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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터어리 Jun 13. 2024

나의 사춘기에게

주영화의 여섯 번째 레터

 연이는 사춘기 온 적 있어? 단순히 부모님이랑 자주 싸우는 정도였을 수도 있고, 술과 담배를 즐기는 정도였을 수도 있지. 어쩌면 조금 더 딥하게 왔을 수도 있겠다. 무엇이 됐든, 오늘은 어릴 적 비행을 떠올릴 수 있는 영화를 한 편 들고 왔어. 199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미드 90>이야. 궁금한 연이들은 넷플릭스에 있으니 참고해!


<미드 90> 제작 비하인드 컷. 왼쪽 가운데 수염 난 아저씨가 감독 조나 힐이야. (출처-네이버 영화)


  조나 힐이라는 배우 알아? 아마 얼굴을 보면 낯익을 수도 있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연한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와 <돈 룩 업>에서 조연으로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 배우거든. 영화 제작에도 관심이 있는지 <미드 90>이라는 영화로 감독 데뷔를 했어. 'A24'라는 배급사를 통해 전 세계에 상영됐는데, 이 배급사는 소위 말해 힙하고 감각적인 영화들만 수급하기로 유명해. 스케이트보드로 'A24'를 형상화한 영화의 첫 장면만 봐도 모두 설명되지.


  1983년에 태어난 조나 힐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어. 이 영화에는 감독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어. <미드 90>이라는 제목답게 영화 내내 향수를 부르는 요소가 마구 등장해. 구형 아날로그 TV를 떠올리게 하는 4:3 화면비, UCC 공모전 출품작인가 싶은 홈비디오 스타일의 엔딩 씬, CD플레이어와 스트리트파이터는 80~90년대생의 추억을 불러와. 


  단순한 추억팔이 영화라고 하기에 <미드 90>은 분명 색다른 지점이 있어. 이제는 어엿한 어른이 된 조나 힐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주인공 스티비에 투영하면서 말을 걸려고 한다는 점 때문이야. 영화의 흐름에 따라 스티비의 반항을 끈질기게 좇다 보면 관객도 그 아이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투영하게 돼. 이제는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가 과거의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어. 그렇게 나만의 영화를 만나게 되는 것이지.


<미드 90> 첫 장면. 스케이트보드로 'A24'를 표현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어. (출처-'오드AUD' 유튜브)


  우리는 잉여였다


  잉여, 도태, 노답 인생… 그것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었어. 허세와 허풍으로 치장한 아이들이 끼리끼리 무리 지어 동네를 휩쓰는 모습을 본 적 있어? 아니면 그 무리의 일원이었던 적이 있니? 그렇다면 <미드 90>의 비행 청소년들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그들은 어른을 향해 맹목적인 반발심을 보이고, 세상이 인정하는 권위에 결코 동의하는 법이 없어. 부모를 '저능아'라고 비난하거나, 경비원에게 "예수도 멘솔 핀다"고 말하며 설전을 벌이거나, 법원 앞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면 안 된다는 말도 가뿐하게 무시하지.


  마치 시위하듯 집단행동을 벌이는 그들이 존중하는 것은 오로지 그들이 존중하기로 선택한 친구뿐이야.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나름의 통과의례를 치러야 해. 그렇게 패거리에 입성하면 규칙처럼 통용되는 제스처와 놀이 방식, 서로를 부르는 닉네임이 있어. 하위문화 속에서 주체로 인정받는 일은 지금껏 가족이란 울타리에 갇혀 있던 아이들에게 굉장히 짜릿한 경험으로 다가와. 그래서 그들은 또래로 구성된 작은 사회의 중심으로 더욱더 빠져들어.


  이 모든 반항이 어린 날의 치기가 아닌 '잉여로움'이라 불리는 이유는, 언젠가 나이가 차면 세상의 규칙에 굴복하고 동조해야만 하는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야. 이로 인해 사회로부터 그 어떤 보호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배제된 존재가 돼. 영화 속 소년들도 한동안은 또래 집단에서 뻐기며 다니겠지만, 청소년이란 보호막이 걷히고 나면 냉혹한 세상에 덩그러니 놓이게 될 것이 자명해.


  그들 역시 자신의 현재를 자각하고 있어. 스티비의 친구 '존나네'는 "존나 노력하는 인생 뻔하잖아"라며 자신의 잉여로움을 변호해. 사실은 그렇게 노력해 봤자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거란 자조적인 진단에서 비롯된 마지막 자존심을 부리는 말이지. 다른 소년들도 별반 다르지 않아. 파티를 찾아다니며 술과 담배를 즐기고, 우르르 몰려다니며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이들 모두는 사실상 생존경쟁으로부터 스스로를 유예한 존재들이지.


<미드 90>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


  그래서 우리는 자해했다


  어릴 적 분에 못 이겨 자신의 몸을 할퀴고 물어뜯어 본 적, 다들 한 번씩 있지 않아? 프로이트는 인간에게는 '자기파괴 충동'이 있다고 말했으니 '혹시 나 미친 게 아닐까?'하는 걱정은 잠시 접어두자. 영화 내내 스티비는 자기파괴 욕구를 분출해. 엄마가 쓰는 빗으로 여린 허벅지를 마구 긁고, 단단한 줄로 자기 목을 조르고, 추락한다고 예감했지만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지붕을 건너는 무모한 시도까지 저질러.


  사실 사(死)의 욕구는 역설적으로 생(生)의 욕구를 대변해. '죽고 싶다'고 간절히 소망하는 이들은 누구보다도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야. 단지 자기 힘으로는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충동에 휩싸여. 아마 스티비는 '이대로 콱 죽어버려도 괜찮아'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어린아이에게서 나오는 우악스러운 성질머리와 세월 다 산 듯 담배를 꼬나문 자세는 그를 더욱 안쓰럽게 만들어. 그건 용기가 아니야.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았을 때 나오는 일종의 처연함이었어.


  그리고 짓궂은 죽음은 정말로 스티비를 덮치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친구 얼굴로 맞은편 자동차의 밝은 헤드라이트가 재앙처럼 쏟아질 때, 그들을 한입에 삼켜버리는 고요한 흑색 화면으로의 전환은 관객의 숨까지 멎게 해. 이 순간 감독의 조바심이 가장 많이 느껴져. '그렇게 막살다가 어두운 지하실의 유일한 전등을 끄듯 삶이 한순간에 꺼지면 지금까지의 반항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제발 그러지는 말라'고 말하는 듯해. 다행히 영화는 다시금 눈을 떠. 스티비가 화면 바깥의 안타까운 외침을 들은 걸까?


<미드 90>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


  이제는 스케이트보드를 놓아야 할 때


  사실 그건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어. 또래 친구들과 떼 지어 몰려다니고, 나쁜 짓을 함께 저지르고, 그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기 위해 눈치 싸움과 파워 게임을 지속해야 했던, 어른의 칭찬보다 친구의 인정에 더욱 목말랐던 사춘기 시절을 우리 모두 보냈었어.


  그 시기를 지탱해 준 열정의 중심이자 우정의 상징이 바로 스케이트보드야. 스티비가 첫 회전에 성공한 후 '오 마이 갓'을 외치며 뛰어다니는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면, 레이가 머리를 다친 스티비에게 새로운 스케이트보드를 선물하고 다듬어주던 장면에서 형제애를 느꼈다면, 영화의 종반부에서 스티비가 다시는 스케이트보드를 타지 못하리란 것을 예감했다면, 이제 스케이트보드는 스티비에게 스포츠 그 이상의 의미로 새겨질 것을 깨닫게 돼. 그건 스티비를 보호하던 하나의 작은 세상이었고, 필연적으로 그것을 깨부수어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는 운명이 되지.



  새는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1919)에 나오는 구절이야. 우리는 이 소설에서 한 존재의 성장을 또렷이 목도해. 그리고 여기, 또래보다 언제나 한 뼘 더 어른스러웠던 '레이'가 스티비에게 말하지. "너처럼 세게 부딪치는 놈은 처음 봐. 그렇게 세게 부딪치지 않아도 돼" 알을 깨고 나오는 아이들은 그렇게 자신의 세상을 부수고 나와야 하는 운명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받아들이지.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역시 『데미안』에 나오는 문장이야. 묘하게도 이 구절은 스티비와 조나 힐 모두에게 들어맞아 보여. 다만 조나 힐은 어릴 적 자신이 그토록 조롱했던 30대 어른의 시선에서 스티비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어. 그토록 뜨겁게 불타오르는 것도 좋지만 타버려서 재가 되지는 않기를. 빛이 없는 알 속에서는 그 세계를 온전히 자각할 수 없고, 깨고 나온 뒤에는 필연적으로 깨어진 껍데기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딜레마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타 사라지지만은 말라고 타이르는 간절함이 내게도 전해지는 듯해.



♫•*¨*•.¸¸♪✧



  나는 워낙 범생이 스타일이라 내 사춘기는 스티비에 비하면 짧고 시시하게 지나갔어. 사춘기 때 못다 한 반항을 성인이 되고 나서 하는 바람에 남들보다 길고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도 같아. 조금 끼워맞추자면 있지, 스티비 같은 어린아이가 아직도 내 안에 존재하는 것 같아.


 나 역시 조나 힐처럼 그 아이에게 말을 걸고 싶어. 이 영화를 통해서 나의 탈선 행적을 되짚다 보면 그 끝에 자기를 마구 해치는 아이가 있는데, 진짜로 큰일이 나버릴까 봐 조바심이 막 든다니까. 어쩌겠어,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안아주는 수밖에. 그리고 영화 포스터 속 카피처럼 이렇게 말해줘야지.


 fall. (but) get back up.


<미드 90> 포스터. (출처-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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