그도 말이 꼬였다. 괜히 위안을 얻었다. ‘어쩔 수 없는 거구나.’ 그렇게 영어 공부는 조금씩 내 삶의 뒤편으로 밀려났다. 그때 주변에서 이런 말도 들려왔다. “나이 예순이 넘어서 외국어 공부하는 건 바보짓이야.”
내 영어 실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내다. 여행을 다니며 바로 옆에서 보고 듣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잃어버린 단어와 표현은 번역기 도움받더라도, 가능한 혀를 더 굴려보세요. 억양을 미국 사람처럼 해보고, 속도도 조금 더 빠르게 해 보세요.” 언젠가 손녀와 함께 있다가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할 일이 있었다. 일을 마치고 슬쩍 물었다. “할아버지 영어 어땠니?” 손녀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발음이 조금… 그래요.” 손녀는 몇 년째 원어민에게 영어 회화를 배우고 있다. 아이의 솔직한 평가는 의외로 정확하다. 나 역시 알고 있다. 내 영어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그 무렵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내가 늘 멘토처럼 생각하는 대학 선배다. 올해 여든인데도 10년째 영어 회화 학원에 다닌다. 선배님께 조심스럽게 물었다. “효과가 있으세요?” 웃으며 대답하신다. “숙제를 열심히 했는데도 아침에 일어나면 다 잊어버려.” 잠시 후 한마디 더하신다.
“그래도 그냥 다녀.”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잊어버려도 계속 다니는 것, 어쩌면 배움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지역 평생 학습기관의 영어 회화 수업을 수강 신청하였다. 용기를 내서 중급반을 선택했다. 좀 더 젊은 분들과 함께 공부하고 싶은 욕심에 야간반을 골랐지만, 막상 가 보니 시니어가 절반쯤 된다. 선생님은 영어식 발음과 억양을 강조하며 더듬거리는 영어는 진짜 영어가 아니라고 덧붙이셨다. ‘내 영어는 영어가 아니구나.’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좋아하는 야구팀의 경기 결과에 관한 대화를 들려준다. 대강 의미는 파악되는데 확실히 들리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반복해서 들려준다. 그래도 마찬가지다. 갑갑하다. 드디어 스크린에 대화 내용이 올랐다. 처음 보는 단어와 표현이 여럿 있다. 노트에 적는다. 선생님과 수강생, 남과 여, 좌우가 역할을 바꿔가며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단어를 조금씩 바꾸며 비슷한 문장을 계속 말하게 한다. 수시로 오디오를 틀어 주며 그 발음과 억양, 속도를 그대로 따라 하라고 한다. 나는 그때마다 귀를 세우고 입을 움직인다. 발음이나 억양은 어색하지만, 속도만큼은 따라가 보려고 애쓴다. 어쩌다 나 혼자 한 박자 늦으면 마음을 다잡는다. 남들보다 한 번이라도 더 말해 보려 한다.
수업이 끝나면 강의실을 나서자마자 중얼거린다. 집까지 걸어가는 데 20분 걸린다. 나의 복습 시간이다. 어느 날은 소리가 컸는지 지나가던 사람이 힐끗 쳐다보았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운동을 하며 다시 문장을 떠올린다. 기억이 끊기는 부분이 나오면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 본다. 그래도 생각나지 않으면 휴대전화에 찍어 둔 교재 사진을 확인하고 몇 번이고 되뇐다.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자리에 앉으면 주로 책을 읽는다. 서 있을 때는 무엇을 할까? 암기한 대화문을 나지막이 읊조린다. 옆 사람에게 들리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그래도 계속한다. 언젠가부터 스스로 느낀다. 혀가 조금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칠십에 영어 회화 공부라니.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인생은 늘 작은 벽을 넘는 일의 반복이었다. 젊은 날에는 시험이라는 벽을 넘었고, 직장에서는 일이라는 벽을 넘었다. 이제 남은 벽은 어쩌면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완벽한 영어를 하겠다는 욕심은 없다. 다만 다시 혀를 굴리며, 잊혀 가던 언어를 조금씩 깨워 보고 싶다. 다음번 해외여행에서 몇 마디 문장이 조금 더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면, 그때 아내는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영어가 조금 살아났네요.” 이 말 한마디면 충분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