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의 어울림

너머에 있는 마음

by 레츠고하이

25년째 이어오는 부부 동반 모임이 있다. 남자 넷이 골프 연습장에서 만나 시작된 인연이 부부 모임으로 확장되었다. 두 분은 사업을 하고 나를 포함한 나머지 둘은 자연과학 분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주변 사람들이 이 모임이 오래 지속되는 것을 보고 종종 고개를 갸웃할 정도로, 사업가와 교육자는 여러모로 다르다. 그 중에서도 씀씀이만큼은 나와 분명히 달랐다. 운동할 때, 나는 한 달에 평균 한두 번 라운딩 했다. 어쩌다 세 번 하게 되면 아내의 눈치를 봐야 했고 네 번 할 때는 반드시 한마디 들었다. 이들은 매주 부부가 함께 필드에 나선다. 내가 식당을 정할 차례에 ‘수입산 먹으면 되겠지!’ 하며 가끔 가는 갈빗집을 추천하였다. 그들은 바로 한우 생갈비를 주문한다. 내가 “잠깐만요” 했더니 아내가 눈짓한다. 가만히 있었다. 참고로 우리는 한우를 거의 먹지 않는다.


사업가 중 한 분이 고향인 거제에 세컨드하우스로 사용하는 조그만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 부부 동반으로 한번 다녀오자는 얘기가 여러 번 있었지만, 나는 매번 망설였다. 대중교통으로 편도 5시간 걸리는 거리도 문제였지만, 소주와 맥주만큼 다른, 회식자리에서 그들은 소주 나는 맥주, 네 부부가 좁은 공간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점이 부담이었다. 이 부부의 결혼기념일에 맞추어 그곳으로 2박 3일 여행을 가기로 했다. 여행경비는 1/n 이다.


첫째 날,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만나 점심 식사 하러 갔다. 호스트의 지인이 소개했다는 식당이다. 식사 중에 호스트는 “아파트 청소 등을 위해 어제 내려왔다”라며 2박 3일 동안의 일정을 막힘없이 얘기한다. 그러면서 두 번의 저녁은 자신의 단골 식당에서 자연산 활어회를 먹는다고 한다. 이번 여행을 위해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읽힌다. 감사하다. 식사를 마칠 즈음, 식당 종업원에게 팁을 주려는 듯 2만 원을 꺼낸다. ‘만원이면 되지 않나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소개해 준 분 체면을 생각해서 그러나? 하며 간신히 말을 삼켰다. 나는 지금까지 식당에서 팁으로 2만 원을 줘 본 적이 없다.


부산 관광을 마치고 이곳이 아니면 맛볼 수 없다는 특별한 저녁을 마주하러 갔다. 숙소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의 시골 바닷가 평범한 식당이다. 25년 지기의 곰삭은 정을 느끼며 맛있게 먹었다. 나중에 계산하는데 들리는 얘기가, 4인용 회 한 접시에 17만 원이란다. 깜짝 놀랐다. 평소 대형마트에서 회를 사거나, 전통시장에서 회를 떠먹는 나로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가격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아내가 "너무 비싸지 않아요?"라고 속삭였다. 나는 "자연산이라 그런가 보다"며 아내를 달랬지만, 사실 나는 자연산과 양식의 맛 차이를 알지 못한다.

둘째 날, 빡빡한 일정을 마친 후에 호스트가 하는 말이 저녁을 위해 자신이 보증하는 최고급 숨은 맛집으로 가는데, 이곳이 숙소에서 차로 1시간 떨어져 있다고 한다. ‘얼마나 맛있길래 차로 한 시간이나 가야 하지?’ 궁금해하며 ‘가까운 곳에도 자연산 회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지 않나요?’ 하려다가, '호스트도 많은 고민 끝에 결정했을 텐데' 하며 질문 대신 찬 물을 마시며 마음을 다스렸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그곳으로 갔다. 두 대 요금이 7만 원을 넘었다. 왕복이면 14만 원이다. 그런대로 단골손님 대접을 받았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문제가 생겼다. 지방의 늦은 시간엔 택시가 없다. 그것도 2대다. 식당 주인이 억지로 수소문해서 잡은 택시는 30분 거리에 떨어져 있단다. 거의 1시간을 기다렸다. 깜깜한 밤의 한적한 도로를 달리는 택시는 신이 났다. 구불구불한 오르막 내리막길을 곡예 운전을 하며 달린다. 내내 긴장해서 그런지 오래간만에 제대로 마신 술이 다 깼다. 잠자기 전에 아내가 “멀미가 나서 머리가 아파 죽는 줄 알았다”라고 한다. 나도 모르게 미간에 힘이 실렸다.

우리는 편의점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비싼 가격 때문이다. 우리라면 여행 중 간식이나 필요한 물건은 숙소 근처의 시장이나 마트에서 구매할 텐데, 이분들은 이 아파트 앞 편의점을 스스럼없이 들린다. 구경삼아 따라 들어간 편의점에서 막대형 얼음과자를 하나 집어 들고 노란 비닐 포장을 뜯어 한 입 깨물며 계산대에 갔더니 가격이 2,400원이다. 우리 동네 무인 아이스크림가게에서는 비슷한 것이 400원이다. 갑자기 얼음과자 맛이 쓰다. 포장을 뜯지 않았다면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을 거다. 잠자기 전, 아내는 조용히 “그런 것을 미리 시장이나 마트에 들러 사면 안 되나?”라며 아쉬움을 이야기했다.


여행을 마치고 상경하는 기차 안에서 차분히 이번 여행을 되짚어 보았다. 이분들과 처음 하는 여행이었지만, 색다른 맛을 느끼며 제법 즐겁게 지냈다. 그들에 대해서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씀씀이가 달라 속으로 약간의 갈등이 있었지만, 택시비로 7만원을 써 보고, 자연산 활어회와 2천4백 원짜리 얼음과자도 먹어 보았다. 한편으로는 네 가족이 사용한 이불 빨래가 걱정이 되었다.

여행의 장면을 하나씩 떠 올려 보았다. 호스트는 항상 최선을 다했다. 내가 호스트였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호스트에게 신세를 많이 졌다는 생각을 하며 그의 입장을 헤아려 보았다. 너머가 보인다. 그의 씀씀이는 결국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어울리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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