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의 늪에서 '슈퍼 해피'를 찾다.
“슈퍼 슈퍼 해피!”
이 말은 2025년 US 오픈 결승전 직후, 어느 기자가 패자인 준우승자에게 던진 “지금 심정이 어떻습니까?”라는 얄궂은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나는 그가 ‘무척 아쉽습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대답을 하리라 짐작했는데, 그의 뜻밖의 슈퍼 긍정 반응에 잠시 말을 잃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패자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날 나는 평범한 질문을 떠올렸다. 나는 과연 과정에 만족하며 살아왔던가?
아주 오래전에 그야말로 감명 깊게 본 동영상이 있다. 엄마가 아이에게 묻는다. “누가 제일 멋지니?” “누가 최고야?” “누가 제일 용감하니?” 아이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망설임 없이 "나"라고 외친다. 그 짧은 장면은 내 안에 오래 남았다. 그 뒤로 나는 가끔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 대답은 늘 "나"였다. 나는 그 약속을 지키려고 다짐하였다. 철저한 원칙주의자. 과정에 부끄럽지 않기 위한 나의 방식이었다.
학교에서 무엇보다 앞세운 원칙은 ‘학생들의 성적은 공정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나는 시험 감독을 할 때마다 학생들의 자리를 바꾸고, 벽과 책상의 메모를 지웠다. 감독을 하면서 책이나 신문을 보는 등의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다. 내가 감독으로 들어가면 일부 학생들은 한숨을 쉬었다. 답안지 채점은 반드시 두 번 하였다. 처음에는 번호순으로, 두 번째는 역순으로. 그리고 채점이 끝나면 학생들에게 답안지를 돌려주고 채점 기준을 공개하며 이의신청을 받았다. 혹시라도 내 눈이 놓친 것을 학생의 눈이 잡아낼 수 있도록.
원칙은 나를 곧게 세워 주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타인에게도 원칙을 지키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나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절대로 걷거나 뛰지 않는다.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면 ‘안전을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때 걷거나 뛰지 말라’는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 있고 안내 방송이 나오는 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지키지 않는다. 도리어 줄을 길게 서면서도 한쪽을 비워놓는다. 이 상황이 늘 불편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서울교통공사에 앞으로는 한 줄로만 설 수 있는 폭 좁은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자고 건의한 적이 있다.
나는 식품과학을 전공하였다. “식품위생법”은 “식품 등의 제조, 가공, 조리 또는 포장에 직접 종사하는 사람은 반드시 위생모 및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위반하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지키지 않는 곳이 많다. 최근 주변에 식육 판매점이 새로 생겼는데 그 상호가 ‘바른 정육점’이다. 상호가 맘에 들어 안을 들여다보니 일하시는 분이 위생모를 쓰지 않았다. 바르지 않다. 잠시 망설이다가 ‘바르다’라는 단어에 용기를 내었다. 매장에 들어가 간단한 인사를 한 후에, 미소를 띠며 한 말씀드려도 될까요?라고 양해를 구하고, “모자 쓰시고 일하시면 사업이 더 잘될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다행히 돌아오는 답변이 “감사합니다”였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앞으로 바른 정육점 이용하세요”라며 이 얘기를 했더니 아내가 물었다. “혹시 그 사장님 칼 들고 계시지 않았나요?” 나는 웃었지만, 아내의 농담이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그날 밤 오래 생각했다. 괜한 말을 한 것 아닌가? 원칙이라는 늪에 빠져 사람보다 원칙을 먼저 보는 것 아닐까?
오랜 세월 선생으로 사는 동안 ‘철저한 원칙주의자’는 나의 버팀목이었다. 표정은 당연히 굳어졌다. 좋게 이야기하면 근엄해 보인다. 학교에서는 그런대로 통했다. 은퇴했다. 선생의 굴레를 벗어나야 한다. 아내는 이젠 좀 내려놓으라고 한다. 나도 노력했다. ‘그러려니.’ ‘좋은 게 좋은 거야.’ ‘그냥 웃지요.’ 말을 고치며, 표정을 풀고 어깨에 힘을 뺐다. 사람들은 부드러워졌다고 했다.
하지만 무언가 허전하고 불편한 감정이 일었다. 내가 옅어지고 있었다. 나는 유연해지고 싶은 것인지, 희미해지고 싶은 것인지 헷갈렸다. 나를 지키려 애써 붙잡아 온 것들이, 어느새 짐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았다.
이제 일흔, 은퇴 6년 차이다. 요즘 나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철저한 원칙주의자’는 나의 무기이기도 했지만, 언어이기도 했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버릴 수 없다. 나는 여전히 곧게 서고 싶다. 다만, 그것을 앞세우지는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