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살아갈 사람이라면 튜링 테스트(Turing Test)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튜링 테스트는 1950년 영국의 수학자 알랜 튜링(Alan Turing)이 제안한, 한 기계의 지능이 인간의 사고능력에 필적하는지 인간과의 대화를 통해 확인하는 시험법의 이름이다. 어떻게 로봇이 인간을 따라잡겠냐는 말을 꺼내기도 무색해져 가는 오늘, 서울대학교미술관에서는 3월 24일부터 5월 22일까지 <튜링 테스트: AI의 사랑 고백> 전시를 진행했다.
항상 현재와 미래에 대한 시사점을 던지는 전시를 기획하는 서울대학교미술관은 이번 전시에서 인간과 로봇의 흐려지는 경계를 다룬다.
동물의 뼈와 기계 부속품을 합쳐 만든 임동열 작가의 <머시니멀 브루탈레>부터, 직접 대화할 수 있는 로봇을 제작한 노진아 작가의 <진화하는 신, 가이아>까지 총 13명 작가들의 다양하고 특색있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이자 관람객들이 받을 질문은 스스로에 대한, 인간에 대한 질문이다.
불가능의 가짓수가 한없이 줄어드는 세상에서 로봇도 사랑을 말하는 날이 올까. 로봇을 사랑하게 된 인간, 인간을 사랑하게 된 로봇, 비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랑이란 소재는 언제나 인기 있었고 존재 자체가 사랑의 걸림돌이 되는 데에서 오는 낭만이 인기의 비결이었다. 하지만 노진아 작가의 <나의 기계 엄마>는 그런 낭만과는 거리가 있다. 전시장의 초입에서 만나볼 수 있는 이 작품은 작품명 그대로 엄마 로봇을 구현해냈다. 한쪽에는 관람자가 얼굴을 들이밀면 고개를 들어 표정을 지어주는 로봇이 있고, 바로 옆에는 ‘사랑하는 딸에 대한 엄마의 바람’을 말하는 로봇의 영상이 재생된다.
“네가 너무 무리하기 때문에 걱정이 나빠질까봐, 그게 항상 너무 걱정되니까, 건강 제발 조심했으면 좋겠어.”
“그냥 남편과 사이좋게 잘 지내면 좋겠고, 아이 열심히 키우고 행복하게 살면 좋겠어.”
이와 같은 따뜻한 대사를 단조로운 기계음으로 내뱉는 영상을 로봇과 함께 보다 보면 어딘가 섬뜩한 기분이 든다. 그저 시각적인 차원으로 인간을 애매하게 닮은 데에서 오는 불쾌한 골짜기 현상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에게 애틋함을 자극하는 존재인 ‘엄마’가 ‘기계’와 결합된 모습은, 기계에게 엄마를, 기계에게 감정-인간의 고유성을 대표해온 능력-을 뺏긴 느낌을 들게 한다. 그러한 느낌은 관람자에게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소환하고, 이 질문은 전시가 끝날 때까지 함께한다.
가까운 미래에 인간의 정의 자체가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명체와 기계를 결합한 작품을 전시장에서 보다 보면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언급된 ‘길가메시 프로젝트’가 떠오른다. 이는 일명 불로장생 프로젝트로, 나노공학을 이용해 인공 장기와 팔다리를 만들어 반영구적인 몸을 만드는 시도를 칭한다. 인공 장기로 덮여가는 자신의 몸을 보며 사람들은 자신을 인간으로 정체화할까, 로봇으로 정체화할까? 장기기증을 위한 복제인간이든, 로봇을 심은 인간이든, 사랑을 말하는 로봇이든 머지않아 누군가 신인류의 개념을 정의하고 기존 인간의 정의는 흔들릴 길이 분명해 보인다. 인간의 개념이 바뀌면 그와 직결되는 도덕·윤리적 문제는 더욱 많아질 것이고, 인간이 마주하고 답을 찾아가야 할 질문들 또한 더이상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서울대학교미술관 관장 심상용의 전시 발문이 인상적이다.
과학기술은 인공지능이 인간 병사를 대신해 전쟁을 치르는, 그러니까 상대방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살상하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제시합니다. 하지만 전쟁이 없는 미래에 대해서는 왜 상상하지 않는 것인가요? 인공지능이 인간의 오류를 줄이는 쪽으로 진행될지, 획기적으로 증폭시키는 쪽으로 진행될지는 결국 인간의 몫으로 남을 것입니다. …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예술이 이제껏 인간으로서 해온, 인간을 위해 해온 싸움을 지속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음을 새삼 확인합니다.
독주하는 과학에 맞서 자신의 입지를 인간성의 영역으로 다져왔던 예술은, 앞으로도 인간을 위해 싸움을 지속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미술관 관계자에 따르면 이전 전시들보다 역대급으로 관람객들이 많았다고 한다. 단지 기존 전시보다 참여형 전시가 많아서인 이유도 있겠지만, 아마 인류의 미래 최전방에 선 로봇과 마주하고 자신의 미래를 엿보고 싶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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