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보호막을 두른 사람들
사람 이야기는 늘 생각보다 더 길다
금요일 점심 무렵이었다.
오후 일정과 관련해 의전 조정을 해야 한다며, 전화가 왔다.
“사무실이세요?”
몇 가지 상황을 확인해 주고 통화를 마쳤다.
이미 점심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전화를 끊고 자리에 앉아 있는데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
“식사 안 하셨으면 저랑 같이 하시죠.”
스텝 중 내가 꽤 신뢰하는 직원이었다.
업무 때문에 점심을 놓친 걸 눈치챘던 모양이다.
그 친구는 가끔 이런 제스처를 보낸다.
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심하지도 않은 방식으로.
그래서 그날 점심은 자연스럽게 약속이 되었다.
직원들과 따로 점심을 갖게 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리고 내가 반기는 사람엔 나름의 기준이 있다.
거창한 건 아니다.
자기 일에 성실한 사람.
스스로를 단련하며 살아가는 사람.
직급이나 말솜씨보다, 가십이나 성토보다
그런 태도와 결을 만날 수 있길 바라는 점심.
조금 건방진 얘기지만,
아마 그래서 나는 그 친구와 점심을 먹어 왔던 것 같다.
그 친구는 나를 꽤 한결같이 바라보는 사람이기도 하다.
거의 무한한 긍정에 가까울 정도로 나를 인정해 주고, 내가 하는 일들을 기꺼이 높게 봐준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가진 좋은 점들이, 어떤 순간에는 오히려 어려움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자기 관점에서 조심스럽게 덧붙인다.
대개 이렇게 말을 시작한다.
“그게 실장님 장점이긴 한데요…”
그리고는 나긋하게, 그러나 피하지 않고 말한다.
칭찬만 하는 사람도 아니고,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평가를 던지는 사람도 아니다.
이상하게도 방어가 작동하지 않는다.
듣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래서 그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늘 묘한 감정이 생긴다.
고맙고,
조금은 부끄럽고,
이해받는 느낌과 동시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순간.
원래는 둘이서 작은 일본 가정식 식당을 가보려 했다.
마치 심야식당 같은 분위기의 조용한 곳이었다. 하지만 금요일이라 그런지 점심 시간을 훨씬 지난 시간에도 줄이 길었다.
그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 인기가 너무 많은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음에 오라는 뜻인가 보죠.”
우리는 발걸음을 돌렸다.
결국 건물 1층에 새로 들어선 대형 식당으로 들어갔다. 처음 생각했던 곳은 아니었지만 창가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생각보다 조용했고, 둘이 앉아 이야기하기에는 오히려 더 괜찮은 자리였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꼭 가려고 했던 문이 닫히면
뜻밖의 다른 문이 열린다.
식당을 고르는 일처럼 사소한 선택에서도
이런 장면을 종종 만난다.
그리고 돌아보면 이런 일들은
식당에서만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식사가 나오고 우리는 회사 사람들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전에 우리 팀에서 함께 근무하다가 다른 부서로 옮겨 간 한 직원 이야기가 잠깐 나왔다.
요즘은 율법처럼 자주 듣는 말.
당사자가 없을 때, 그 사람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날 점심 우리의 대화는 누군가를 흉보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을 조금 더 이해해 보려는 이야기였다.
그 친구가 말했다.
“처음에는 저도 솔직히 좀 불편했습니다.”
나는 웃으며 물었다.
“지금은요?”
그 친구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되게 훌륭하죠, 사실 좋은 사람이에요.”
생각해 보면 꽤 괜찮은 태도다.
그 친구는 이어서 조용히 덧붙였다.
사실은 마음이 꽤 여린 친구라고.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혹시 뒤에서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을지 그런 시선들이 부담스러운 것 같다고.
그래서 더 피곤해 보일 때가 많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나도 그 사람의 모습이 새록 떠올랐다.
처음에는 우리도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판단했던 것 같다. 말투도 강해 보였고, 자기 색깔이 뚜렷한 사람처럼 보여 괜히 불편하게 느껴졌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겉에서는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나에게도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네, 저도 그렇게 읽었어요. 속은 여린 사람.“
“근래엔 점심 시간도 제때 지키지 못하고, 괜히 사람들 눈을 피해서 다니던데 안쓰럽더라고.“
사람들의 시선과 소음 속에서
저마다의 상처를 가리느라
사실 마음에도 없는 마음가면을,
각자 모양이 다른 보호막을,
하나쯤 세우고 살아간다는 것.
어쩌면 우리도 다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일은
결코 한 번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
뒤집어 보고,
다시 보고,
조금 멀리 떼어 놓고 바라보면서
사람에 대한 이해도
세상에 대한 해석도
조금씩 각도를 달리하면서 받아들여진다.
그것이
내가, 우리가,
조금 더 편해지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며 나는 계산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먼저 말했다.
“실장님, 계산하지 마세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사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가 조용히 덧붙였다.
“요즘 돈도 많이 쓰실 텐데요.”
과한 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볍게 지나가는 말도 아니었다.
어딘가 조용한 배려가 담겨 있는 말이었다.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는 일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가끔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그런 순간을 하나씩 늘려 가는 일.
언젠가
이 고마운 친구의 말들이 내 귀에 거슬리게 들리는 날이 온다면.
그건 아마
내 마음이 꼰대심으로 가득 차 버린 날일 것이다.
- To be contu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