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새, 그리고 작은 모이통
시간의 목적,
시간을 다룬다는 것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한 순간들, 시선을 오래 머물게 한 풍경들을 한 컷의 사진과 짧은 글로 기록합니다.
(이 연재에 실린 모든 사진은 제가 직접 촬영한 순간들입니다.)
주중의 도시는 분주했지만, 주말 아침이면 조금 다른 얼굴을 드러내던 도심.
낯선 곳에서의 아침은 가볍다.
아는 사람도 없고, 어제의 역할도 따라오지 않는다. 이름과 직함이 어깨에서 잠시 내려앉는 시간. 설명도 증명도 필요 없는 상태로, 그저 한 사람으로 거리를 지나가는 감각.
전동 킥보드를 빌려 도심을 벗어났다.
이 나이에 어울리는 모습인가 잠시 스스로를 의식했지만,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동안 그런 생각은 금세 희미해졌다. 나는 그들 틈에 섞여 흘러갔다.
건물의 높이가 낮아지고 도심의 소음이 엷어지는 지점에서 작은 공원이 나타났다. 이유 없이 속도를 줄였고, 발걸음은 저절로 멈췄다.
나무 그늘 아래 한 아이가 앉아 있었다.
꽤 오랜시간, 빈틈 없는 같은 자세로. 손에는 작은 모이통이 들려 있었고, 몇 걸음 앞에는 새 한 마리가 아이를 마주보며 서 있었다.
아이는 말을 걸지 않았고, 새도 날아오르지 않았다.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 하나가 놓여 있었지만, 그 선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미 여러 번 이 자리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벗들처럼, 말이 필요 없는 거리.
일부러 거리를 두고,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누군가의 인사나 관심 없이도 충만해 보였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행여나 소리가 그 고요한 평화를 건드리지 않기를 바랐다.
그 순간의 시간은,
지나가고 소비된다기보다, 조용히 놓여서 소중히 다뤄지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저, 한 발짝 물러나 멍하니 머물렀다.
“우리는 정말 쉬고 있는가.”
우리는 쉬는 날에도 묻는다. 어디를 가야 할지, 무엇을 경험해야 할지, 무엇을 남겨야 할지. 줄을 서고, 예약을 하고, 사진을 찍고, 다시 공유한다. 여가에도 일정이 있고, 휴식에도 기준이 있다. 하루 종일 논다고 말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긴장과 계산이 남아 있다.
그 공원에서 본 아이는 달랐다. 그는 무엇을 성취하려는 얼굴도,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태도도 아니었다. 그저 그 자리에 앉아 작은새와 시간을 나누고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특별한 결과도 남지 않았지만 그 시간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 속에서 질문을 떠올렸다.
어떤 시간을 살 것인가. 그리고 어떤 속도로 살 것인가.
시간을 다루고 통제하는 일이, 비단 촘촘한 일과와 효율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빠르게 움직이며 많은 것을 얻지만, 그만큼 많은 장면을 스쳐 보내며 놓치기도 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멈추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날 공원에서 내가 마주한 장면은, 단지 아이와 새의 모습만이 아니었다. 멈춰 머물 수 있는 아이의 여유, 계산되진 않았지만 소중히 다뤄지고 있는 시간, 그 속에서의 온전한 쉼과 놀이. 목적 없이도 충분한 순간과 충만한 기쁨이 보였다.
도심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아무런 가늠과 판단 없는 시간 속에 앉아 있었던가. 쉬는 날조차 채워야 할 목록을 만들고 저울질을 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그 공원에서의 시간, 그 짧은 아침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시간의 목적과 삶의 속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선물같은 기억의 조각.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